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기 목사는 ‘교회와 선교는 하나’라는 주장을 이론만이 아닌, 선교적 교회 개척 실행의 순종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그동안 그같은 생각과 순종의 여정을 저서 <끝까지 가라> 등 10권의 책에 담아냈다. 이 칼럼은 그의 저서 발췌와 집필을 통해 선교적 교회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한다. <편집자>
회상
대학에 다닐 때, 한 수련회에서 CCC 김준곤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은 목사와 선교사의 전유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설교를 통해 ‘내가 해야 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놀라웠다. 말씀을 듣는 내내 하나님의 은혜가 마음에 강하게 임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때 본격적인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수련회 이후, 입대할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했다. 대학생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하고 또 구했다. 그랬더니 길이 열렸다. 내가 있는 장소가 어디든 땅 끝 선교의 출발점이었다.
매일 성경을 공부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러다가 선교한국 집회에서 모슬렘 선교에 대해 들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려면 모슬렘들을 효과적으로 선교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3년 만에 기도제목이 바뀌었다.
‘모슬렘을 선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대할 무렵부터는 이 제목으로 매일 기도를 드렸다. 이슬람 선교에 관한 책자를 보면 눈이 번쩍 뜨였고, 모슬렘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을 만나면 달려가 인터뷰를 했다. 그러면서 또 수년이 흘렀다.
기도와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에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에 갔다. 그 과정은 새로운 결론으로 나를 안내했다. 모슬렘 선교를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선교론을 바꿔야 했다. 그래서 기도제목도 바뀌었다.
‘선교론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도하면서 한 지역교회의 청년부를 섬겼다. 목사가 되는 과정에서 지식과 경험도 더 깊어졌고, 기도와 연구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단기선교 경험도 늘었고, 선교사 인터뷰도 더 많이 할 수 있었다. 한국교회의 선교론과 교회론이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지 발견하는 아주 소중한 기간이었다.
유학을 떠나다
지식은 삶에서 기도와 사역을 통해 지혜로 바뀌었고, 생각도 더욱 발전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려면 모슬렘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려면 선교론에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선교론을 바꾸려면 그 배경에 있는 교회론이 바뀌어야 한다!’ 이 명제에 도달하기까지 12년이 걸렸다. 그러자 기도제목이 또 한 차례 바뀌었다.
‘교회론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당시 나는 싸움닭 같았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교회론에 대한 질문을 공격적으로 해댔다. 할 말은 넘쳤다. 독서 때문이었다. 특히 김남준, 한스 큉(Hans Küng), 옥한흠,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 Jones)의 책들이 좋았다. 또 교회 역사를 섭렵하며 비판적인 글들을 많이 읽었다. 지식이 쌓일수록 궁금증은 더 커졌다.
지성과 영성은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있었다. 목마름이 컸다. 내 영혼은 예수님을 더 알고자 했고, 지성은 그분의 교회를 어떻게 새롭게 바꿀 수 있을지 알고 싶어 했다.
그렇게 1년쯤 기도하고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공부를 마칠 즈음에 마지막 기도제목이 생겼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론과 교회론을 바꿀 수 있는 교회를 세워주소서!’
기적
나는 교회론의 토대가 되는 성경신학을 전공했다. 매일 책을 읽고 토론하며 글을 썼다. 날마다 공포와 싸우며 공부했기에 스릴리 넘쳤다.
돈과 시간이 부족한 나는 늘 무서웠다. 통장에는 한정된 액수가 들어 있었다. 아내가 수년간 땀 흘려 모아둔 것이었다. 그 돈의 심리적 가치는 매달의 환율보다 40배 이상 높았다. 1달러씩 쓸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거듭 생각한 후에 지출했다.
시간도 늘 부족했다. 실력이 없어서였다. 수업을 위해서는 거의 매일 200쪽의 원서를 읽어야 했다. 닥치니까 했다. 읽고 또 읽으며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미국 학생들과 영어로 토론할 준비도 했다. 할 말과 다양한 상황을 미리 생각해서 적어두고 소리 내어 읽었다. 내게는 날마다 기적이 필요했다.
동역자를 만나다
나는 공부를 잘 못했다. 다른 학생들에게는 30분 걸릴 일이 내게는 3시간 이상 필요했다. 한 번 읽으면 될 논문도 세 번 이상 읽어야 했다.
그래도 공부가 재미있었다. 아니, 성경이 너무 재미있었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성경연구 서적이 있는지 그때 알았다. 도서관 건물은 수천 년 동안 성경연구에 평생을 바친 학자들의 업적으로 가득했다. 그것을 섭렵한 교수님들이 내 눈 앞에서 핵심을 정리해주며 공부를 도왔다. 힘들지만 가장 신나는 시간이었다.
어느 날, 유학생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고 소문이 난 어려운 수업을 들었다. 한 백인 학생이 내게 다가왔다. 제임스 린치James Lynch였다.
제임스는 첫 시간부터 내게 한국교회에 대한 질문을 퍼부었다.
세계적인 대형교회들이 대부분 한국에 있는 이유를 물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교회에 대해 함께 기도하고 공부하고 토론하며 단짝이 되었다.
기도 동료
유학의 마지막 학기가 시작될 때였다. 제임스가 내게 근사한 식당에서 밥을 사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버거킹으로 갔다. 거기서 5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누었다.
어두울수록 별이 더 밝아 보이는 법이니 함께 교회를 개척하자고 했다. 모슬렘의 득세는 선교의 위기인 동시에 기회였다. 한국교회는 모슬렘 선교의 도화선 같아 보였다.
만약 한국교회가 교회와 선교를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사역으로 인식과 존재를 뒤집는다면 앞으로 선교역사는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문제는 ‘한국교회의 교회론을 전반적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였다. 내게는 대안과 실행력이 있었고, 제임스에게는 지식과 순수가 있었다.
밤하늘을 보며 어두움보다는 별에 더 집중하는 것이 맞다. 우리는 예수께 집중하기로 했다. 작고 보잘것없더라도 우리 스스로를 불태우기로 했다. 문제에 도전하기보다 작은 빛과 같더라도 대안을 직접 실행하자고 했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만나지 않고 각자 기도하기로 했다. 그 기도의 자리에서 더 큰 비전과 확신이 주어졌다. 기도를 마치고 다시 만난 우리는 새로 시작할 교회의 이름을 백지에 적었다.
“웨이처치(Way Church).”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_노자(老子)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끝까지 가라(도서출판 규장)>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송준기 | 총신신대원 졸. 웨이처치 담임 목사. ‘교회와 선교는 하나’라는 주장을 이론만이 아닌, 선교적 교회 개척 실행을 통해 순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저서 <끝까지 가라> 등 10권의 책에 그동안의 생각과 순종의 여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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