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나의 갑작스런 복통으로 잠이 깬 우리 부부는 기도 책자에 나오는 인도 여성들의 인권에 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새벽에 열방의 여성 인권 얘기라니, 주님의 강권하심이었다.
이 뜬금없는 대화로 떠올리게 된 작품이 바로 미국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이 자동차 사고 시리즈였다. 여기 에는 처참한 자동차 사고가 반복되고 있는데, 이러한 반복에 대해 워홀은 트라우마와 같은 강한 충격도 무한반복 될 때 원래의 큰 충격이 소멸된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그러나 우리를 더 경악하게 만드는 것은 사고 차량에서 전봇대로 튕겨 나간 피해자를 보고서도 태연히 갈 길을 가는 한 행인의 모 습이다.
이 태연한 목격자의 모습은 많은 학자들이 주석을 달 정도로 논란 거리가 되었다. 행인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우리의 감정의 종류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과 이를 의도적으로 반복한 워홀의 목적에 대해 수편의 논문 들이 쓰여졌다. 그러나 주님은 그 새벽에 나에게 다급한 한 가지 음성만을 들려 주셨다. 이 목격자가 네 모습은 아니냐? 한국 교회는 아니냐? 열방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우리 영혼의 상태는 아닌가?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 1:3-4)
다가오는 새해, 열방을 향한 느헤미야의 ‘상한 심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길 주님께 기도한다.
[GNPNEWS]
그림설명: 앤디 워홀, 자동차 사고 시리즈, 1963, 실크스크린 글. 이상윤(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