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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삶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때

사진: Jakub Kriz on Unsplash

“ 하나님의 일과 방식은 합당하다. 언제나 아름답고, 지혜로우며, 적합하다. 우리가 이를 다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

삶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질병이 찾아오고, 직장을 잃어버리고, 친구를 잃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때 미래는 불투명하게만 느껴진다. 암을 마주하게 된 백발의 성도든, 미래가 극심한 압박감으로 밀려오는 젊은 대학생이든, 아무리 믿음이 좋은 성도라 할지라도 삶의 위기와 고통 앞에서 당황하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어디서나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심을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도대체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다 이해할 수가 없어서 때로는 절망하게 된다. 이와 같이 삶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전도서의 전도자도 종종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전도자가 우울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전도서는 삶에 지쳐 낙담한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는 책이 아니라, 좌절한 사람들에게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발판을 놓아 주는 책이다. 전도자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간결한 희망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한다. ‘하나님의 일과 방식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삶을 즐겨라.’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잘 맞추어 가신다

전도자는 우리에게 이러한 확신을 심어 주려고 한다. ‘왜 삶이 이 모양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하나님께서 그 변화무쌍한 우리 삶을 총지휘하신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전 3:2). 전도자는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말로 시적으로 담아낸다. 그 모든 일, 곧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일, 모두 때가 있다는 것이다. 전도자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전 3:1). 누가 그 때를 정하는가? 전도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우리에게 답을 제시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전 3:11).

아름다움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합당하듯이(아 1:8, 15; 2:10),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당신의 뜻대로 아름답고 합당하게 만들어 가신다. 하나님은 예술가이시다. 인생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모자이크 작품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맞추어 절묘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내시는 장인이시다. 아마도 바울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라고 고백할 때 전도서의 이 말씀을 묵상하지 않았을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비록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지만, 전도자는 여전히 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을 고백한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이 문맥에서 “영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과 평행을 이룬다. 인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처음과 끝까지” 모두 이해하고 싶어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 본성을 “사람이 도무지 측량할 수 없는” 상태로 남겨 두셨다. 이에 대하여 니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y of Nyssa, 335-395)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새겨 놓으셨다. 바로 인간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를 결코 다 이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Homilies on Ecclesiastes, 79).

우리는 이와 같이 인간의 유한함과 하나님의 무한하심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의 무능을 깊이 깨닫게 된다. “사람이 애쓴다고 해서, 이런 일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겠는가? 이제 보니,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수고하라고 지우신 짐이다”(전 3:9-10). 전도자의 이 질문에는 사실 이런 부정적인 대답이 함축되어 있다: 일하는 사람이 그의 수고로부터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한다.

그런데 사람에게 무슨 수고가 있는가? 전도서 3:2-8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게 되는 여러 가지 수고가 들어 있다. 그런데 전도서 8:17은 우리가 하게 되는 특별한 수고를 말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두고서, 나는 깨달은 바가 있다. 그것은 아무도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뜻을 찾아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은 그 뜻을 찾지 못한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수고를 해도 도무지 하나님의 일과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처음에 했던 질문을 재구성해야 한다. “삶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묻는 대신에, “삶이 도무지 ‘우리에게’ 이해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물어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지혜를 따라서 모든 것을 사용하여 일하신다. 우리가 능력이 부족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하나님의 일과 방식은 합당하다. 언제나 아름답고, 지혜로우며, 적합하다. 우리가 이를 다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사야서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전혀 놀랍지 않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55:8).

하나님을 경외하라

그렇다면 삶이 도무지 우리에게 이해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도자는 우리가 허무주의의 체념 속에서 고통을 겪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제 나는 알았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언제나 한결같다. 거기에다가는 보탤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니 사람은 그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전 3:14).

하나님은 당신이 지으신 우리를 그저 가지고 놀면서 즐기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의미 없이 세상을 만들지 않으셨다. 인간이 아무런 희망도 없이 무지 속에 갇혀서 방황하길 원하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은 무한한 지식을 갈망하도록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이 갈망을 통하여서 인간이 당신을 경외하게 하셨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또는 관계 밖에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 삶이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아래 놓여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이를 겸손하게 인정해야 하며 동시에 이를 기뻐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합당하게 만들어 가심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밀어닥친 크나큰 재앙 앞에서 욥은 그의 아내에게서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는 게 낫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욥은 그의 아내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 하겠소?”(욥 2:9-10). 우리도 이렇게 말해야 한다. 불확실한 미래와 비극을 목도하더라도, 그 고통이 어떠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면서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욥 1:21) 고백해야 한다.

눈앞에 있는 삶을 받아들이라

우리는 두려움에서 멈추면 안 된다. 하나님을 바르게 두려워하는 것이 시작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거기서 더 나아가기를 원하신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전 3:12-13). 하지만 전도자의 이 가르침을 카르페 디엠, 할 수 있는 대로 오늘을 즐기라는 말로 읽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삶을 누리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셨다.

조 리그니(Joe Rigney)는 ‘땅의 것들(Things of Earth)’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촉구한다. “당신이 피조물임을 받아들이라. 하나님이 되고자 하지 말라. 대신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야기 속에서 당신에게 정해 두신 영광스러운 한계와 제한을 인정하라.” 리그니의 이 권고는 전도서 3장의 핵심, ‘하나님을 바르게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세상을 누려라’를 반영한 것이다. 하나님을 바르게 두려워하는 것은 곧 우리가 인간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원하고 노력해도 다가올 미래의 어두운 그림자를 알 수는 없다.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스스로 인간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요 우리가 하나님이 아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그리고 선하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을 받아들이고 이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은혜를 구해야 한다. 개와 함께 산책을 하면서 가을 아침의 시원한 공기를 즐기라. 사랑스러운 자녀들과 함께 따뜻한 초콜릿을 천천히 음미하라. 영원한 삶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의 직업에도 최선을 다하여 일하라. 우리 곁에 있는 병든 이들에게 손을 내밀라. 하나님의 일과 방식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선물들을 바라보면서 기뻐할 수 있다. 우리 삶에 폭풍우가 몰아칠 때 우리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를 맡긴다면, 수고스러운 우리 삶 가운데서도 그만의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이슨 드루치(Jason DeRouchie)는 유한과 무한, 좌절과 기쁨 사이에 있는 긴장을 다음과 같이 잘 요약했다. “이것이 전도서의 목표다. 믿는 이들은 이 땅의 저주와 복잡한 인생의 무게를 느끼면서 시선을 하나님께 돌리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안식을 누리면서, 아름답지만 이미 죄로 인하여 훼손된 이 세상 속에서도 할 수 있는 대로 기뻐할 수 있다”(Shepherding Wind and One Wise Shepherd, 15).

하나님처럼 선한 일을 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을 누리라고 가르친 다음에, 전도자는 우리가 더 좋은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고 말한.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전 3:12). 우리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들을 기뻐할 때, 우리는 하나님처럼 다른 이들에게 좋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기쁨을 풍성하게 누릴 때, 우리는 이 기쁨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다.

그렇다면 삶이 도무지 우리에게 이해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비록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을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좋은 일, 나쁜 일,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일 모두 다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으면서 받아들여야 한다. 주님과 함께 손을 잡고 인생을 걸어가며 주님께서 주신 크고 작은 선물들을 누리면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 삶을 함께 살아가도록 권하며 그들에게 선을 행해야 한다. [복음기도신문]

 비록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을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좋은 일, 나쁜 일,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일 모두 다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으면서 받아들여야 한다. 

Joshua Bremerman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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