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강사료를 너무 많이 주신 것 같으니 절반은 다시 돌려드리면 좋겠소… ”
교사 세미나를 마치고 강사료를 받아온 저에게 남편이 건넨 말입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는데 문득 돌아가신 엄마가 30년 전 하셨던 말씀이 남편의 말에 오버랩 되어 떠오릅니다.
“소영아, 나는 이 돈이 반갑지가 않고 왠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은 몇 달간 일해서 받을 돈을 너는 한 달 만에 벌었구나. 너, 그 회사 그만 두면 안 되겠니?”
첫 월급을 들고 자랑스럽게 집으로 달려간 날, 엄마는 전혀 생각지 못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돈 쫓지 말고, 사람 따라가지 마라. 다 썩어서 끊어질 줄이야.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 편에 서는 사람이 되어라.”
저는 석 달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고 엄마의 가르침은 제 평생에 기준이 되었습니다.
어느새 연말입니다. 지인들과 식사할 일이 종종 있는데 지난주도 약속이 있어 나갔다 왔습니다. 그날 저녁 남편은 속이 불편하다며 약을 찾으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보, 나는 아무래도 너무 잘 먹으면 안 될 것 같소.”
남편은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 저희가 외식을 할 때 정한 기준이 있습니다. 식비가 일인당 만원을 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군가 밥을 사주신다 해도 저희는 가급적 그 기준 안에서 식당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지키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준을 세우고 사는 것과 되는대로 사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휴대폰 절제를 위해 와이파이가 11시에 끊기도록 설정한 것도 저희 가족이 정한 약속이자 기준입니다. 무제한으로 열린 세상에서 제한을 두는 것 또한 쉽지 않지만 제한이 없으면 절제가 어렵고, 결국 무절제한 삶에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가족들이 휴대폰을 알뜰요금제로 바꾸면서 어려운 환경에 처한 몽골 어린이를 몇 명 더 후원하게 된 것은 절제의 열매입니다.
‘기준’의 사전적 의미는 “행동이나 가치판단의 근거”인데 제 어머니의 가르침도, 무제한에 제한을 걸어준 남편의 선택도 모두 그 기준은 성경이었습니다. 저희 가정의 기준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야고보서 1장 27절은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동안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말씀만 눈에 들어왔는데 요즘은 말씀의 후반부가 더 확대되어 보입니다. 아무리 고아와 과부를 많이 돌보아도 나를 지키지 못하고 세속에 물들어 버리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경건이 아님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나를 지키는 길은 기회가 되는대로 모두 누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기준 안에서 절제하고, 때로 결핍의 삶을 선택하고 훈련하는 것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복음기도신문]
지소영 | 방송작가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2013년부터 서산에 위치한 꿈의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현재는 학교와 교회를 중심으로 가정예배와 성경적 성교육 강의를 하고 있다. 결혼한 이후 25년간 가족과 함께 드려온 가정예배 이야기를 담은 ‘153가정예배’를 최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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