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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권 칼럼]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페미니즘, 문화막시즘 그리고 카타르시스적 좌파

▲ 지금 우리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문화막시즘도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필자는 최근 출간한 <문화막시즘의 황혼>에서 문화막시즘을 일종의 희생자의식 문화(victimhood culture)로 파악해서 분석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연구결과가 있어 소개합니다. 최근 임지현 교수(서강대 사학과)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라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지인의 소개로 접하고, 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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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임지현 저

지금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를 소란스럽게 하고 있는 현대 급진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희생자의식 페미니즘에서 출발합니다. 문화막시즘도 희생자의식 문화입니다. 최근 문화다양성법 비판 학술대회에서도 21세기 미국 대학가에서 부상하는 급진좌파적 희생자의식 문화를 비판한 바 있습니다. 한국 좌파 진영에서도 나름 새로운 희생자의식 문화의 문제를 인정했는지 이 책을 여러 곳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급진좌파적인 페미니즘, 젠더이데올로기, 문화막시즘, 워키즘(wokeism, 깨시민주의: 편집자주)도 비판적으로 성찰해 주시기를 기대해봅니다.  

Victimhood은 피해자를 뜻하는 Victim뒤에 영어 접미사 -hood이 붙은 용어입니다. 영어 접미사 hood는 ~의식 또는 ~인냥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Victimhood이라고 하면 본인이 실제로 희생자였는가 아닌가와 상관없이, 희생자인냥 하는 것 혹은 희생자적인 그 무엇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스스로 희생자라고 간주함으로서 자기가 가진 민족주의(혹은 정체성 집단)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이번에 발간된 이 책은 영어로는 ‘victimhood nationalism’이라 쓰고 한국어로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라고 번안한다면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들 수 있습니다. 한국어로는 ‘피해자의식 민족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래 내용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라는 책 내용에 대한 일반적 소개입니다.

그러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전후의 기억 문화에서 전쟁과 식민주의, 제노사이드의 무고한 피해자(victim)가 조국, 민족, 해방, 혁명, 평화, 인권, 민주주의 등의 대의를 위한 이타적 희생자(sacrifice)로 승화하는 단계에 출현한다. 이는 또 먼저 ‘피해자’를 질료(어떤 실체의 바탕을 이루는 재료: 편집자주)로 대상화한 후, 그 대상을 ‘희생자’로 승화시켜야만 역사의 무대에 등장할 수 있다.

억울한 죽음을 운명적 희생으로 받아들이는 죽음의 승화 의례는 죽음과 불멸에 대한 민족주의적 상상력과 코드를 공유한다. 무의미한 고난과 억울한 죽음이 민족적 대의를 위한 희생으로 각인되는 순간, 그 희생은 민족주의에 영속적인 생명을 불어넣는 불멸의 죽음으로 승화된다.  

동아시아의 한자 문화권에서 공통으로 사용되는 ‘희생’은 제사 때 제물로 바치는 산 짐승을 일컫는 말로, 순수한 흰 색깔의 제물인 양을 뜻하는 犧와 제사 때 통째로 바치는 소를 뜻하는 牲의 합성어이다. 영어의 sacrifice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sacer와 뜻이 거의 일치해서 흥미롭다. 한자어에 바탕을 둔 한국어나 일본어 등 동아시아의 언어권에서 해를 입는다는 수동의 뜻을 가진 ‘피해’와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 등을 버리는 능동적인 행위로서의 ‘희생’은 분명히 구분된다. ‘희생’이라는 단어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다는 의미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거나 도덕적으로 정당한 대의명분을 위해 자신의 목숨과 재산, 명예 등을 기꺼이 바치는 주체적 결단과 행위라는 의미가 압도적이다.

동아시아의 언어권에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犧牲者意識 民族主義)’라는 한자어를 사용하면 거의 그대로 의미가 통한다고 볼 수 있다. ‘희생자’라는 단어 뒤에 굳이 ‘의식’을 붙여 ‘희생자의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피해자를 희생자로 승화시키는 기억의 전이 과정을 담기 위해서이다. 실제 희생자가 아닌 ‘포스트메모리’ 세대가 가진 역사의식으로서의 ‘세습적 희생자의식’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정일권 박사의 블로그 ‘르네 지라르의 미메시스 이론과 문화의 기원’에 게재된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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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권 박사 | 전 숭실대학교 기독교학대학원 초빙교수.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 수학 및 연구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 신학박사(Dr.theol). 학제적 연구프로젝트 박사후연구자 과정(post-doc) 국제 지라르 학회(Colloquium on Violence and Religion)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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