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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통신] 희생자에서 회복자로의 여정, 그리고 복음의 신비

▲ 애투또 형제. 오영철 선교사 제공.

그는 미얀마 군의 희생자였다. 가족의 희생은 너무 무겁고 치명적이어서 평생에 남을 깊은 흉터로 남게 됐다. 이번에 신학교를 졸업한 ‘애뚜토’ 학생 가족의 아픈 가족사는 이 시대의 아픔이다.

1997년 미얀마의 서부 국경에 있는 카렌 지역은 미얀마 군의 군의 공세로 약탈과 파괴를 경험했다. 그의 가족은 그런 폭력 앞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그 해에 그들은 카렌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고향을 떠나 피신해야 했다. 이후 4년 넘게 밀림에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8명의 형제 자매 가운데 3명이 희생되었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명예로운 죽음도 가족에게 평생 깊은 슬픔으로 남는다. 하물며 억울하게 죽어간 가족들의 죽음은 어떠할까. 그 상황에 대한 분노가 오랫동안 뒤따랐다. 게다가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원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고향에 있으면 아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원치 않은 피신 속에서 벌어진 일이다.

2001년 애뚜토 가족은 태국에 있는 카렌난민촌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1997년 일곱 살 때 고향을 떠난 후 4년여 만이다. 2006년 그의 나이 16세 때 그의 가족은 전혀 다른 세계로 이주했다. 스웨덴 정부가 그들을 난민으로 받아 준 것이다. 이는 2004년 유엔에서 카렌난민문제 해결을 위해 12개국과 협력한 재정착 프로그램 참여국에 난민이 원한다면 그 나라에서 받이겠다는 협약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청소년기에 스웨덴으로 가게된 그는 2017년에 평범하지 않은 결정을 한다. 11년만에 태국으로 돌아와서 카렌어로 신학공부를 하게된 것이다. 태국을 떠날 때는 난민신분이었지만 다시 이곳으로 올 때는 스웨덴 시민이 되어 있었다. 애뚜토와 그의 부인은 4년 동안의 신학 공부를 마무리하고 6월 28일 스웨덴으로 돌아간다.

떠나기 전, 몇 번 개인적으로 만났다. 오늘 마지막으로 신학교에서 특별한 시간을 가진다. 애뚜토 형제의 부르심과 앞으로의 사역에 관한 것을 나누기 위해서이다. 그는 돌아가면 유럽 여러 나라에 흩어진 카렌 난민들과 스웨덴인을 위한 교회 사역을 하려고 희망한다. 그가 소망하는 사역의 의미와 가능성을 나누었다. 소위 ‘디아스포라’ 선교에 관한 것이다. 유럽에 흩어진 카렌족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애뚜토는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함을 나누었다.

‘디아스포라’는 유대인들이 바벨론 제국에 의해 고국에서 추방되어 전세계에 흩어진 사건에서 나온 단어이다. 지금은 그 의미와 대상이 확대되어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외국인들을 의미한다. 유럽에 온 카렌 난민들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태국 국경의 카렌난민촌에 있다가 유럽의 여러 국가에 있는 카렌들은 대략 5천여명이다. 스웨덴, 노르웨이와 핀란드에 1천 명 이상이 머물고, 네덜란드, 아일랜드, 영국에 각각 수백 명이 있고 체코에도 소수가 있다. 7개국에 있는 카렌침례교인들은 1년에 한번씩 모인다. 청년들은 유럽카렌침례교 청년회를 조직하여 정기적으로 모인다. 애뚜토는 그 모임을 이끌다가 왔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목사님!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요?”
대화 중에 나온 그의 질문은 그의 삶의 여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그는 안정된 삶을 살아 본 적이 거의 없다. 미얀마군 공격을 받고 피신해야 할 때가 7살이었다. 5년 동안 밀림에서 이어진 그의 삶은 언제나 생명의 위협에 놓여 있었다. 그의 3명의 형제는 그 위협에 희생 되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도망, 궁핍, 불안, 두려움이 이어지는 삶이었다. 어떤 사람이 한 평생을 두고 경험할 사연보다 많은 사건을 그 압축된 기간에 겪어야 했다.

스웨덴에서도 그는 정서와 사회적 관계의 영역에서 안정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았다.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얻고 시민권을 취득하여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지만 모든 것이 안정된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언어와 사회적 연약함을 가진 이방인이었다. 불확실함과 불안정은 그의 삶의 한 중심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은 신앙인으로 본질적인 질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을 찾기보다 하나님의 큰 뜻을 나누었다.
“국가도 자유도 없었던 난민촌에 살다가 스웨덴 국가의 시민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애뚜토 형제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요?”

크게 보면 그의 인생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여정임을 나누었다. 그리고 디아스포라의 장점과 가능성 그리고 선교적 의미를 나누었다. 더 나아가서 고통과 아픔을 지난 사람들의 타자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설명한다.

“희생자들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타자의 아픔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쩌면 가장 큰 희생자이십니다. 십자가의 사건이 그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픈 사람들이 쉼과 회복과 고침을 얻는 것입니다.”

같이 나누고 질문과 대답을 하는 가운데 그의 모습이 더욱 밝아졌다.
“네. 오늘 나눔과 공부를 통하여 앞으로 다가올 저의 사역에 더 확신이 생겼습니다.”

인간은 어려운 환경에서 연약성을 쉽게 드러낸다. 폭력과 궁핍 그리고 깊은 슬픔과 두려움이 계속되는 환경은 인간의 성품을 왜곡시키거나 심각한 장애를 줄 수 있다. 주위에 그런 분을 볼 때에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 애뚜토는 그런 환경에서 자란 희생자이다. 그런데 그는 연약한 희생자의 비극적인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민족뿐만 아니라 스웨덴을 위한 회복자로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온라인으로 멘토링을 계속하기로 했다. 선교적 공동체로서의 카렌 디아스포라의 사역을 구체화하기 위함이다.

애뚜토가 살아온 삶은 세상적인 관점으로 복된 삶은 아니다. 그런 과정의 흉터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렇지만 그 삶이 있었기에 더 풍성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십자가의 사건이 부활로 이어질 줄을 예상했겠는가? 고통과 수치의 십자가이기에 복음의 의미는 더욱 분명하다. 그 사건은 이천년 전에 끝나지 않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애뚜토의 삶과 비전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상처입은 치유자 예수님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희생자에서 회복자로서의 애뚜토의 여정이 기대된다.
복음이란 참으로 신비롭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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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철 선교사 | 1995년 GMS 선교사로 태국에 파송된 뒤, 현지 신학교에서 학생과 목회자를위한 교수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곳에서 소수부족인 카렌족교회가 주민족인 타이족을 위한 선교적 교회를 세우는데 관심을 갖고 이들을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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