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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TGC 칼럼] 의심 미화는 이제 그만!

Unsplash의 Markus Spiske

휴일 동안, 나는 바티칸 전통의 비밀스러운 세계와 추기경들의 교황 선출을 둘러싼 정치적 책략을 긴장감 넘치게 묘사한 새로운 영화 Conclave(콘클라베)를 보았다. 이 영화는 내가 작년에 읽은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지금 이 글은 이 영화의 탁월한 촬영, 연기, 음악을 평가하거나 스토리의 뛰어난 반전을 알려주려는 게 아니다. 교황청의 음모는 제쳐두고, 내 눈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가톨릭교회 내부의 “진보주의자”와 “전통주의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지속적인 싸움을 그린 이야기의 흐름이었다.

확신 vs. 의심: 중심 논쟁

이 영화는 추기경들 사이에 파벌이 존재한다고 설정한다. 좀 더 자유주의에 가까운 교회를 지지하는 그룹과 좀 더 보수적이고 견고한 믿음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그룹이 있다는 것이다. 콘클라베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 테데스코 추기경은 전통주의 입장을 대표하는데, 그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상대주의의 독재”[콘클라베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으로 선출되기 직전인 2005년 4월 18일에 라칭거 추기경이 로마 교황 선출을 위한 특별 미사에서 한 강론에 등장하는 표현_편집자]와 교회가 세상을 움직인다는 G. K. 체스터턴의 인용문[체스터턴의 1906년 출간 저서 찰스 디킨스: 비평적 연구(Charles Dickens: A Critical Study)에서 인용_편집자]을 모두 반영하는 연설을 한다.

추기경 선거인 여러분, 여러분의 임무는 우리 중에 존재하는 의심하는 사람들을 깨끗하게 무시하고 오로지 키를 단단히 잡고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선장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매일 새로운 “주의(ism)”가 생겨납니다. 그렇다고 모든 생각이 다 동등한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주장에 다 적절한 무게를 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일단 우리가 “상대주의의 독재”에 (매우 적절한 표현입니다) 굴복하고, 그래서 스쳐 지나가는 현대주의라는 종파와 유행에 맞추어 생존하려고 한다면, 우리가 탄 배는 항로에서 이탈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과 함께 움직이는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을 움직이는 교회가 필요합니다.

테데스코는, 랄프 파인스가 연기한 콘클라베 주재관 토마스 로렌스 추기경[해리스의 원작 소설에서는 이탈리아 출신의 자코포 발다사레 로멜리 추기경_편집자]과 대조를 이룬다. 진보적 비전을 대표하는 로렌스는 해리스의 원작 소설에서 거의 그대로 옮겨온 중요한 연설을 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어머니인 교회를 위해 봉사한 긴 생애 동안, 내가 다른 어떤 죄보다 더 두려워하게 된 건 다름 아니라 바로 확신이라는 죄입니다. 확신은 우리의 일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적입니다. 확신은 관용을 좀 먹는 치명적인 적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조차도 마지막에는 확신하지 못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마지막 순간에 그는 고통스럽게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저를 버리셨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의심과 함께 걷기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없을 것이고 따라서 믿음도 필요 없게 될 것입니다. ... 의심하는 교황을, 그 의심을 통해 가톨릭 신앙이 살아 숨 쉬는 신앙이 되게 하는 교황을, 그리하여 온 세상에 영감을 주는 우리 교회가 되게 하는 그런 교황을 허락해 주시기를 주님께 기도합시다. 죄를 지으나 용서를 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교황을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주님께 기도합시다.

이 연설에 등장하는 전제에 주목하라. 확신은 단지 죄일 뿐만 아니라 가장 두려운 죄 중 하나라고 한다. 일치는 선하고 관용은 필수적인데, 확신은 그 둘을 다 위협한다. 불확실할 때 우리는 십자가에 박힌 그리스도와 가장 비슷하며, 믿음은 우리가 의심할수록 더욱 살아 있는 신앙이 된다. 왜냐하면 확신은 모든 신비를 풀어버리고 믿음을 필요 없게 만드는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삶에서 확신은 악덕이고 의심은 미덕이다.

이에 대한 대답을 한마디로 하자면 이것이다: 터무니없는 소리!

의심의 힘?

먼저 복음서를 살펴보자. 예수님은 어디에서도 의심을 칭찬한 적이 없다. 대신에 믿음이 부족한 제자들을 꾸짖는다. 의심하는 제자들을 보며 좌절감을 느끼며 “왜 의심했느냐?” 하고 물으신다. 그가 누군가를 칭찬할 때에도 그들의 믿음 때문이었다. 사람의 배경과 상관없이 그를 놀라게 하는 건 오로지 하나, 믿음이었다. 그는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믿으라.”

교회 역사는 또 어떤가? 교회에 일치를 가져다주는 것은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다. 하나님 말씀의 진리성에 대한 확신이다. 위대한 신앙 고백에 대한 확신이다. 연합은 끊임없는 불확실성의 자세가 아니라 오로지 진리에 대한 고백에서만 흘러나온다.

게다가 역사 전반에 걸쳐서 우리는 믿음에 대한 고무적인 예를 만난다. 특히 영혼의 어두운 밤이나 악한 자의 끊임없는 속삭임을 견뎌낸 사람들 말이다. 이 세상에 영감을 주는 것은 의심이 아니라 의심을 극복하는 믿음이다. 원형극장에서 야수들을 만난 페르페투아와 펠리시타스를 생각할 때 우리가 기억하는 건 공포에 움츠러든 모습이 아니다. 용기와 확신에 찬 그들의 모습이다. 우리가 읽는 고전 작품은 또 어떤가? 혼란스러운 과거가 가져다준 불확실성에 몸부림치는 작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어떤 큰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진실을 끈기 있게 추구하고 분명한 확신을 찾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다.

물론 믿음의 삶은 쉽지 않다. 도마는 부활의 현실을 의심했다. 많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본 후에도 여전히 진실을 의심했다. 갈등은 예상되는 결과이다. 그래서 유다서는 “의심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라” 말한다. 하지만 기억하자. 의심에 대한 정직함은 미덕이지만, 칭찬은 의심 자체가 아니라 정직함에 주어지는 것이다.

지난 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확신과 자신감을, 일치나 관용, 또는 하늘이 금하는 믿음에 반대되는 무언가라고 부르면서 죄로 여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위대한 네덜란드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의 책 중에서는 ‘The Certainty of Faith(신앙의 확신)’이라는 제목이 붙은 게 있다. “확신” 단지 그 자체 때문에 적을 박해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에 대해서 확신하는가이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진실을 확신하는 사람은 누군가를 박해하기보다는 도리어 박해를 견뎌낼 가능성이 더 크다.

의심과 자신감

나는 지금 우리가 지금 하나님 신비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식으로 말하는 계몽주의 스타일의 확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깊고 지속적인 확신이다. 즉, 하나님이 실재하고, 예수님이 살아 계시며, 우리가 사랑받고 있으며, 결국 모든 것이 잘될 것임을 우리 뼛속 깊이 아는 것 말이다. “I know whom I have believed(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이라고 우리는 찬양한다. 레슬리 뉴비긴은 이렇게 표현했다. “그 확인은 입증 가능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확신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그를 통해 만들어졌고 또한 오로지 그를 위해 만들어진 존재, 바로 그 하나님으로부터 ‘나를 따르라’는 부름을 듣고 응답한 사람이 가지는 확신이다.”

의심을 미덕으로 바꾸고 오히려 확신을 악덕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동기 중 하나는 분명하다. 그건 어려운 질문을 억누르고, 비겁하고 자기중심적인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의심이나 불확실성의 표현을 억누르고, 그 결과 꿈틀거리는 양심을 숨기도록 강요하는 교회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다. 이런 공동체에서 수치심은 투쟁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의심의 여지가 있어서는 안 되는 특정 신앙에 대해서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신앙 공동체의 문제는 확신이 아니라 부정직함이다. 문제는 안정된 신앙이 아니라 위선이다.

의심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당연한 부분이다. 필립 라이컨의 말이다.

믿음과 의심은 한 번에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스위치가 아니라 밝기 조절이 가능한 조광 스위치와 비슷하다. 때때로 우리의 믿음은 밝게 타오른다. 그러다가 점점 어두워진다. ... 믿음과 의심 사이의 역동성이라는 길에서 우리는 지금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성령님이 우리의 믿음을 밝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것이 올바른 자세이다. 때때로 믿음과 의심 사이를 오가지만, 우리의 목표는 의심을 기뻐하는 게 아니라 나의 믿음이 더 밝게 빛나도록 하는 것이다. 의심이 믿음을 이겨서 믿음이 어두워지면, 우리는 그 상황에 머물고 싶지 않다. 하루라도 빨리 상황을 바꾸고 싶어 한다. “주님,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세요!” 외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때때로 영혼의 어두운 밤, 영적 건조함의 계절, 예상치 못한 질병과 고통의 발작, 그리고 기독교의 가장 대담한 진실 주장과 관련한 지적 걸림돌을 수반한다. 하지만 갈등은 당신이 나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지 평범한 그리스도인 중 하나라는 점을 말할 뿐이다. 어떤 경우라도 의심을 기뻐하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들어야 할 말은 의심을 뚫고 반대편에 있는 강한 믿음의 길로 나아가라는 것이어야 한다.

브래드 이스트는 ‘Letters to a Future Saint(미래의 성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점을 말한다.

의심은 도착지가 아니다. 단지 중간 기착지일 뿐이다. 그것은 길에 놓인 장애물이다. 따라서 의심은 현실적이고, 힘들다. 하지만 결코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의심을 원하거나 추구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추구할 대상은 오로지 그리스도이다. 그를 잘 따르는 것의 표시는 충실함이다. ... 순교자들은 질문 때문에 죽지 않는다. 그들은 살아 계신 그리스도 때문에 죽는다. 그는 나의 의심과 불안 속에서도 절대적으로 나와 동행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전적으로 내게 바라는 것은 내가 그 모든 의심과 불안을 떨쳐버리는 것이다.

아멘! 그러니 의심에다가 이상한 가치를 두는 짓은 이제 그만하자! “예수님께 오세요. 그러면 당신도 나처럼 불안해질 수 있을 거예요!” 하고 말하는 사람에게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사람을 당기는 힘은 인내, 확신에 근거한 자신감, 그리고 산을 움직이는 믿음이다.

원제: Enough with the Valorization of Doubt!

트레빈 왁스(Trevin Wax) | 트레빈 왁스는 LifeWay Christian Resources의 신학과 커뮤니케이션학과의 부학장이며 Wheaton College의 외래 교수이고, The Gospel Project의 편집자이다. ‘디스 이즈 아워 타임’, ‘일그러진 복음’, ‘우리시대의 6가지 우상’, ‘Gospel Centered Teaching’을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제보 및 문의: gpnews@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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