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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근본주의(2): 근본주의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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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2)

성경의 하나님은 종교에 대해서 관대하지 않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한, 어떤 것을 얼마나 신실하게 믿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성경과 다른 어떤 모습의 예배라도 받으신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주신 첫번째 계명은 “나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 . .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출 20:2-3)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믿는 사람이라면 다른 종교들도 사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없다. 기독교를 참 진리라고 믿는다면 그것만이 독점적으로 진리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핵심적인 메시지 중에 하나도 그분만이 진리를 주신다는 주장이었고, 그분의 진리에서 벗어난 모든 종교 체계는 다 거짓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현대 문화의 상대론적인 가치와 반대된다. 다원주의와 다양성은 절대 진리보다 더 높은 미덕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만이 옳고 다른 모든 신념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퇴보하는, 구식의, 무례한 행동으로 간주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진실되게 종교적 신앙을 가질 수 없고, 단지 신앙을 우리 개인의 취향 정도로만 둘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교회는 적어도 세기의 전환기부터 이러한 문제들과 지속적으로 투쟁해왔다. 종교적 기준과 신념에 있어서 폭 넓은 생각을 가지려는 이같은 호소는 항상 신학적 자유주의의 중심에 있었다. 참으로 이러한 생각은 자유적(liberal) 이라는 용어가 원래 의미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오늘날 유행하는 ‘관용’해야 한다는 호소는 복음주의 진영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이다.

자유주의는 거의 100년 전부터 개신교의 주요 교단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전에 성경적 진리에 헌신했었던 학교들은 그들이 지키기 위해서 설립했던 바로 그 교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프린스턴 신학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조차도 오랫동안 정통 개혁주의의 보루였지만, 결국에는 시대의 사조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래서 한동안 복음주의는 자유주의에 의해 완전히 압도되고 궤멸된 것처럼 보였다.

자유주의자들은 복음주의가 시대에 뒤떨어지고, 무지하고, 처절하게 편협하다고 특징지었다. 그들은 기독교가 모든 종류의 신념을 폭 넓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역사적 복음주의의 좁고 독점적인 본질이 그리스도를 적절하게 대표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관용과 자유주의가 현대 기독교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의 주장이 사람들의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올바른 교리는 타협과 자유주의가 들어올 길을 내주고, 심지어 교회 내에서 무엇을 믿지 않는 것이 오히려 높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후에 놀라운 운동이 시작되었다. 대서양 양쪽에서부터 복음주의자들이 근본주의(The Fundamentals)라는 일련의 글을 집필하는 것과 출판하는 것으로 연합한 것이다. 원래 열두 권으로 출판된 이 글들은 근본주의(fundamentalism)라고 알려진 운동의 토대를 마련했다. 제이 그레샴 메이첸, 제임스 오르, 알 에이 토레이(J. Gresham Machen, James Orr, R. A. Torrey)와 같은 사람들이 앞장서서 근본주의는 자유주의, 성서의 고등 비평, 진화론, 모더니즘과 싸우기 위해 올바른 교리를 채택했다.

근본주의에 대한 교리적 근거는 복음주의적 성공회,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메노파교, 독립교 및 다른 교단들을 포함하기에 충분히 포괄적이었다. 그들이 “근본(fundamentals)”으로 확인한 안건들은, 그들이 필수적이며 기본적이고 또 타협할 수 없는 진리로 생각되는 교리였다. 당연히 이 교리들은 자유주의와 복음주의를 구별하는 신앙의 글들이었다. 근본주의자들은 또한 이 글들이 참된 교회를 거짓된 기독교와 구분 짓는 교리라고 믿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동의한 근본주의의 글들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성경의 권위, 영감, 무오성이었다. 근본주의자들은 성서 고등 비평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성경이 문자적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과, 역사적으로나 사실적으로 정확하며, 신자에게 완전하며 유일한 구속력이 있는 규칙이라고 주장했다. 이 원칙들은 물론 다른 여러 가지 문제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결정하는 중요한 원칙들이었다. 만약 우리가 성경이 권위가 있고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창조 사건,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그의 육신의 부활, 기적과 같은 역사적인 주장을 논쟁할 정당한 이유가 없다. 우리가 성경이 신앙과 실행의 문제에 있어서 유일한 권위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종교적 추측이나 교회 전통을 성경과 나란히 둘 수 없다.

그리스도의 신성, 삼위 일체 교리, 십자가에 대한 그리스도의 대리 속죄, 부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 은혜로 의한 믿음을 통한 구원, 성화의 필수성, 다른 근본적인 교리들을 왜곡하거나 반대하는 모든 신앙을 거부하는 것, 이 모든 사안들이 “근본”으로 열거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초기 근본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을 맞서 진실한 기독교를 정의하기 위해 올바른 교리를 사용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실질주의적인 문제들만 주장했지만, 이론적인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 흔히 사용하는 자유주의적 슬로건은 “기독교는 삶이지 교리가 아닙니다”였다. 그러나 반대로 근본주의자들은 참된 기독교가 삶의 모든 방면에 영향을 주는 교리라고 올바르게 주장했다.

그래서 가능한 가장 넓은 범위의 신념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독교”라는 명칭을 기꺼이 확대하려는 사람들과 달리, 근본주의자들은 절대적이고 타협할 수 없는 객관적인 진리의 핵심을 찾아내려 했다. 그들은 올바른 교리의 본문이 모든 진실된 기독교의 기초라고 주장했다. 그들에게는 근본(fundamentals)을 거부한 모든 종교의 브랜드는 가짜 기독교 혹은 비기독교로 간주되었다.

근본주의자들은 주요 교단들의 대부분을 자유주의의 침식으로부터 회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적인 성서 진리에 충실한 새로운 학교, 새로운 교단, 그리고 새로운 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이 기관들은 1세기 동안 활발한 성장과 영적 영향력을 누렸지만, 주요 교단 교회들은 심각한 쇠퇴를 겪었다.

미국이 여전히 성경을 믿는 건강한 교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근본주의적 선조들의 업적이다.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기독교 신앙의 기초들을 지키지 않았다면, 미국 교회의 경관은 지금 독일과 같은 나라에서 보이는 황무지와 비슷했을 것이다. 유럽 교회는 자유주의의 가짜 기독교가 가져온 엄청난 손상에서 결코 회복된 적이 없었다. 유럽의 붕괴는 우리들에게 메이첸과 같은 사람들의 확신과 용기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을 심각하게 돌아보게 해준다.

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주의의 투쟁으로 인한 이득은 오늘날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지만, 근본주의 운동 자체는 결코 장수를 누리지 못했다. 근본주의 운동은 정점에 이르자 마자 거의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근본주의의 분열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복음주의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점이다. 우리는 다음 번 글에서 이 문제에 대해 짚어볼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카메론 부텔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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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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