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그 강하고 순수한 인간성이 아니라, 타락으로 인해 연약해진 인간성을 그가 취하셨는데, 죄는 없으신 존재로 이 세상에 오셨고, 일정한 기간 동안 이 세상에 살았어도 죄가 없는 분이셨다는 것이 성육신의 신비인 것이다 ”
타락한 사람들을 위한 구원자를 보내주신다고 우리의 첫 부모인 아담과 하와(창 3:15)와 거룩한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실 ‘때가 찼을’ 때에(갈 4:4) 참으로 그 ‘구원자’를 보내주셨다고 믿는 것이 기독교다. 그 약속의 성취자로 오신 분이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구약의 약속을 중요시하고 그 약속의 연속성을 강조하면서 그 성취를 말해왔다.
놀라운 것은 다른 이가 아니라 하나님 아들, 즉 ‘성자’(God the Son)가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성자를 때로 ‘말씀’(Logos)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말씀이 인간성을 취하신 일을 우리는 전통적으로 ‘성육신’이라고 부른다(요 1:14). 영원부터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셔서 나사렛 예수로 사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이루셨다. 그리고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시다가(행 3:21) 다시 오셔서 구속을 온전히 이루실 것이다. 이 ‘그리스도’가 없다면 기독교는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기독교에서는 가장 기초가 되고, 핵심적인 일이다. 과연 이 성육신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진 것인지를 살펴보자.
성육신에서 이루어진 일
성자는 참된 인간성을 취하셨다. 또한, 성자는 영원하신 신격을 가지고 계신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위의 위격성을 신격이라고 하며, 그중에서 ‘성자’는 그가 영원부터 가지신 신성에 더하여 인간성을 취하셨다는 말이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성이 인성을 취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성부나 성령은 이렇게 인성을 취하지 않으셨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오직 성자만 그가 본래 가지신 신성에 더하여 인성을 취하시는 놀라운 일을 하신 것이다.
그것도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그 강하고 순수한 인간성이 아니라, 타락으로 인해 연약해진 인간성을 그가 취하셨는데, 죄는 없으신 존재로 이 세상에 오셨고, 일정한 기간 동안 이 세상에 살았어도 죄가 없는 분이셨다는 것이 성육신의 신비인 것이다.
성자는 성육신을 위해서 성관계 없이, 즉 남성의 관여가 없이 성령의 능력으로 복된 동정녀 마리아의 태에 수태되셨다. 이런 일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서 이런 일이 그녀에게 일어 날 것이라고 했을 때, 마리아는 “나는 남자와 성관계를 하지 않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물을 정도였다(눅 1:34: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성자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동정녀에게 수태되는 방식을 통해 영원하신 신성을 그대로 가지고 계시면서 동시에 인간성을 취하심으로 성육신 하셨다. 그래서 성경은 그가 여자에게서 나셨다는 것(갈 4:4), 그것도 동정녀에게서 나셨다는 것(마 1:23, 25, 눅 1:27, 29, 사 7:14)을 강조하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히 2:17)라고 말한다. 그것이 기독교라고 했다.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님이 죄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같은 인간성을 취하셨음을 명확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인간성을 취하셨으므로 그는 목마르기도 하셨고(요 19:28, 4:7), 주무시기도 하셨다(마 8:24;막 4:38). 신성으로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시 121:4) 하나님의 아들이 인성으로는 졸기도 하시고 주무시기도 하신 것이다. 우리는 상상하기 어려운 성육신의 신비의 한 측면이 여기에 있다.
이 때 성자는 인간의 몸만을 취하신 것이 아니라 참된 인간의 영혼도 취하셔서 참 사람이 되셨다. 그러므로 신성을 가지신 한 사람이 있게 된 것이다. 오직 나사렛 예수만이 그런 분이시다. 오직 그만이 신인(the God-man)이시다. 이 신인을 인정하고 그 앞에 있을 때만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다.
성육신과 관련하여 기독교가 아닌 것들
그러므로 성자가 하나님이심을 온전히 부인하면서 예수님은 그저 온전한 사람이고, 우리의 좋은 선생님이며, 모범이라고만 하는 소시니우스주의나 유니테리언주의, 여호와의증인이 참된 기독교가 아니듯이, 성자의 온전한 신성을 부인하면서 ‘성부 보다는 조금 못하신 하나님’, ‘피조된 하나님’, ‘하나님이 되신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아리우스주의도 진짜 기독교가 아니다.
또한 성자는 온전히 하나님이시니 졸지도 아니하셨다고 하는 생각은 비기독교적인 것이며, 성자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인간의 몸만을 취하셨다고 하면서 그가 인간의 영혼을 취하셨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이단이며 기독교적 가르침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따로 인격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 그는 신성의 인격과 인성의 인격, 즉 두 인격을 가졌다고 하는 것도 이단적 가르침으로, 이런 것을 네스토리우스를 따르는 이단이라고 한다. 또 그것의 변형으로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셨을 때는 더 이상 인간성이 필요하지 않아서 이제는 그가 다시 신성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옳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성육신에서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에 있다는 것을 잘못 이해해서, 이제는 그 인성과 신성의 혼합이 일어나 인성도 아니고 신성도 아닌 제3의 성질로 변하여 신성화된 인성을 가지고 계신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단적 생각이다. 그것을 주장했던 유티케스 또는 유티쿠스란 이름을 따서 유티케스를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열한 모든 것들은 칼케톤 공의회(451년)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있는가?
그러므로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 16:15)라고 질문하고 계신다. 열두 사도의 대표자로 베드로가 잘 대답하여 칭찬을 들었던 것과 같이, 우리도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바르게 고백해야 한다. 나사렛 예수가 ‘신적인 메시아’이심을 제대로 고백하는 곳에 기독교가 존재한다. “예수는 메시아, 즉 그리스도다”라는 것이 최초의 기독교적 선포(kerygma)였고, 우리의 본래적 신앙고백(credo)인 것이다.
이 대답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이 타락했을 때, 그 몸과 영혼이 다같이 타락했기에 인간의 몸과 영혼을 다 취하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의 구속과 부활에 우리를 동참시켜 주심으로써 영혼과 몸 전체로서의 온전한 인간이 되도록 구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인간성의 몸과 영혼을 다 취하셨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영은 취하지 않으셨다고 주장하던 라오디게아의 감독 아폴리나리우스와 같이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은 이단적이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인간성 전체를 취하셨음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해오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도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셨다”라고 했다(히 2:14). 우리의 몸과 영혼을 다 구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인간성 전체, 즉 인간의 몸과 영혼을 취하셨으나 죄는 없으시다고 믿는 것이 성육신을 바로 믿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우리의 ‘임마누엘’이 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마 1:23). 이것을 바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이 땅에서 기독교를 없애는 꼴이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인정해야 한다. 매일매일의 삶 가운데 그와 함께 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또 그리스도 없이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에게서만 유일한 참 사람됨이 있음을 천명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참 사람됨을 구현해가며,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도록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 우리의 몸과 영혼을 다 구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인간성 전체, 즉 인간의 몸과 영혼을 취하셨으나 죄는 없으시다고 믿는 것이 성육신을 바로 믿는 것이다 ”
이승구 | 기독교교의학(CHRISTIAN DOGMATICS) 전문 연구하는 신학자. 총신대 기독교교육과 졸업, 합동신학대학(MDiv)과 영국 The University of St. Andrews(PhD)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21세기 개혁신학의 방향’, ‘성경신학과 조직신학’ 등 다수.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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