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못난 참 아들」
오래전 자유주의 신학이 들어오면서 한국 교계는 풍전등화의 상황을 맞았다. 이때 진리에 목숨을 걸고 세상과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신학자가 있었다. 바로 박윤선(1905~1988)목사다.
그는 평생토록 말씀을 사랑하고 연구하여 성경 전권의 주석을 집필하고 가르치는데 인생을 바쳤다. 나도 이분의 주석을 보며 신앙을 형성해 나갔다. <목사의 못난 참 아들>이란 제목의 이 책 저자인 유영기 목사 역시 그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아버지를 빼앗은 제자의 눈물어린 회고’ 란 부제의 이 책은 저자의 심장에서 흐르는 눈물 섞인 고백이었다.
세월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목사의 딸>이라는 책이 출간돼, 한국 교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바로 박 목사의 딸이 저술한 것이었다. 그 책의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한국교계가 모두 존경하고 영적인 스승으로 추앙하고 있는 박 목사가 사실은 바리새인이요, 외식자요, 가족들을 함부로 대했던 이중인격자였다는 것이다. 이런 당혹스런 그녀의 고백 앞에 유 목사는 비통한 심정으로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제자인 우리는 그분의 모든 것을 그저 받기만 하였다.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과 삶을 바라보며 선배의 뒤를 따라갈 뿐이었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니 가족에게 주었어야 할 사랑과 정성을 내가 받았구나.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모든 진액을 뽑아주었구나. 정말 미안하다. 더구나 그런 사랑을 받은 우리가 좀 더 참 아들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못난 아들이 되었구나.” 그의 고백에서 깊은 자책과 회개가 느껴졌다.
그 시대의 박윤선. 그가 그곳에 서서 했어야 할 역할,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몫을 어떻게 충성스럽게 감당해왔는지 보게 되니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한국교회 안에 자유주의가 밀려들어오는 그 위기의 때, 아마도 박 목사는 평범한 모습으로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사충성(至死忠誠)이라는 그가 쓴 휘호처럼 그는 죽도록 주님께 충성했다. 그 시대의 박윤선에게 그런 삶은 그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전부였다. 시대의 아들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아무리 학문적으로 통달하고 대단한 통찰력이 있다 해도 그것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아무리 폭넓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 시대의 사고를 뛰어 넘을 수는 없는 한계를 우리는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부정적 모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6.25동란 때 가족들을 목숨 걸고 지켜낸 사람이었다. 살아남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거친 세월을 사셨다.
배운 것도 없고 예수도 몰랐기 때문에 술 마시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하시고 싶은 대로 사시면서 가족들에게 모진 고생을 시킨 것이 아버지의 전부일까? 이제 내가 아비가 되어보니 내 진심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식들에게 비춰질 때가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철이 들고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진다.
세월이 지나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얕은 맛, 단 맛은 금방 잊혀 진다. 그러나 깊은 것은 오래간다. 한 평생 지조를 지킨다는 것, 누군가를 충성스럽게 사랑하고 섬긴다는 것은 한두 번의 이벤트나 멋진 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악기를 만들기 위해서도 수목한계선에서 몇 번씩 죽었다 깬 거친 나무여야만 된다. 당장 먹을 것은 1년 농사를 지으면 되지만 재목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십 년이 걸린다. 더군다나 온 우주의 운명이 걸려있는 사람 하나 세우는 일은 오죽하겠는가.
극한의 비난, 가난, 핍박, 고난.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더욱 순전하게 하고, 더욱 깊고 간절하게 하며 온전하게 하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이런 축복가운데 우리를 초대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GNPNEWS]
김용의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