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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쿠데타 이후 민주주의 열망 커질듯… 고난 이기고 복음전파 기대

사진: YDJ 제공.

[선교통신] 미얀마 쿠데타에 대한 이해와 선교 전망 (2)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는 왜 쿠데타를 일으켰을까? 1000명 이상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하고 시민들로 구성된 민주진영의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의 군사정권에 대한 무장항쟁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것 같은 미얀마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러한 상황에 놓인 미얀마 선교 방향에 대해 현지 전문가의 시각을 소개한다. <편집자>

쿠데타와 국제적 역학 관계

네윈이 1962년도에 쿠데타를 일으켜 버마식 사회주의를 선포하면서 중국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또한 러시아와 북한과도 수교했지만, 북한과는 1983년 10월 아웅산 묘 폭파 사건으로 인해 단교했다가 2007년 4월에 재수교를 했다.

현재 중국과 미얀마의 관계에는 양국 상호의존적인 요소가 있다.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과 인도를 견제하고, 특히 중국은 인접국인 미얀마를 자기편에 서게 하여 미국의 ‘중국 인접국을 통한 중국 흔들기나 포위’ 전략의 일부를 무력화시키게 되었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전략 중의 하나인 인도·태평양 4개국 쿼드에도 인도를 견제하는 발판이 되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중국 본토의 서부지역 해상실크로드의 출발점으로 중국에게는  미얀마가 필요하다. 이는 스리랑카로 이어져 서남아시아와 인도양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중국은 2009년 3월에 완공된 양곤-만달레이 고속도로 건설을 지원했고, 만달레이에서 중국의 윈난성까지의 물류 이동로도 완공시킨 상태이다.

중국은 북서부 지역의 항만이 없기에 미얀마의 양곤이나 더웨 항만의 이용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물류 이동이 말라카 해협을 거쳐야 하기에 비용 절감을 위해서라도 미얀마의 항만 이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또한 미얀마 내의 천연자원, 농산자원, 보석(비취)류 등의 대부분을 미얀마에 대한 경제원조와 군부 체제보장과 군사적 지원을 미끼로 이전부터 중국이 가져가고 있다. 러시아는 군사적 지원의 일환으로 군사 고문단 파견과 군수 물자 등을 지원하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는 한때 핵 개발과 관련된 불법무기거래로 인해 2010년 7월에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의 공개적인 경고를 받기도 했다.

미얀마 군부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비호하에 군사,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므로 쿠데타 이후 그 주역인 민 아웅 흘라인이 제일 먼저 중국을 방문하고, 그 후에는 러시아를 방문했다.

국제 정치적인 측면에서 미국과 인도가 손을 잡고 중국의 팽창주의 야심을 막으려 하지만 이번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로 인해 이미 파키스탄과 손잡은 중국은 미얀마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중국은 서남아시아와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로의 연결이 수월해짐으로 인해 ‘일대일로’의 일환인 해상실크로드의 계획이 더욱 힘을 얻는 상황이 되었다.

개신교 현황… 아도니람 저드슨 선교 전래 이후 208년

개신교 역사는 1813년 7월13일 아도니람 저드슨이 미얀마 입국 이후 올해로 208년이 되었으나 그간 미얀마 전체적으로 이렇다할 부흥이 없었다. 1962년 미얀마가 사회주의 국가가 되기 이전에 공식 250여명(비공식: 1000여 명)이 넘는 서구 선교사가 있었으나 모두 추방됐다. 헌법상 현지인에겐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고 있으나 형식상이다.

2007년 2월 영국의 구세군 본부에서 미얀마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보고하자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 이곳의 기독교 단체인 MCC, 가톨릭, 이슬람, 불교 단체들이 신문에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알리는 광고를 게재케 하였다. 미얀마는 불교가 국교는 아니지만 국교나 다름이 없다. 미얀마의 새해 명절(4월)이면 쉐다곤 파고다에서 정부 수뇌들이 많은 시민들과 함께 새해 맞이를 한다. 

2016년~2021년 1월까지의 아웅산 수지 정부 집권 시에는 정치, 경제, 교육, 사회, 문화, 종교적으로 군정 때보다 자유로움이 분명히 있었다. 특히 교육 제도의 개편과 소수 종족들의 행정부 요직으로의 진출,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인의 정치 및 행정부 수반 진출 또한 이루어졌다. 부통령 1인과 하원의장이 소수종족출신 기독교인이었으며, 각 주별로 기독교인들이 요직에 진출함에 따라 기독교계의 활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쿠데타에 대해 미얀마의 최대 교단인 침례교단과 복음주의 계열의 ‘미얀마 복음주의 기독교 연합회(MECA, 부통령 소속)’가 쿠데타 반대 입장을 공식 선언함으로써 앞으로 군부로부터 어떤 불이익이나 탄압을 받을지 장시간 지켜봐야 할 것이다.

2014년 유엔 인구 조사에 따르면, 전 인구 약 5500만 명 가운데 불교 88%, 기독교 6%, 이슬람교 4%, 기타 2%를 차지하고 있다. 2006년 공식 통계상 양곤에만 93개의 신학교와 16개의 성경학교가 있고, 기타 군소 신학교를 합하면 100여 개 이상으로 추산된다. 정부에서 공식 학제 인정을 하는 신학교는 없으며, 교회는 양곤과 북쪽의 깔레묘, 미찌나, 에야와디 주의 일부 지역 등에 집중되어 있다. 교회 수는 2006년 공식 통계상 양곤에만 353개로, 침례교회 80개, 감리교 12개, 장로교 6개, 순복음 계통 214개, 기타 40개 교회가 있다. 고아원은 74개, 미션 센터 29곳이 있다. 2006년 현재 양곤의 가정교회(Home church까지 합하면 교회는 500여 개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는 6000여 개로 추산하고 있다(침례교 4,000, 기타 2,000).

가장 큰 교단은 약 200여 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침례교단이며, 그 외에 감리교, 극소수의 장로교, 순복음 교단이 있다. 북쪽 지방의 깔레묘, 미찌나에는 외국의 지원으로 세워진 규모가 큰 교회당들이 많이 있다. 또한 양곤에는 주일에 700~1000명 정도 예배드리는 교회가 5곳 이상이나 있다. 교회로부터 구제를 받는 교인들이 더 많이 베푸는 교회로 옮겨가는 것과 지방의 기독교인들이 양곤으로 집중됨으로 인해 실질적 성장보다는 수평이동이 더 많다. 순복음 교단은 1930년대에 미얀마의 ‘붓다오’라는 곳을 통하여 미얀마에 들어오게 되었고 1950년대 이후 순복음 교단 장을 지낸 ‘우 묘칫’ 목사 주도하에 세를 결집하여 순복음 교단을 설립하였다.

소수 종족 중 ‘친’족 약 100만 명 중 90%, ‘까친’족 약 80만 명 중 70%, ‘까렌’족 약 300만명 중 40% 등의 기독교 인구 성장이 있으나, 자기 종족 중심의 성장이며 다른 종족으로의 복음 전파가 매우 더딘 상황이다. 이유로는 자종족 중심주의, 다른 종족과의 갈등, 지역간의 거주 이전이 힘듬, 사회적인 종족 차별 등이 있기 때문이다. 친 종족은 순복음 계열, 까렌족은 침례교 계열이 주를 이루고 있다. 2004년도에는 정부의 명령으로 양곤의 40여 개 교회와 신학교 두 곳이 폐쇄되었다가 신학교는 2005년도에 다시 문을 열기도 하였다. 2016년 이후에 직업 선택의 폭이 넓어지며 외국으로의 근로자 취업 문이 넓어지면서 순복음 계열의 군소 신학교들이 학생 부족으로 폐교를 하며, 미얀마 내 전체 기독교 인구수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불교도들의 고발이 있으면 언제든지 교회는 폐쇄된다. 불교도들은 이슬람교는 폭력적이라고 하여 매우 싫어하나 반면에 기독교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면이 있다. 기독교는 선행을 많이 하는 좋은 종교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여긴다.  

요즈음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이슬람은주로 남쪽의 말레이시아와 북쪽의 방글라데시로부터 유입되고 있으며, 미얀마 월드비젼 종교 담당자였던 사람은 비공식적으로 이슬람 인구를 10%까지 내다보고 있다. 이슬람교에 대한 대비책도 시급한 실정이며 구원파, 통일교, 다락방 등 이단들의 활동에 대한 대비책도 필요하다.  

나면서부터 불교적 생각과 삶의 방식에 젖어 있는 미얀마 사람들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크신 성령의 역사 없이는 매우 힘들다. 특히 버마, 몬, 라카인, 샨 종족은 800여년간의 매우 강한 소승 불교도들로서 정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시지 않으면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가 없다. 

앞으로의 전망

현재 대도시 중심으로 현 군정에 대항하는 측면에서의 폭발물 투척이나 정부 건물 방화와 군정에 협조하는 이들을 살해하는 일들이 도심에서는 산발적으로 지속될 것이기에 미얀마인이든 외국인이든 외출시나 주거지 선택시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전 군부 치하에 비밀경찰이 있었고 인터넷이 안되던 시기에도 사역은 조심스럽게 진행했었기에 좀 더 조심하며 주의를 기울이면 선교는 가능하다. 물론 특별한 경우 외에는 직접적인 복음 전파보다는 간접적인 복음 전파방식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웅산수찌 여사 집권 시는 종교 간의 공평성을 유지하는 편이었으나, 군부는 예전부터 불교도의 민심을 얻기 위해 불교 우위 정책을 시행해 왔다. 이번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도 불교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승려들과 절에 쌀과 기름 등 필요한 생필품들을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 예상되는 것은 강성 불교도들이 군부와 연계하여 타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유·무형의 핍박을 할 수 있단 점이다.

또한 외국으로부터 유입되던 재정 지원과 인적 교류들이 어려워질 것이다. 의료 사역 같은 경우는 더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며, 지역 이동 간의 신고와 이에 따르는 통제로 사역적 어려움이 예상된다. 미얀마 입국은 단기 여행객이나 비즈니스 신분만이 공식적으로 미얀마 입국이 되는 관계로 법제화가 되어갈수록 선생들의 일반 신분 보호책이 필요하다.

사역 활동시에 가장 주의해야할 점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과 불교도나 승려들과의 다툼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추방과는 좀 다르긴 하지만 예전에 탈북민으로 인한 추방이 한 건 있었고, 부지 문제로 승려와의 다툼으로 인해 태국 대사관에서 입국 불허로 추방된 케이스가 있다. 일반인으로는 2007년 승려들의 샤프론 항쟁 시 여행업을 하는 사람이 한국의 모 방송국과 인터뷰를 통해 군부를 비판하며 미얀마 민주주의를 역설하므로 미얀마 군부에 체포되기 전에 한국으로 출국한 경우가 있다.

당분간 기독교 활동이 통제와 감시하에 위축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특별히 조심스러운 상황은 군부를 경험해보지 못했던 2015년 이후에 입국한 선교사들의 사역이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NGO사업들도 중지시킨 상태이며 ‘응우웨 퓨(white money, 깨끗한 돈)’라 하여 돈의 흐름과 자금 출처에 대한 것까지도 통제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하여 당분간은 모든 것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신교와 관련해서는 약 200여 년의 기독교 역사 전체적으로 불교의 암묵적인 억압을 받으며, 소수 종족을 중심으로 신앙을 유지해온 상황속에서 지난 5~6년은 자유로운 기간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시금 자유롭지 못한 상황으로 접어들었기에 조심히 움직여야 할 것이다. 민심을 얻어야하는 군부는 전 인구 약 89%인 불교도들과 약 50만의 승려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에, 상대적으로 타종교 특히 기독교를 은연중에 억압할 것이 분명하다. 이전에도 승려들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확장을 막기 위해 불교도들에게 설법 시간을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 왔었다.

미얀마 기독교인들과 사역자들이 믿음으로 지혜롭게 대처하지 않으면 군부 치하에서 또 다시 신앙적 어려움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

맺는 말

미얀마의 현대사는 한마디로 쿠데타의 연장선상에 있다. 군부 집권이 기정사실화되어 가는 가운데 장기 집권 체제로 들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군부도 어떻게 손을 쓰기가 어려운 일이 진행되고 있다. 바로 미얀마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코비드19의 확산이다. 더욱이 변종이 발견되고 있어 얼마나 심각해질지 가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심각한 생존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교회들도 마찬가지다. 이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주님의 특별한 도우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코로나19는 세계적인 것이라 하지만, 미얀마의 현대사 속에 반복 답습되는 쿠데타의 연속은 언제까지일까?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미얀마의 큰 아픔과 시련을 지켜보고만 계시는지 생각해 볼 때 아주 조심스러운 전망을 하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유교와 대승불교를 바탕으로 조선왕조 500년 동안 형성된 봉건적 사상과 인식구조 및 체제들이 일제의 식민지배, 6·25 등을 겪으며 많은 부분이 와해되고 완화되어 1960년대 이후 복음의 결실을 크게 이루어 갔다. 그렇듯이, 미얀마의 국민들에게도 코비드19와 함께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배, 연속적인 군부 쿠데타와 민주 항쟁을 거치면서 현재 겪는 희생과 아픔의 시간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강해질 것이다. 더불어 강한 불교적 세계관은 약화되어 복음 전파의 더 큰 결실을 이루어내기 위한 움츠림의 시간이 아닌지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선교타임스 · GP선교회 제공] <끝>

YDJ 선교사

[선교통신] 미얀마 쿠데타에 대한 이해와 선교 전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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