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학대에 관한 이야기를 그렇게 외면하는 일은 억압받고 힘없는 자들과 함께하셨던 예수님을 외면하는 일이다 ”
한번은 동성애의 유혹을 받고 있는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망이 무엇인지를 강의한 적이 있다. 강의를 마친 후에 ‘라이나(가명)’라고 하는 자매가 나를 찾아왔다. 라이나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한 남성과 결혼했지만, 결혼 생활이 순탄하진 않았다.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녀는 열여섯 살 때부터 시작해서 무려 3년 동안, 자신이 소속된 여학생 그룹의 리더에게 성적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 그 후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라이나는 수치와 혐오와 근심과 혼란이 뒤섞인 감정에 압도되어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겐 자신의 마음을 깊이 공감하며 그 고통을 지혜롭게 살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오랫동안 그야말로 아연실색케 하는, 끔찍한 성적 학대 이야기를 많이 들어 왔다. 현재 내가 맡고 있는 사역은 성적인 죄악과 씨름하며 그 고통을 극복하고자 도움을 찾는 이들을 대상으로 상담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들 중 대다수는 자신이 성적으로 죄를 범했다기보다 그 죄의 희생양이 된 경우에 속한다. 그래서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레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어떤 때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도 있다.
성적 학대는 개인의 인격에 깊은 상처를 주는 폭력이다. 다시 말해, 피해자의 육체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그 영혼에도 깊은 타격을 준다. 만일 당신이 성적 학대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자 한다면, 굳이 나와 같은 상담사역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다 보면, 친구나 가족 또는 직장 동료가 우리를 신뢰하여 자신이 받은 학대 경험을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 우리에게 자신이 받은 학대 경험을 이야기한다면, 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미리 생각해야 한다. 우리를 신뢰하여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을 깊이 공감하며 돌봐 주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사항을 유념해야 한다.
1.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활짝 열어라: 우리가 듣는 이야기는 현실이다
나에게 상담 받으러 오는 여성 가운데 80% 정도는 어떤 형태로든 성적 학대를 당한 일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성적 학대에 관한 뉴스나 통계를 접할 때, 우리 자신이 속한 교회나 일터에도 그러한 학대를 겪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최근 교회를 동요시킨 성적 학대에 대한 추문들이 어떻게 취급되었는지를 살펴보면, 학대받은 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거나 신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용기 있게 나서서 자신의 경험을 나눈 이들은 재차 상처를 받게 되고, 또는 다른 피해자가 추가로 발생하기도 한다. 성적 학대에 관한 이야기를 그렇게 외면하는 일은 억압받고 힘없는 자들과 함께하셨던 예수님을 외면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성적 학대가 어떤 형태의 고통인지 알고자 하는 마음을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또한 그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들으며 심적인 부담을 함께 감당할 수 있도록 깊은 긍휼의 마음을 품게 해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우리가 듣는 이야기는 현실이다. 피해자는 매주일 예배 시간이나 자매들이 모이는 성경공부반에, 또 형제들이 참석하는 수양회나 신학교 교실에까지, 아니 더 나아가 일상적인 활동을 하는 거의 모든 영역 속에 나타날 수 있다. 사람들에겐 상처가 있다. 그러므로 깊은 공감으로 수용되는 경험이 그들에겐 필요하다.
2. 귀를 기울이고 알아 가라: 답변을 주는 일부터 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고통에 대해 무어라 말하기 전에 그 고통스런 경험을 이해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이때는 상대방의 경험을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개 책이나 아티클로만 그러한 경험을 접했기 때문이다(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듯 말이다). 성적 학대는 쉽고 빠르게 극복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그 충격이 피해자에게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을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그 일이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 알아 가기 위해서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한 행동이 우리가 사랑의 마음을 품고 가장 먼저 보여야 할 태도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이야기해 줄 수 있느냐고 부드럽게 요청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사랑의 마음으로 경청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상대방으로서는 오랫동안 마음에 묵혀진, 어쩌면 수십 년 간 어두운 내면에 감추어진 일을 빛 가운데 끄집어내어 말하기도 어려운 말을 전달해야 하는, 그야말로 극심한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치유에는 시간이 걸린다. 결국 예수님이 돌아와 만물을 회복시키는 그 날이 오기까지는 완전히 해결될 수 없는 슬픔과 아픔 그리고 상처가 남아 있게 마련이다(계 21:1-5). 그러니 기억하기 바란다. 상대방을 치료하거나 고치려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귀를 기울여 그 아픔을 함께 짊어지는 데 우선적인 임무가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3. 실제적인 돌봄을 제공하라: 또 다른 도움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영적인 도움과 실제적인 돌봄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우리는 사람들의 영혼과 육체를 함께 돌보신 예수님의 사역을 반영하며 전인적인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 바로 ‘지금’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려 주는 단서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상대방에게 필요한 그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특히 성적 학대를 최근에 당한 경우라면(혹은 이미 수개월이나 수년이 흐른 경우라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문제에 관해 자문해 봐야 한다.
– 상대방이 의학적인 처방을 즉시 필요로 하는 상태인가? 그럴 경우, 직접 상대방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야 하는가?
– 상대방이 경찰에 신고해야 할 학대를 당했는가? 그럴 경우, 경찰서에 함께 가거나 상대방을 위해 신고해 줄 수 있는가?
– 상대방이 혼자 있는 상황을 두려워하는가? 그럴 경우, 며칠이나 몇 달 동안 상대방을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지낼 수 있는가?
– 상대방이 자신의 경험과 그 결과가 어떠한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이 곁에 있는가? 가령 교회 목사나 리더, 상담가나 친척 아니면 친구가 주변에 있는가? 그럴 경우, 그 사람의 도움을 구해 보도록 상대방에게 제안할 수 있는가?
성적 학대의 피해자는 트라우마에 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상담가라든가 자신의 고통을 함께 짊어질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람의 돌봄이 장시간 필요하다. 상대방이 처음으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고 해서, 우리가 마지막까지 그 문제의 해결사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4. 예수님을 의지하라: 그분의 도움 없이는 지혜롭게 사랑할 수 없다
끝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해야 한다. 또 그분의 몸 된 교회를 이루고 있는 다른 지체의 손길을 구해야 한다. 성적 학대를 당한 사람을 돌보는 일은 한 개인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우리의 빈약한 사랑과 의지로는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과 함께 슬퍼하거나 충분히 그들의 아픔을 돌볼 수 없다. 따라서 우리 바깥에서 주어지는 새로운 능력과 지혜가 요구된다.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분의 성숙한 지체나 노련하고 지혜로운 상담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야 상처 입은 친구를 제대로 도와줄 수 있다.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시 9:9). 깨지고 멍든 인생이 우리 앞에 있는가? 그렇다면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보여 주자. [복음기도신문]
“ 성적 학대의 피해자는 트라우마에 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상담가라든가 자신의 고통을 함께 짊어질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람의 돌봄이 장시간 필요하다 ”
엘렌 메어리 다이커즈 Ellen Mary Dykas | 30년 동안 목회, 2007년부터 성 및 젠더에 관한 교회 교육을 전담하는 Harvest USA에서 여성 사역 코디네이터로 활약.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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