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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포커스] 꺾이지 않는 태국 반정부 시위대의 요구 “국가정체성 결정의 주도권을 국민에게”

태국 반정부 시위대. 사진: 유튜브 wion 채널 캡처

코로나 팬데믹의 방역정치로 절대 권력을 갖게 된 태국 정부가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를 틀어막고 있지만, 국민들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지난 2020년부터 시작된 태국의 반정부 시위의 배경과 성격을 동남아선교정보센터 조흥국 소장(부산대 국제전문대학원)이 정리한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2020년 2월 21일, 민주화를 지향하는 정당인 미래진보당(Future Forward Party)을 해산하라는 태국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민주화 운동가들로 하여금 태국 및 그 집권기관들과 정면 충돌하게 만들었다. 코로나 사태로 민주화 운동이 복잡한 양상을 띠는 가운데, 2021년 10월 31일 태국의 재개방 개시와 더불어 시위가 다시 터져 나왔다.

이 시위는 2014년 초에 있었던 시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군부는 쁘라윳 짠오차(Prayut Chan-o-cha) 장군이 주도한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으며, 그는 그 이후 지금까지 총리로 있다. 갈등해소 방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없다 보니, 정쟁(政爭)은 더욱 심화되었다. 그 결과, 정당성 그리고 정치적 해결책으로 사용되는 쿠데타와 시민 불복종의 역사적 악순환을 가져왔다. 2016년 푸미폰 국왕 서거는 국가와 군주제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그의 아들인 현 와치라롱꼰 국왕은 실제적인 정치 안정을 제공할 능력이 없다 보니 군부가 2017년 헌법에 따라 중재자를 자임하고 나서게 되었다.

태국은 결국 하나의 결과로 귀착될 두 가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첫째, 각기 다른 정치 구조와 통치 모델들 간 정당성의 위기이다. 시위자들은 위계구조, 후견주의, 연고주의 등의 태국 정치 기반에 공공연히 이의를 제기하며 군주제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2020년과 그 이후의 시위는 군주제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요구하는 이전의 시위와 차별된다. 고등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젊은 태국인들과 현 상태의 유지를 원하는 태국인들 사이, 정치 체제에 대한 그들의 희망에 있어 세대간 차이를 보여준다.

정당성 위기의 필연적 귀결은 태국의 민족주의와 태국의 국가 정체성을 누가 정의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싸움이다. 즉 국가기관이냐 아니면 태국인 그들 자신이냐? 만약 후자라면, 태국 시민들 중 어느 인구층이 그런 변화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가? 태국에서는 이미 시위가 늘어나고 있으며, 국왕과 다른 기관들은 더 이상 비난과 반대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변화의 성격을 규정지어야 할 사람은 태국인 그들 자신이다.

1932년 시암혁명 이후 입헌군주제로 시작된 태국의 근대사

1932년 6월 24일의 사건은 근대 태국 역사, 대중의 인식, 그리고 정체성에 큰 의미를 갖는다. 그날, 시암(Siam) 혁명으로 쁘라차띠뽁(Prajadhipok) 왕의 절대군주제는 막을 내리고 입헌군주제가 들어섰다. 카나 랏사돈(Khana Ratsadon) 즉 인민당이 주동하고 거행한 혁명으로 절대군주제는 민.군 연합정부, 그리고 입헌군주제로 대체되었다.

쁘리디 파놈용(Pridi Phanomyong) 총리 하에, 인민당의 6대 원칙은 민주화를 위한 청사진을 제공하려 했다. 그 원칙에는 누구나 교육 받을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최고 권력은 태국 국민에게 있으며, 태국 국민의 권리는 유지되어야 한다 등이 있다.

인민당은 비록 민주적 이상들에 고무되었지만, 그 이상에 걸맞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흔히 피분(Phibun)으로 알려진 육군원수 쁠랙 피분송크람(Plaek Phibunsongkhram)은 집권한 뒤 군부 독재정치를 시작했다. 그는 인민당의 민주화 추세를 뒤집고 모든 정당을 불법화했다. 또한 극단적 민족주의를 수용해, 반대파를 탄압하는 와중에도 태국의 정체성을 엄격히 정의하려고 했다.

인민당의 민간인 진영 지도자이자 1946년 헌법의 감독자였던 쁘리디 파놈용 아래에서 상황은 반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1946년 헌법은 뒤에 제정된 1997년 헌법과 더불어, 태국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 중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 1946년 헌법은 양원제의 채택, 그리고 선거에 의한 의회 구성을 명문화했다. (하지만, 이것은 1997년 헌법이 시행되고 나서야 실현되고 1997년 헌법 자체도 2007년 제정된 헌법으로 폐지되면서 태국 민주주의는 성립과 파괴의 과정을 되풀이 하게 되었다.)

1946년 헌법은 또 다른 육군원수 사릿 타나랏(Sarit Thanarat)의 1957년 9월 쿠데타까지 지속되었다. 이 쿠데타로 국왕은 다시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태국 정치 구조를 재조정하려는 잇단 시도들로 말미암아 민간인 출신 정치인들, 그리고 정당을 압박수단으로 활용하곤 했던 왕정주의 엘리트들 사이에 투쟁이 계속됐다. 이는 또한 민족주의와 국가 정체성에 대한 정의를 둘러싼 말싸움을 격화시켰다. 한 가지 시각은 관(官)주도 민족주의 시각으로 기존 엘리트들과 왕실에서 내세워졌다. 다른 하나는 상향식주도(bottom-up initiative)의 성격이 강한 민중 민족주의 시각으로, 태국 정체성을 전통적 엘리트들과 왕실의 후견을 배제하고 정의했다.

이런 오랜 시각 차이들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2006년 이래, 태국 정치와 담론은 대립하는 양 정치 진영을 ‘빨간 셔츠와 노란 셔츠’로 격하해 구분하고 현재는 “왕정파”와 “반왕정파”로 나뉘는 등 갈수록 양극화되고 있다. 특히 왕실은 군부가 탁신친나왓(Thaksin Shinawatra)과 그의 “빨간 셔츠” 지지자들의 과도정부를 전복했던 2006년 쿠데타 이래 태국 내 21세기 정치 논쟁과 심화된 양극화의 중심에 있다.

왕정파의 목소리와 2020년 시위자들

반복되는 현 시위는 2020년 2월 미래진보당 해산의 결과로 시작되었지만, 갈등 해결 장치가 없는 태국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혁명과 반혁명의 보다 오랜 역사적 악순환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현 시위는 민족주의와 국가 정체성 담론의 분열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군주제와 그 지지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시위자들은 민족주의 담론에 분열이라는, 반역에 해당하는 대죄(大罪)을 저지르고 있는 꼴이다. 태국의 정치 어휘는 태국 사회와 마찬가지로 심화되는 양극화를 겪어왔다. 왕정파에서 정적을 묘사하는 데 사용하는 한 가지 도발적인 용어가 “창찻(Chang-chart)”인데, “국가 혐오자”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2021년 7월 28일 한 시위자가 “태국은 국왕에게 속해 있지 않다”라고 항의하고 있다. 민족주의 담론에서 통합은 무엇보다 우위에 있다. 탁신 정부에 대한 군부 쿠데타는 “보전(preservation)” 측면에서 거행되었으며, 쿠데타 저항자들은 군주제, 그리고 사실상 자신의 “태국 정체성 (Thai-ness)”에 저항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보전”의 정당성은 2014년 군부에 의해 다시 사용되었다. 당시 군부는 법원이 명령한 잉락 친나왓(Yingluck Sinawatra) 총리의 경질에 대한 반대시위에도 불구하고 행동에 나섰다. 잉락 총리는 민주적으로 선출되었으나 권력 남용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어서 쿠데타, 그리고 쁘라윳 짠오차의 계엄령 선포. 그는 2019년 문제투성이의 투표로 총리에 당선된 후 지금까지 총리직에 있다.

국가 정체성을 둘러싸고 양극화된 상황을 놓고 봤을 때, 악명 높은 국왕불경죄(lèse-majesté) 혐의는 양 진영을 구분 짓는 또렷한 정치적 골을 상징한다. 여기서 군주제는 정체성 문제에 있어 핵심 주제다. 현실적으로 불경죄 혐의는 민주화 시위자들이 본질적으로 군주제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구속할 수 있는 완벽한 그물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정부는 군주제 개혁을 왕실 불경죄로 여긴다.

전직 공무원 안짠 P(Anchan P)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65세의 안짠은 원래 2015년 왕실에 비판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 영상을 공유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그리고 6년만인 2021년 1월, 그는 43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쁘라윳 집권 하에서 내려진 형량으로 가장 엄중한 이 징역형은 더 이상 시위를 못하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 판결은 결국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두 반대 진영의 불공평한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즉, 정부기관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군부에 기댈 수 있었다. 이러한 든든한 배경 덕분에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시위자들의 목소리와 향후 상황

요약하면 태국의 민주화 운동가들은 왕실의 정치 개입, 그리고 정치적 자기표현의 제한을 원한다. 인권변호사인 아논 남빠(Arnon Nampa)는 입헌군주제로 태국의 군주제 틀이 다시 세워지기를 기대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2020년 8월 탐마삿 연합전선(United Front of Thammsat)이 페이스북에 발표한 10개항 성명은 시위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2017년 헌법 6조와 불경(不敬)을 불법화하는 태국 형법 11조의 폐지를 주장했다. 또한 국왕이 더 이상 쿠데타를 지지하지 말고 여론에 영향을 끼치려는 시도를 더 이상 하지 말 것을 그들은 요구했다.

2020년 10월 ‘타이 인콰이어러(Thai Enquirer)’지에 게재된 공개서한에서 익명의 시위자는 국왕, 종교 그리고 국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새로운 정의를 내어놓았다. 필자는 이러한 개념들을 거부하기보다, 이들 세 가지의 개념을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 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태국의 정체성을 정의하려고 하는 시위자들은 대체로 젊고, 배운 사람들이며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만약 그들이 성공한다면, 전통적으로 보호돼온 국왕의 개념이 새로워질 것이다. 게다가, 시위에서 타이 여성들의 주도적 역할은 보다 포괄적이고 시민적인 마인드 위에 세워질 것이다. 이는 상향식으로 퍼져나갈 새로운 현상의 민족주의와 신전통주의로 나아갈 것이다.

어떻든 코로나 사태로 정부는 시위에 반대할 추가 구실을 갖게됐다. 태국 정부는 계획했던 외국 관광객에 대한 11월 1일 17개 지역 재개방을 앞두고 바이러스 전파 위험이 있다며 10월 30일의 집회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10월 30일 최소 1000명의 태국인이 방콕 거리로 나왔다.

만약 정부가 시위 열기가 가라앉을 것이라거나 또는 시위 주동자들을 계속 구금하면 국민의 불만이 잠잠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직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태국의 민주화는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군주제는 아직 지지를 받고 있긴 하지만 그 정당성은 도전을 받고 있으며 위신을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새 국왕이 장기 통치한 선대 국왕과 거의 같은 정도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로 인해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공평한 사회를 바라는 태국 시민들

궁극적으로, 시위자들의 원동력은 보다 공평한 사회에 대한 염원이다. 40세 이하 태국인들 사이에는 최근 빈번한 군사 쿠데타에 대한 좌절감, 그리고 그에 상관된 미래에 대한 비관주의가 있다. 시위자들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탄압적일수록, 자체의 허점과 약점이 더욱 드러나는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인식하고 있다. 또 보다 공평한 미래를 기대하고 태국 정체성을 스스로 느끼면서 담대해지고 있다. <The Diplomat 2021년 11월 2일자 Christian Kurzydlowski의 “Thailand’s Protesters are Battling to Redefine National Identity” 번역 정리>

cho.hk

조흥국 교수 | 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동남아선교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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