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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부흥이 일어났을 때 해야 할 일

사진: UnsplashBree Anne

최근에 나는 복음을 적대시한다고 알려진 한 지역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교회 개척은 힘든 일이다. 거기에서도 열정적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소수의 교회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느리다. 나는 그런 곳에서 사역하는 목회자와 전도자, 교회 개척자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존경한다.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기쁨이자 특권이다.

그들 중 몇 명과 함께 식사하던 중, 한 목사가 말했다.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큰 곳에서, 복음을 향한 격렬한 반대 속에서 사역하면서 평생을 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교회에서든 더 큰 지역에서든 진정한 부흥이 일어난다고 가정하면 말입니다. 그런 일이 생길 때 내 우선순위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의미심장한 질문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형제가 염세주의에 빠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고작해야 작은 역사가 일어나는 날에 충성을 다하면서도, 주님의 팔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다. 적지 않은 목회자가 복음을 향한 반대가 심할 때 경건하게 사역하는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반대의 경우이다. 주님의 자비하심이 개혁과 부흥의 축복으로 쏟아질 때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이 꽤 많다.

나는 부흥이 도래한 곳의 가장자리에 몇 번 있었던 적이 있다. 1970-71년, 이른바 캐나다 부흥이 캐나다 서부 지역을 휩쓸었을 때 (수테라 쌍둥이가 이끄는 사역에서 촉발), 나는 브리티시 컬럼비아에 있는 한 교회의 목사로 섬기고 있었다. 나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교회가 서른다섯 개에서 고작 8년 만(1972-80)에 오백 개 가까이 증가하는 (퀘벡의 경우) 전례 없는 부흥의 역사를 목격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부흥과 가짜를 구분하기 위해서 내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부흥의 역사를 공부했다는 사실이다. 나의 경험과 독서, 성경 이해를 바탕으로 부흥이 올 때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진짜 부흥과 가짜 부흥을 진지하게 다루는 문헌을 읽자.

조나단 에드워즈가 쓴 ‘A Faithful Narrative of the Surprising Work of God’[놀라운 부흥과 회심 이야기]‘A Treatise Concerning the Religious Affections’[신앙감정론]로 시작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다. 에드워즈는 부흥이 드러내는 다양한 현상에 매우 개방적이지만, 진정한 분별은 결코 단지 눈에 보이는 드러남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의와 복음으로 가득한 진실함(integrity)에 달려있음을 강조한다.

에드워즈 이후 약 백 년 후에 켄터키와 다른 곳에서 일어난 일부 “부흥”은 9개월 후에 눈에 띄게 많은 숫자의 사생아를 만들어냈다. 그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감정적 강렬함은 종종 친밀감과 결합한다. 따라서 그 감정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게 아닌 경우, 부흥의 결과로 의로움을 낳기보다는 아기를 낳을 가능성이 더 크다. 남용에 대한 지식은 거만한 냉소주의를 낳기 쉽고, 반대로 부흥에 대한 지나친 열광은 어리석은 순진함을 낳는다. 냉소하지 말라. 그렇다고 속아서도 안 된다.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2. 자신의 마음을 점검하라.

자신의 마음을 계속 주시하고 그리스도를 향한 헌신의 불꽃을 부채질하라. 일상적인 은혜의 방편(ordinary means of grace)을 많이 사용하라. 부흥이 가져다주는 강렬함에만 의지하지 말고 성경 읽기, 기도, 자기 성찰과 고백, 자기 이익에 대한 죽음, 십자가를 향한 기쁨의 집중, 신실한 전도와 섬김,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영광을 바라보는 간절한 기대감을 쉬지 말고 의지하라.

일상적인 은혜의 방편을 무시하고 대대적인 부흥 운동에만 영적 생계를 의존한다면, 아주 잠깐은 만족을 느낄지 모르나, 한때는 미친 듯 열광하더라도 지속적인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쳐 쓰러질 것이다.

3. 모든 에너지를 예수님께 향하라.

부흥이 오면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에 무한한 힘을 발휘한다. 복음의 사역자로서 넘치는 에너지를 성경 공부와 기도, 그리고 말씀으로 충만한 회중 예배로 향하도록 하라. 부흥의 체험이 아니라 예수님 한 분을 향해 모든 초점을 맞추라. 부흥의 시대는 경건을 가장한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표현으로 넘치는 대화가 아니라 기름 부음 받은 강해 설교에 대한 강화된 헌신을 요구한다.

퀘벡 운동과 관련하여 일어난 위대한 일 중 하나는 선견지명으로 넘치는 SEMBEQ(Séminaire Baptiste Évangélique du Québec)의 설립이다. SEMBEQ는 그 세대와 다음 세대의 신학 및 목회 훈련을 위한 통로가 되었다. 부흥이 가져다준 에너지가 훈련으로 올바로 전환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주신 진정한 운동을 단지 어리석음과 아련한 향수 속에 시들어버린 추억으로 착각하기 쉽다.

4. 언론을 멀리하라.

투명하게 하라. 이게 일반적으로 불가능하고 사실상 엄격하게 권장되지도 않지만, 투명함이라는 목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말로 하나님의 자비 안에서 큰 축복의 시기에 봉사하고 있다면, 굳이 알리려고 애쓰지 말라. 부풀리거나 홍보하려고도 하지 말라. 최선을 다해서 사역을 확장해야 한다. 그러나 술수가 아닌 오로지 봉사와 가르침, 설교로 역사를 이루라.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언론이 찾아올 것이다. 당신이 강조해야 할 것은 비길 데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자신을 낮추며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리고 “스타”와 “유명 인사”를 홍보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라. 부흥을 분석하고 그것을 다른 데로 퍼트리기 위해 부흥을 “포착해 내려고” 떼를 지어 도착하는 “전문가”를 온 힘을 다해 피하라.

1972년에서 1980년 사이에 퀘벡에서 일어난 부흥 사역에 참여한 사람들이 누린 큰 이점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언어 장벽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낼 만큼 프랑스어를 제대로 아는 미국 언론이 거의 없었다. 물론 오늘날 가장 빠른 형태로 배포되는 (악의적인 공격을 포함해서) 형태는 전통적으로 “언론”이라고 표시된 기관이 아니라 소셜 미디어와 연결되었기에 피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그러나 당신의 영향력이 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올바른 초점을 가지도록 장려하라. 자제력을 키우고 분노로 얼룩진 블로그에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 평소의 사역에 조용한 인내로 충성하는 동시에 당신의 명성을 높이는 소문이 들릴 때는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5. 조작을 피하라.

캐나다 부흥 기간에 나는 즉석에서 있었던 간증 하나를 기억한다. 부흥 전까지 직업에 몰두하던 행복한 세속주의자가 갑자기 부흥이 시작된 서스캐처원(Saskatchewan)에 있는 교회 건물에 들어가야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곳에서 복음을 듣고 죄를 깨닫게 하는 성령의 역사에 압도된 그는 극적으로 구원받고 변화되었다. 그의 간증은 설득력 있고 강력했다. 사람들을 회개와 믿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인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어떤 목사가(그 지역 목사가 아니었다) 그를 설득해서 캐나다 전역의 주요 장소에서 간증 집회를 하도록 했던 것이다. 나는 그의 간증을 밴쿠버에서 다시 들었다. 전에 들었던 것과 내용은 똑같았지만, 능력 있던 간증은 어느새 뻔한 이야기로 전락한 상태였다.

자발적이고 성령의 기름 부음 받은 간증이 부흥을 다른 곳으로 퍼뜨리기 위한 인간의 노력으로 인해 한낱 조작물로 전락한 것이다. 기독교 지도자라면 최소한 그런 조작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설교하는 대신에 감동적인 간증에 더 의존한다. 자발적이고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이상 의지하지 않는다. 열정과 조작 사이의 경계가 위반된 사례를 찾는 것은 오늘날 조금도 어렵지 않다.

6.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오는 부흥 운동이 당신에게 달려있다고 착각하지 말라.

20세기 동안 한국은 회심자의 숫자와 신학적 성숙도가 눈부시게 성장했지만, 반면에 일본은 반대로 지지부진하며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 지도자가 일본보다 훨씬 더 유능하거나 재능이 있었다고 결론을 내려야 할까? 왜 요시야는 민족의 부흥을 주관했는데, 예레미야는 평생을 오로지 눈물로 지새고, 용기를 떨어뜨리는 예언을 선포하고, 심판을 외치면서 보내야 했을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위대한 갱신의 시간에 참여하는 특권을 주신다면, 기회를 주신 그분께 감사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신실하게 전달하는 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바치라. 무엇보다 겸손을 길러야 한다.

7. 운동의 인기에 따라다니는 위험을 조심하라.

많은 전문가가 오늘날 북미의 많은 지역에서 명목상 그리스도인의 수가 급감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런 변화는 기독교와 그리스도인을 소외시키고 반대하는 사회적, 문화적 세력이 확산하면서 촉진되고 있다. 반대가 많은 곳에서는 명목상 그리스도인의 수가 감소한다. 그러나 동시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분별하기가 더 쉬워진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운동이 대중화되면 새로운 위험에 직면한다. 비록 처음에는 많은 반대에 부딪히는 개혁과 부흥 운동이라고 해도, 일단 대중화에 성공하면 많은 사람이 거기에 승선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분별력을 간구해야 함을 의미한다.

8. 그저 자연주의적 설명으로 그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라.

진정한 부흥 운동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리고 그 운동의 여파가 남아있는 이후에라도, 적지 않은 사람이 그것을 촉발한 상황이 무엇인지 물을 것이다. 일반적인 이유를 작성하는 것은 쉽다. 기도하는 형제자매 모임, 갱신을 열망하게 만든 영적 타락의 시간, 문화적 불안과 격변(퀘벡에서는 “조용한 혁명”으로 불렸다) 등등이다. 그러한 현상을 보고 그 안에서 하나님 섭리의 손길을 찾는 것은 전적으로 합리적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을 보고하는 건전하지 못한 설명 방식이 있다. 이러한 현상이 그 자체로 부흥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인상을 주는 설명, 그리고 이런 현상을 다른 곳에서 복제할 수 있다면 그곳에서도 얼마든지 부흥을 가져올 수 있음을 암시하는 식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문화 현상에 수반되는 모든 것이 부흥 없이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도 이러한 현상을 근거로 부흥의 시작을 예측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에 의해서 길들지 않으신다. 지나치게 자세한 분석은 나 자신의 홍보 외에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지나치게 자세한 분석은 인간이 운동을 통제한다는 인상마저 줄 수 있다. 물론 그리스도인 중에서 그렇다고 드러내서 말할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역사와 문화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는지를 깊이 숙고하라. 그리고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섭리의 손길을 분별하라. 그러나 “이 일은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로서는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말할 수가 없습니다”[창 24:50]라고 고백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남겨두도록 하라. [복음기도신문]

이 글은 “When Revival Comes”(Themelios 43, no. 2, August 2018)을 간추린 것이다.

원제: What to Do When Revival Comes

돈 카슨 Don Carson | 캐나다 토론토 Central Baptist Seminary에서 석사학위(MDiv)와 영국 Cambridge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PhD)를 취득하고, 일리노이주 디어필드에 위치한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의 신약학 명예교수로 섬겼다. 팀 켈러와 함께 TGC를 설립하고 2019년까지 대표로 섬겼다. The Enduring Authority of the Christian Scriptures를 비롯하여 수많은 책을 저술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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