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자는 아룸 (옷 벗은 자)이다.
창세기 1:26~28절 가운데 중요한 단어 두 가지를 택하면, ‘하나님의 형상’과 ‘복’이라는 단어를 들 수 있다. 먼저 이 ‘복’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복’과 성경이 말하는 ‘복’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무엇이며, 누가 복을 소유한 사람인가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최고의‘돈’ 복을, ‘온 열방의 우상’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시편 135:15절에서, “열국의 우상은 은 금이요…돈이요”라고 했다.
세속적인 복에 대해 이 시간 진짜 복이 무엇인지 밝힘으로, 거짓의 옷을 활딱 벗겨 보자. 이 옷을 활딱 벗기지 않고, 진리가 실제가 되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가치는 세상의 가치를 따라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짓의 옷을 벗고 진리의 옷,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었으면 좋겠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한번은 ‘진리’와 ‘거짓’이 목욕을 하러 갔다. 그런데 진리가 목욕을 마치고 나와서 옷을 입으려고 하는데, 옷이 없어졌다. 느낌이 이상해서 창문 너머로 보니 아니, 거짓 이 놈이 진리의 옷을 입고 막 그냥 도망쳐 버리는 것이 아닌가! 난감한 상황이다. 거짓 그 놈을 잡으러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리가 아니면 몰라도 진리라 다른 사람 옷을 입을 수도 없고, 더더욱 그 놈이 벗어 놓고 간 거짓의 옷은, 입어서도 아니 절대 손대서도 안된다. 한참 고민하다 맨 몸뚱이로, 벌거벗은 몸으로 거짓을 잡으러 달려갔다.
영어 관용적인 표현으로 ‘절대적인 진리’(The absolute truth)를 말할 때 ‘옷 벗은 진리’(The Naked Truth)라고 표현한다.
아니 어떻게 벌거벗은 몸으로. 수치스럽게, 그래도 그럴 수는 없지 않는가! 무엇을 한 조각이라도 치부를 가리고 잡으러 가야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니요! 이미 치부를 가리는 자는, 한 조각을 붙이는 자는 진짜가 아니다.
수치를 무릅쓰고, 벗은 몸으로 잡으러 가는 자가 진짜다. 언어의 표현도 유일한 절대적인 진리를 표현할 때, ‘옷 벗은 진리’라 표현한다.
아들을 내 놓아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 복음이 실제라면, 당연히 옷 벗은 진리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에 복음이 들어있다.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는 자가, 참 복음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잠언 12:16절은 이렇게 말한다.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여기 미련한 자가 아닌, ‘지혜로운 자, 슬기로운 자’는 문자적으로, 히브리어로‘아룸’이란 의미는 옷 벗은 자이다.
언어유희를 통해 잠언에 쓰여진 히브리 단어, ‘아룸’,‘슬기로운 자’란 의미는 지혜 언어로, ‘벌거벗은’ 그런 의미다. 정말 멋있는 구절이다. 세상 가치의 더러운 옷을 활딱 벗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가 진짜 진리다. [복음기도신문]
김명호 교수(복음기도신학연구소)
필자는 이스라엘에서 구약을 전공하며 히브리어가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언어임을 깨닫고 현재 성경언어학교를 통해 믿음의 세대를 세우는 일에 전력하고 있다.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출처를 기재하고 사용하세요.> 제보 및 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