송준기 목사는 ‘교회와 선교는 하나’라는 주장을 이론만이 아닌, 선교적 교회 개척 실행의 순종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그동안 그같은 생각과 순종의 여정을 저서 <끝까지 가라> 등 10권의 책에 담아냈다. 이 칼럼은 그의 저서 발췌와 집필을 통해 선교적 교회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한다. <편집자>
복귀
구름의 바다 위에서 하룻밤이 지났다. 한 번에 하루씩 촘촘히 들어찼던 3년도 하룻길 같았다. 태평양을 건넌 비행기는 지쳐있었고, 북적이던 인천공항은 집처럼 아늑했다.
마중 나온 사람들 틈에 아내의 부모님이 서 계셨다. 미국에서 신학 공부를 무사히 마치고 교회 개척을 위해 복귀하는 사위와 딸을 기다리고 계셨다. 그들은 막 잠에서 깬 외손녀를 안고 기뻐하셨다. 가족은 서로 포근했다.
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아내와 딸과 한국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교회를 개척했다. 돌아보면 16년이나 걸린 시작이었다.
웨이처치의 첫 주일 모임은 1월 1일이었다. 처가는 따뜻했다. 처남이 중국 유학 중이어서 우리 세 식구가 지내기에 딱 좋은 방이 비어있었다. 태평양을 건너온 짐을 그 방에 풀었다.
다행히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우리를 크게 환영하셨다. 특히 외손녀와 함께 먹고 자는 것에 기뻐하셨다. 게다가 웨이처치 개척도 누구보다 지지하셨다. 우리를 사랑해주실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믿고 기대해주셨다. 큰 용기를 주셨다.
한겨울에 교회를 시작했는데도 너무 따뜻했다. 냉장고는 언제 열어도 꽉 차 있었고, 방과 욕실의 보일러가 항상 돌아갔다.
따라 하기
전통대로 행하면 전통적인 교회가 된다. 문화조류를 따르면 문화적인 교회가 된다. 성경대로 행해야 성경적인 교회가 된다. 나도 성경적인 교회를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성경을 펼쳤다.
마태복음이 나왔다.
성경을 살펴보니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셨다(마 16:18). 그분이 행하신 대로 따라 해야 그분의 교회를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따라 하기’가 시작되었다.
예수님은 40일을 광야에서 금식으로 기도하신 후에 제자들을 부르셨다(마 4:1-11,18-20). 나도 날마다 웨이처치 개척을 위해 힘써 기도하며 영적 리크루팅을 시작했다. 물론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기도를 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원리를 흉내 내었다. 매일 시간을 정해두고 하루 중 한 끼를 금식하며 6개월 동안 기도에 집중했다.
또 예수님은 사역지로 이사를 가셨다(마 4:13). 나도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이사를 왔다.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복음을 외치셨다(마 4:17). 나도 홍대를 오가며 거리, 지하철, 공원, 시장 등에서 복음을 외쳤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셨다(마 4:19-22). 나도 기도의 자리에서 떠오른 사람들을 한 번에 한 사람씩 만나서 함께 예수님을 따라가자고 제안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가정을 포함한 여덟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첫 예배
아침부터 싸라기눈이 왔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이미 모교회로 예배를 드리러 일찍 나가셨다. 아내와 나는 의자와 방석을 재배치하고 차를 준비했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에 품고 기도해온 사람들이 한 명씩 벨을 눌렀다. 잠시나마 주인이 바뀐 아파트로 개척 멤버들이 눈을 털며 들어왔다.
사실 첫 모임이 있기 훨씬 전에 우리는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모여 종일 비전 설명회 파티를 열었다. 교회를 시작할 것을 알리며 대화하는 시간이었다. 웨이처치를 왜, 어떻게 개척하려고 하는지 나누었다. 그리고 40일 동안 각자 기도하며 확신이 생기면 다시 모이자고 약속한 후에 헤어졌다.
그때는 누가 올지 서로 궁금해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 막상 만나니 신기했다. 우리는 몸 녹일 틈도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반가운 잡담은 기도회로 이어졌고, 하나님은 기다리셨다는 듯이 큰 은혜를 주셨다. 여기저기서 눈물이 샘처럼 터졌다. 갑티슈는 첫 모임부터 예배의 필수품이 되었다.
첫 말씀은 돌아온 탕자 이야기였다(눅 15:11-32). 저마다 자기 이야기라며 또 울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컸다. 회개할 것이 많아 함께 울기 위해 모인 것만 같았다.
첫 예배 후에 우리는 함께 먹었다. 아내가 등갈비 김치찜을 준비했다. 회개한 사람들과 함께 먹는 주일 점심은 맛있었다. 식사 중에 우리는 떨어지는 밥풀만 봐도 웃음을 터뜨렸다. 서로가 서로를 기뻐했다. 말씀과 은혜의 효과였다. 회개로 깨어난 새 감각에 세상도 새로워 보였다.
식사를 마치며 점심메뉴를 칭찬하던 한 자매가 커피를 쏘겠다고 했다. 차 한 잔 얻어 마시게 된 것이 마치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 시끌벅적했다. 여덟 명의 환호는 거리에서도 이어졌다. 우리는 집 앞 커피숍에서 다시 모였다. 대화는 더 깊어졌다.
질문
웨이처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첨탑도, 장의자도, 그 흔한 SM58 마이크도, 피아노나 보면대도 없었다. 훤칠하고 인자한 전문 스태프들도, 홈페이지도 없었다.
교회를 시작하러 모였는데 있어야 할 것들이 없었다. 다만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평범했다. 수년 동안 신학교를 함께 다녔다거나 같은 모교회의 지원을 받는 팀도 아니었다. 혹은 목사나 선교사도 아니었다. 우리는 소위 말하는 ‘평신도’들일 뿐 특별하지 않았다.
예배에 모인 사람은 내 아내와 딸을 제외하면 다섯 명이었다. 그 중 한 명은 직장인이었다. 나는 그를 대학교 때 기독교서클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여러 가지로 간증이 많았다.
다른 두 명은 교회 개척 사역을 위해 기성 교회에서 파송 받은 청년들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둘 다 전통 교회에서는 아웃사이더들이었다. 다른 한 명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개척에 합류한 영어 교사였고, 또 한 명은 말년 직업군인이었다. 이 둘은 내 이웃이자 친구였다.
그런 우리는 평범할 뿐만 아니라 모르는 것도 많았다. 무지하니 질문에는 자유로웠다.
“어떻게 교회를 시작할 것인가, 웨이처치의 비전은 무엇인가, 우리의 교회론은 무엇인가, 주일 모임에 누구를 데려올 것인가, 계속 목사님의 처가에서 모일 것인가, 식사는 누가 준비할 것인가, 필요한 물품은 없는가, 목사님의 사례비는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선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주일학교를 해야 하는가, 청소년부 전도사님을 초빙해야 하는가, 여름 수련회를 미리 기획할 것인가?”
그러나 이 질문들은 하나로 귀결되었다.
교회란 무엇인가?
질문은 심오했다. 대답할 때마다 질문의 깊이가 훅 다가왔다.
한 청년이 말했다. “교회란 담임목사님을 중심으로….”
누군가 말을 끊으며 물었다.
“그럼, 담임목사가 없으면 교회가 될 수 없는 거야?”
“응? 그럼, 될 수 없지!”
말을 끊었던 청년이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예전에 어떤 교회는 몇 년 동안 담임목사가 없었지만 여전히 교회였는데?”
“….”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그래, 담임목사가 없어도 교회가 될 수 있어. 그러면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교회는 무엇이지?”
하나의 질문에 많은 대답이 오갔다.
“일단 교단에서 공인한 리더십이 있어야….”
“교단 소속이 되어있지 않으면 교회가 될 수 없나?”
“….”
“동교동과 서교동 일대에 교회 건물 임대부터 알아봐야….”
“교회 건물이 없으면 교회가 아닌가?”
“….”
“캠퍼스들을 중심으로 해서 청년 전도부터 시작해야….”
“만약 그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아닌가?”
“….”
두 시간쯤 대화한 우리는 결국 다음 명제에 동의하게 되었다.
우리는, 교회가, 무엇인지, 모른다!
경험을 벗고 성경을 펼치다
교회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정답이 아니었다. 다만 저마다의 경험을 답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답을 정확히 몰라도 짐작할 수는 있다. 적어도 “교회가 무엇 무엇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교회는 성직자들도 아니다. 교회는 교회 모임의 정치시스템도 아니다. 교회는 담임목사를 CEO로 하는 회사가 아니다. 교회는 복채 올려놓고 “비나이다” 하는 곳도 아니다. 교회는 수많은 행사 프로그램의 연속체도 아니다. 교회는 건강을 다루며 상담하는 동네 보건소도 아니다.
교회는 심리학이나 경영학을 가르치는 사립교육기관도 아니다. 교회는 연예인과 정치가의 인생 스토리를 듣는 강연장도 아니다. 교회는 일주일에 한 번,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장소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교회는 우리의 경험이 말하는 정의들보다 더 크고 깊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교회란 무엇인가? 질문은 변함없었다. 우리는 몰랐다. 모름을 인정했다. 그러자 길이
보였다. 그래서 성경책을 펼치기로 했다. 무지에 대한 앎이 성경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그렇게 “교회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경험으로 대답하기를 멈추고 성경을 펼쳐서 대답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답대로 실행해보자고 결의했다. 경험이 맞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맞다고 하는 것을 좇아가보자고 약속했다.
계급장도 떼고, 선후배도 넘어서, 성경으로 대화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다른 것은 몰라도 예수님이 곧 말씀이시니(요 1:1,14, 계 19:13) 그분 때문에 모이자고 했다. 십자가 첨탑, 찬양팀, 온풍기, 화장실이 없어도 예수님 때문에 모이자고 했다. 모여서 경험을 벗고 성경을 펼치자고 했다.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끝까지 가라(도서출판 규장)>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송준기 | 총신신대원 졸. 웨이처치 담임 목사. ‘교회와 선교는 하나’라는 주장을 이론만이 아닌, 선교적 교회 개척 실행을 통해 순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저서 <끝까지 가라> 등 10권의 책에 그동안의 생각과 순종의 여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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