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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칼럼] 와

파독 간호사. 사진: 유튜브채널 MBClife 캡처

나는 화란 유학 시절에 하루는 관광 가이드로 돈을 벌었다. 독일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독일에서 암스텔담으로 왔다. 암스텔담의 첫 번 하는 관광은 보트투어로 암스텔담 카넬을 한 바퀴 도는데 한국말로 안내하는 자가 없어서 내가 투입되었다.

지금부터 49년 전이니 나는 별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독일 광부와 간호사들을 위해서 나름대로 한 시간을 배에서 관광 가이드를 하고, 독일 돈 100마르크를 벌었다.

그 후 독일의 광부와 간호사들이 있는 도시에서 주말마다 와서 예배를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주말마다 6~7시간을 가서 다시 돌아오는 것은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가난한 한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뜨거운 지하갱도에 들어가 사력을 다해서 석탄을 캐는 한국 광부들, 그리고 독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시체 닦는 일을 비롯, 허드렛 일도 하는 간호사들의 눈물과 땀, 그리고 고독을 누군가 달려 주어야 했는데, 그들의 간청을 공부 때문에 들어주지는 못했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간호사들 중에는 틈만 나면 한글 포켓 성경을 읽고 있었던 분들의 모습이 반세기가 가깝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힘들고 고된 일과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간호사들을 잊을 수 없다. 그런 신앙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으켰다.

한편 독일의 광부와 간호사들을 생각하면 박정희 대통령이 생각난다. 때마침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지 42주년이 되었다. 그동안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에 대해서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평가를 했다. 한편 종북세력들과 북한 집단은 박정희 대통령을 개발독재, 군사독재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대통령이 되지 않아야 될 사람으로 비판하고, 반민주주의 아이콘이라고 평가절하하였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5000년의 가난의 때를 벗고, 말 그대로 <조국의 근대화>의 견인차 역할을 했고, 우리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임을 세계가 다 인정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 가보면 그들이 말하기를 ‘대한민국은 박정희 대통령 같은 위대한 인물이 있었기에 오늘의 선진한국과 세계를 리드하는 국가가 되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바로 박정희 대통령 때문이다’라는 것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의 지식인이나, 공부 좀 했다는 교수들, 언론인들만은 박 대통령을 폄하하는 세력들이 많다.

박정희 대통령의 재임 시절 독일어 통역관이었던 백영훈 박사의 기록을 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12월 8일 서독의 엘 하르트 총리에게 「국민을 먹여 살릴 돈을 빌려달라」고 애절하게 호소를 하면서, 「우리 국민 절반이 굶어 죽고 있다. 우리는 거짓말 안 한다. 빌린 돈은 반드시 갚는다」고 울먹였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가난한 조국을 후대에 물려주지 않겠다는 집념을 가졌다. 지하 탄광 갱도에서 목숨을 바쳐 일했던 파독 광부들과 동양에서 온 천사들이란 말을 들은 파독 간호사들이야말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하는데 초석이었다.

1961년 5월 16일, 군사 혁명을 한 박정희는 <하면 된다>는 의지만 확고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경제는 말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절망과 기아선상의 우리 백성들을 살리려고 했으나 돈이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기에 누구 하나 도와준다는 나라가 없었다. 심지어 미국 케네디 대통령에게도 문전 박대를 당했다. 미국이 5·16 혁명을 인정 못하니 원조는 안된다는 논리였다.

또한 국교도 없는 일본에 돈을 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신흥대국 서독을 생각 했던 것이다. 서독도 분단국가의 아픔과 패전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나라임을 보면서 박 대통령은 <우리도 전쟁의 빚더미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구자>라고 생각했다.

독일 측은 한국으로부터 광부와 간호사들을 파견해 주면 그것을 담보로 한국에 돈을 꾸어준다고 했다. 당시 한국은 40%가 실업자이고 국민소득이 79달러 시절이었다. 말하자면 세계의 거지국가였다.

독일 광부 30%가 대졸자들, 그들은 지하 1,000m에서 생명을 걸고 일했다. 1977년까지 독일로 건너간 광부는 7,932명, 간호사는 1만 226명이었다. 1964년 12월, 박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할 때, 우리 비행기가 없어서 독일의 상용 비행기를 빌려 타고 갔다.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독일에서 그토록 수고하는 간호사와 광부들을 만나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았다. 물론 광부들과 간호사들도 조국의 대통령과 영부인을 보고 애국가를 부를 때, 모두 눈물 바다가 되었다.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위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예지와 영도력이 없었다면, 서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눈물과 땀이 없었던들 오늘의 번영된 대한민국은 없었다. 1961년 5월 16일, 혁명하던 그 날 새벽, 박정희 소장이 장도영 참모 총장에게 드리는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약에 우리들이 선택한 이 방법이 조국과 겨레에 반역이 되는 결과가 된다면 우리들은 국민들 앞에서 사죄하고, 전원 자결하기를 맹세합니다」라고 썼다.

박 대통령은 조국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위해서 생명을 걸었다. 당시 파독 광부들과 파독 간호사들도 생명을 걸었다. 그래서 모두들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손을 잡고 흐느껴 울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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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박사 | 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40여년간 목회자, 설교자로 활동해왔으며, 최근 다양한 국내외 시사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조명한 칼럼으로 시대를 깨우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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