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TGC 칼럼] 은혜는 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가능케 한다

사진: ⓒ Dev Benjamin on Unsplash

“ 어떤 게 하나님의 역할이고 어떤 게 당신의 역할인지 혼란을 느낄 때가 있는가? 당신이 그런 혼란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이 이것을 정말 곰곰이 생각할 때) 너무나 터무니없는 진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

뭔가 늘 부족하고 유능하지 못한 사람인 것처럼, 우리는 왜 매일 지쳐 있고, 두려워하고, 초조하게 애를 쓰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이 질문을 붙잡고 씨름한 지 몇 년이 됐다.

왜 우리는 마치 우리가 자원이나 시간, 성취, 명료성, 목적, 에너지, 확신,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수용과 환대가 부족한 것처럼 살고 있을까?

왜 우리는 친구로서, 동료로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지금의 내 모습 그대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살고 있을까?

전례 없이 많은 기독교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 목록을 채우고 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책장에 꽂혀 있는 이런 책들로 우리 세대를 판단할 수 있다면, 우리 시대의 여성은, 자력으로 성공하고 힘을 갖고 자유를 쟁취하여 이 시대의 틀을 깨트릴 수 있는 기회를 제한 없이 갖고 있으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불안과 압박과 부담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우리 중에는 이런 감정을 일상생활 속에서 마치 배경 음악처럼 느끼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함께 이렇게 노래한다. ‘내 목적을 놓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내 가능성을 놓치지 않으려면? 기대에 부응하려면? 인생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충분히 했다고 느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충분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터놓고 인정하지는 않지만, 나도 종종 나의 “달성”을 보장하는 공식을 찾고 있다.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을 없애 줄 무언가를 원한다. 목표에 도달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싶어 한다.

나만 그럴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자기 힘으로 이루려고 애쓰다

우리는 성적을 평가하고, 우리의 성과, 우리의 지지율, 우리의 소속감을 통제하려고 애쓰는 데 몰두하는 문화에 사로잡혀 있다. 사실은 훨씬 많은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 창조된 우리인데, 지금 우리는 햄스터 바퀴에 갇힌 채 우리 힘으로 애쓰고 있다.

누군가가 당신의 질병에 대해 처방전을 제공했는데 그 처방이 당신 상태에 대해 아무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다면, 처방전이 잘못되었거나 진단이 잘못된 것이다. 극도의 피로감과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려는 우리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이 ‘더 나은 전략’이라면, 왜 이런 처방전들이 효과가 없는 것일까?

우리는 성공을 위한 공식, 삶의 방향을 위한 전략, 또는 기분 좋아지게 하는 격려의 말을 끊임없이 찾으면서 이것들이 우리의 무능감(feelings of inadequacy)을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나은 길’을 주셨다. ‘뭐라고요? 그게 말이 되나요?’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할 수도 있는 길을 주셨다.

나의 이러한 충족감(adequacy) 탐구를 완전히 바꾸는 놓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진정한 이해였다.

나는 충족감이라는 개념을 진부한 틀에서 끌어내어 성경의 관점에서 새롭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내게 필요한 것은 최신 처방전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임을 알게 되었다. 끝없이 고군분투하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바른 진단과 진짜 해결책이었다.

체스터턴(G. K. Chesterton)이 ‘이 세상의 문제점’(What’s Wrong with the World)에서 내린 평가는 신랄하다. “기독교의 이상은 시도된 적도 없으면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어려운 것으로 결론이 났고, 그래서 시도되지 않은 채 내버려졌다.”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의기소침해지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체스터턴의 이 말 때문에 나는 위로를 받는다. 어떤 게 하나님의 역할이고 어떤 게 당신의 역할인지 혼란을 느낄 때가 있는가? 당신이 그런 혼란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이 이것을 정말 곰곰이 생각할 때) 너무나 터무니없는 진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를, 때로는 잠재의식 속에서, 경시하고 우리 자신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복음의 별난 주장(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예수님이 성취하신다)을 쳐다보면서 우리는 이것으로는 변혁과 변화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우리가 무엇인가를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변화를 위한 진정한 수단

예수님을 믿는 것에 우리의 노력을 더해야 한다고 말은 하지 않을 터이지만, 그러면서도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성과(또는 성과의 결여)에 연연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의존의 복음을 숭배하는 것이다. 자기의존이란 우리의 노력에 따라 우리가 통제할 수 있고, 조작할 수 있고,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은혜는 자기효능감(self-sufficiency)을 거부하고 자기 힘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오늘의 문화에 대항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그리스도의 삶과 죽으심과 장사지냄과 부활의 완성된 사역을 통해 당신의 기준을 충족시키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결과는 우리로 하여금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에 온전히 합당하게 하시어 더 이상 우리 스스로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을 획득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도록 훈련되고 준비된 자녀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우리 문화는 슬프게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마저도 자기의존의 유혹에 도취되어 있다. 예수님으로 충분하다고 말로는 신뢰를 표하면서도, 우리는 평생 ‘우리로’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면서 살아간다. 우리는 결국 우리의 변화를 위한 진정한 수단 곧 변화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계발 및 공식들로 대체한다.

오늘 당신을 지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불가능한 기준? 비교? 최선을 다했는데도 “아직 멀었어”라는 부담?

어머니, 당신을 압니다. 자녀가 “잘 되도록” 최신 양육 전략들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대학졸업생, 당신을 압니다.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세밀한 계획을 짜고, 당신의 삶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은사와 재능을 사용할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을.

나의 동료 여성 여러분, 압니다. 시작하기도 전인데 벌써 뒤쳐진 느낌이라는 것을.

여러분을 보면 내가 보입니다.

나도 그러한 삶을 이미 여러 번 경험해 보았고, 이제 당신에게 더 이상 그렇게 계속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자리게 있게 되었다. 은혜 안에 거하는 삶보다 스스로 은혜를 획득하려고 분투하는 삶에 빠지기가 더 쉽다.

은혜는 당신 자신을 갈구하는 삶을 멈추고 대신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갈구하고 살도록 만들어 준다. 은혜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지를 드러내지 못하는 나태함이나 무관심에 대한 변명이 아니다. 은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드러내는 데 함께할 수 있게 하는 촉매다. 당신의 아버지, 사랑의 아버지는 당신이 스스로의 힘으로 열매를 맺으려는 분투를 멈추고 당신이 해야 할 선한 일을 가지고 계신다(엡 2:8-10). 은혜는 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가능케 한다. [복음기도신문]

“ 은혜는 당신 자신을 갈구하는 삶을 멈추고 대신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갈구하며 살도록 해 준다 ”

이 글은 Ruth Chou Simons의 When Strivings Cease: Replacing the Gospel of Self-Improvement with the Gospel of Life-Transforming Grace(노력을 멈출 때: 자기계발의 복음 대신에 삶을 바꾸는 은혜의 복음을)의 일부를 간추린 것입니다.

루스 슈 시몬스 Ruth Chou Simons | 예술가, 기업가, 연설가. Wall Street Journal에서 ‘GraceLaced,’ ‘Beholiding and Becoming’ 등 여러 수상작과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출처를 기재하고 사용하세요.> 제보 및 문의:

Print Friendly, PDF & Email

관련 기사

20241218_Creation
[TGC 칼럼]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새 땅’이다
1218re
[김종일 칼럼] 2024 세계 이주민의 날에 생각하는 한국 교회의 사명과 역할
alex-shute unsplash
[GTK 칼럼] 진리가 무엇이냐?
pexels-241216-man-attention-listen
[TGC 칼럼] 아플 때까지 듣자

최신기사

[고정희 칼럼] 주님은 센토 아주머니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영철 칼럼] 글로벌 사우스, 역동적인 세계 선교의 주역으로 떠오르다
2024년 성탄절, 불의와 악행 멈추고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게 하소서
파키스탄 펀자브주, 종교적 소수자 현금 지급 시행... 기독교 지도자들 "일자리 창출해야"
한국 교계, 국난 처한 나라 위해 20일 '금식 기도의 날' 선포
[오늘의 한반도] 韓 국민 다수, 전통 성개념.남녀 간 결혼 지지… 제3의성.동성커플엔 부정적 외 (12/19)
[오늘의 열방] 러시아, 주거지 내 예배 금지 법안 발의 외 (12/19)
Search

실시간최신기사

20241218_Go
[고정희 칼럼] 주님은 센토 아주머니의 그리스도이십니다
20241218_O2
[오영철 칼럼] 글로벌 사우스, 역동적인 세계 선교의 주역으로 떠오르다
christmas
2024년 성탄절, 불의와 악행 멈추고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