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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하나님이 내게 천국이 될 때

Ⓒ 안호성

하나님은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로 끝나지 않는다. 천국이 천국인 건 하나님이 거기 계시기 때문이다

복음은 사람들을 천국으로 보내는 길이 아니다. 복음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다.

사람들은 종종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하나님께서 내 세계를 뒤집어놓으신 날”로 묘사한다. 생각지도 못한 어떤 경험과 대화, 또는 시련이 자기 자신과 삶, 인간관계, 주변 세계를 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내 경우에는 대학교 2학년 때 하나님께서 내가 생각하던 천국을 뒤집어놓으셨다.

나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사랑이 많은 그리스도인 부모와 함께 자랐다. 그 사건이 생긴 그 시점 대학생이었던 나는 당시에도 분명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거의 매일 성경을 읽었고 기도를 빼먹지 않았다. 정통 교회에 열심히 출석했고, 내 주변에는 성숙하고 주를 닮으려는 그리스도인 친구들로 넘쳤다. 심지어 나는 고등학생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들을 믿음으로 제자 삼는 사역에까지 관여하고 있었다. 그러던 즈음 어느 순간 한 사건이 생겼다. 그걸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갑자기 복음이 전혀 새로운 의미로, 전혀 새로운 색채로, 그리고 새로운 강렬함과 기쁨으로 나를 휘감았다.

나를 복음 속으로 더 깊이 인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먼저 나를 만나셔야 했다. 그 만남은 실로 가장 달콤한 대면이자 가장 만족스러운 훈계였다. 내가 만난 문장은 나를 앉아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꼼짝 못 하게 했으며, 그 이후로도 결코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보고 음미하는 것보다 다른 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죄인을 용서하기 위해 죽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가 없는 천국에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복음은 사람들을 천국으로 보내는 길이 아니다. 복음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다(존 파이퍼, 하나님이 복음이다, 47).

우리 시대를 향한 질문

복음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다. 복음은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다. 그것은 황폐함과 황홀함을 동시에 주는 희귀한 깨달음이다. 왜 황폐함이냐고? 복음을 만나기 전까지 우리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게 만들기 때문이다. 황홀함은? 한 번도 발을 디딘 적 없는 땅, 한 번도 항해한 적 없는 바다를 만나는 것 같고, 상상도 한 적 없는 기막힌 음식을 먹는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로 끝나지 않는다. 천국이 천국인 건 하나님이 거기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훌륭한 식사이다. 거칠고 경이로운 바다이다. 밭에 숨겨 놓은 보화이며 값진 진주이다(마 13:44-46). 존 파이퍼는 도무지 잊을 수 없는 놀라운 질문으로 하나님 자신이 얼마나 탁월한 선물인지를 강조한다.

우리 세대뿐 아니라 모든 세대를 가리지 않고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이 천국에 갔다고 치자. 병도 없고, 원하는 모든 친구가 옆에 있고, 매일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각종 여가 활동에 또 날마다 눈 앞에서 펼쳐지는 자연의 아름다움, 맛볼 수 있는 모든 육체적 쾌락에 인간관계의 갈등이나 자연재해가 없는 천국, 거기서 지금 당신이 살고 있다고 치자. 그런데 단 하나, 그리스도께서 그곳에 없다면, 그런데도 거기가 당신에게는 천국인가? 여전히 당신은 만족할 수 있겠는가?(존 파이퍼, 하나님이 복음이다, 15)

당신은 어떤가?

나는 어떤가? 이건 내게 천국 자체를 뒤흔든 질문이었다. 나는 그리스도가 없는 천국에서도 만족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러니까 영원히 갈망할 정도로 천국을 진정 가치있는 대상으로 만드는 게 그리스도라면, 나는 지금 왜 이 땅에서 그분을 더 알고 더 많이 누리기 위해 더 노력하지 않는가?

누가 천국인가?

“복음은 사람들을 천국으로 보내는 길이 아니다. 복음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다.” 하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그가 자신에 관해서 그리고 복음과 천국에 대해서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시는가?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복음 속 가장 큰 선물임을 알았다.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빌 3:7-9). 세상 모든 것을 능가하는 진정한 보물은 그를 아는 것, 그를 얻는 것, 그리고 그를 갖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가? 사도 베드로는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 죽으셨습니다. 곧 의인이 불의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셔서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벧전 3:18). 그분은 우리가 단지 용서받아 지옥의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가질 수 있도록 고난받고 피를 흘리며 죽으셨다. 죄가 가져다주는 최악의 결과는 유황불이 아니라 분리이다(살후 1:9). 여러 가지 이유로 지옥은 고통스럽고 비참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도 여전히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것이나(계 14:10), 그것은 은혜와 기쁨이 아니라 무서운 진노이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구속받은 자들은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시편 43:4)라고 노래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기쁨과 즐거움이 단지 그분 옆 또는 주위에만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분 안에 기쁨이 있다. 그는 기쁨 그 자체이다. 그는 즐거움 그 자체이다. 그가 거하는 곳이 낙원이다. 우리가 사랑하고 갈망하는 다른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그분만 계신다면, 그곳은 낙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지금도 부분적으로 그의 임재를 경험한다. 그렇다. 우리 속에 남은 죄와 그 결과가 그의 임재를 방해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기쁨이 되실 때 우리는 지금도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지금도 쾌락, 영원한 쾌락을 음미한다. 그렇기에 시편 42편과 같은 기도를 드릴 수 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시 42:1-2). 구원이나 용서, 치유나 공급, 안도나 화해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주님을 갈망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하고 온전한 은사를 갈망하는 것도 아니다. 그 모든 은사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선물, 바로 하나님 그분을 갈망한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천국

천국을 기다리고 열망할 때,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요한계시록 21:4과 같은 약속에 매달린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눈물도, 더 이상의 죽음도, 더 이상의 애통과 울부짖음, 고통도 없다. 우리는 이런 모든 고통이 사라진 세상이 주는 달콤함, 그러니까 그림자가 아예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천국은 단지 안 좋은 것이 없는 곳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천국은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있음(presence)으로 정의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천국이 되실 때, 3절은 4절이 담고 있는 귀한 약속조차도 가려버린다.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 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계 21:1, 3)

죄와 슬픔, 죽음이 없는 세상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과 함께하는 세상이다. 그렇다. 그분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그렇다. 그분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질병을 치료해 주실 것이다. 그렇다. 그분은 마침내 그 무서운 적, 죽음을 없애실 것이다. 그 모든 축복이 무한하게 크지만, 하나님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에 비하면, 그 모든 축복은 바다 옆 웅덩이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가 흘리는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다. 모든 암을 고치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보잘것없는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무덤을 비우고 죽음을 전복시킬 수 있는 하나님이 우리 곁에서 영원히 우리를 지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에 눈이 멀어 하나님 그분 자체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잊어버리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자. 웅덩이에서 노는 데에 정신이 팔려 광활한 바다를 놓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면 안 된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지 않는 그 어떤 천국에도 만족해서는 안 된다. [복음기도신문]

마샬 시걸(Marshall Segal) | 마샬 시걸은 작가이자 desiringGod.org의 책임 편집자이다. Bethlehem College & Seminary를 졸업했으며, 한국어로 번역된 ‘아직 결혼하지 않은 당신에게’의 저자이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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