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열방을 예배하게 하는 선교사로 부름 받았습니다.”“この世で礼拝をささげる宣教師として召されました”

십자가복음이면 충분한 윤석주 선교사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하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함께 모여 공동체로 살면서 부르신 모든 현장에서 삶으로 예배하는 선교단체가 있다. 윤석주 선교사가 대표로 섬기는 위드갓미니스트리는 ‘음악적 재능이 아니라 십자가복음이 유일한 예배의 근거’라고 담대히 고백한다. 화려하지만 방탕했던 작곡가의 삶과, 대형교회에서의 예배사역을 책임지면서 경험했던 절망을 통해 음악적 재능이 아니라, 오직 복음만이 예배의 근거임을 깨닫게 된 윤석주 선교사를 만났다.

– 작곡가로 활동하셨지요?
“청소년기에 어머니의 깊은 병환으로 쓰라림을 경험했어요. 가정형편이 어려워지고, 축구선수의 꿈이 좌절되면서 내적인 방황을 겪었어요. 그때 음악에 깊이 빠지게 되었죠. 그러다 20대 초반에 우연히 작곡가 생활이 시작되었고, 한동안 나름 잘 되었어요. 그러다 제가 기획한 앨범이 완전한 실패작으로 판명되면서 모든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졌죠. 게다가 주변의 오해를 받으면서 다시는 작곡가로서 활동을 전혀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어요. 그래서 원치 않게 모든 일들을 내려놓게 되었죠.”

– 어려운 시간을 보내셨을 것 같은데요.
“힘들었죠. 잘 알지도 못하던 하나님이 갑자기 원망스러웠어요. 알콜중독이 심해지면서 자살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주변을 정리하는데 부모님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어차피 죽을 건데 효도라도 좀 하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부모님 댁으로 들어갔죠.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 간 저녁 예배 시간에 주님이 저를 찾아와 주셨어요. ‘내가 너를 오래 기다렸고, 너를 사랑한다.’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어요. 너무 벅차서 울고불고 떼굴떼굴 굴렀어요. 그렇게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교회에 미쳤죠. 실제로 ‘돌아온 탕자, 윤 장로님 둘째 아들 미쳤다.’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죠(웃음).”

– 그렇게 시작된 신앙생활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1년은 너무 행복했어요. 그런데 2-3년이 지난 후에 알게 된 절망적인 사실은 내가 성경이 요구하는 대로 살 수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마치 불난 집에서 비상구를 발견했지만, 빠져나갈 수는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죠.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작업실에서 무심코 틀어놓은 설교 말씀을 들었어요. 마치 망치로 귀를 때리는 것 같은 충격적인 말씀이었어요. 바로 십자가복음에 대한 설교였죠. 그날 작업실에서 엄청 회개를 하고, 이 십자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갈망에 사로잡혔죠. 그리고 지난 2005년에 십자가복음이 제 삶의 결론이 되었어요.”

현실은 빠져나갈 수 없는 비상구…

– ‘십자가복음이 삶의 결론이다’라는 말을 좀 더 설명해 주시면.
“한 마디로 ‘나는 죽었다.’는 거죠.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내가 죽었고, 이제 내 안에 예수님이 사셔서 나의 인생을 그분이 계획하신대로 이끌어 가신다는 거에요.
사실 이전에 죄악과 방탕으로 가득 찬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에 제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쉬웠어요. 그런데 그런 죄인인 나를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데, 해답을 몰라 깊은 목마름이 있었거든요. 드디어 확실한 해답을 얻은 거죠.”

– 그 이후에는 어떤 걸음을 걷게 되셨는지.
“제가 음악을 했으니까 음악으로 내 삶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저는 죽었으니까요.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찬양사역을 하게 되었어요. 그것도 소위 ‘대형교회’에서요. 그때는 주님이 이끄셨다는 믿음으로 시작했었죠.”

– 교회에서 찬양사역을 섬기시면서 느꼈던 점이 있다면
“저는 너무너무 절망했어요. 사실 복음의 진리로 저의 삶이 구체화되고 실제가 되는 과정이 없이 전임 사역자가 된 거죠.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청년들과 부대끼면서 복음을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했지만, 돌이켜 보면 숨겨진 죄악 된 모습들이 있었죠. 눈에 보이는 죄의 열매들은 없었지만, 여전히 나의 만족과 유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저의 죄 된 모습을 직면할 수밖에 없었죠.”

– 그런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셨는지
“제 안에 모순과 갈등이 깊어져갈 2011년 연말에 주님께 저의 모든 것을 허물어 주시고, 진리 안에 새롭게 되어 오직 주님 한 분만 남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하시더라고요. 2012년이 되면서 교회 안에 여러 사건들이 터지면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제가 찬양사역을 비롯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되었어요. 그렇게 실제로 모든 것이 허물어지니까 사역에 대한 욕심,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여러 가지 불순한 생각과 동기들, 이런 제 안에 있던 모든 더러운 것들이 드러나더군요. 더 깊은 절망을 경험했지만, 동시에 굉장히 기뻤어요.”

완전한 절망적 상황에
기쁨이 찾아오고

–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기쁠 수가 있었나요?
“제게 복음이 결론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새로운 차원의 절망 속에서 다시 복음 앞에 서 보니 ‘이처럼 소망 없는 내게도 십자가복음이면 충분하구나!’라는 결론을 다시 붙들 수 있게 된 거죠.”

– 교회사역을 내려놓은 이후에 삶을 나눠주세요.
“주님께서 저를 다시 복음 앞에 세우실 때, ‘너 정말 나 하나면 충분해? 오직 믿음으로 살 수 있겠니?’라고 물으셨어요. 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아멘’ 했죠. 그랬더니 주님께서 ‘사람 의지하지 말고 내가 인도하는 대로 살아’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리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주님의 인도하심만 구하던 중에 이곳으로 오게 되었어요. 현재 살고 있는 이 집이 원래 폐가였어요. 그런데 뜯어내고 수리하고 청소 했어요. 그때 창기 같은 저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황폐한 땅을 물댄 동산으로 바꿔주신 것처럼 이곳에서 주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죠. 그리고 ‘위드갓(WithGod)’이라는 선교단체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 완전히 새로운 출발이군요.
“작년 말부터 주님이 허락하신 이곳에서 기도와 예배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먼저 위드갓이라는 이름을 주시면서 선교단체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갖게 하셨어요. 시간이 흘러 올해 1월 1일 신년예배를 드리는 중에 마태복음 28장 19-20절 말씀을 통해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그 복음을 지켜 행하게 하는 데까지 섬겨 그들이 복음을 주신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기 위해 조건 없이 섬기는 단체로 불러주셨어요.”

– ‘위드갓’에 대해 좀 더 소개해주세요.
“저희 위드갓은 예배사역자를 훈련하고 파송하는 선교단체에요. ‘너희는 가서 온 열방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라!’는 소명을 받았어요. 복음을 모르고 예배한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먼저 복음으로 거듭나서, 훈련을 받고, 파송 되어서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선교사로 부름을 받은거죠.”

– 위드갓의 모든 사역자들이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고 계시는군요.
“저희 단체의 부르심인 복음을 가르쳐 지켜 행하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삶을 공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어요. 말로 복음을 가르칠 수는 있지만, 실제로 행하는 부분이 삶의 영역이거든요. 말과 삶이 분리되는 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공동체로 살기로 결정한 거죠. 사실 이전부터 스스로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넘어지는 제 자신과 주변의 지체들을 보면서 함께 살면서 믿음으로 서로를 세워줄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말과 삶의 일치를 바라며
공동체 시작

– 최근 주님이 이끄신 여정을 소개해주신다면?
“지난 7월에 러시아 안에 있는 한 자치공화국에 다녀왔어요. 현장 선교사님을 통해 ‘예배자학교’를 섬겨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예배의 기술’을 배우기 원하는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복음을 나누는데 할애했어요. 처음에는 선교사님과 현지인들 모두 불편해 하셨어요. 그래도 십자가복음이 결론이기 때문에 끝까지 복음을 나눴죠. 결국 현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깨뜨리고 십자가로 나아오는 놀라운 역사를 목격하는 은혜를 주셨죠. 주님이 하셨어요.”

– 마지막으로 기도제목이 있다면.
“눈에 보이는 성숙과 성장보다 오직 주님의 뜻만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주님의 뜻 안에서는 얼마든지 망하고 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 위드갓이 주님의 뜻만 이루어지는 단체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GNPNEWS] 十字架の福音で十分なユン・ソクジュ宣教師

  ‘私が貴方たちに命じた全てを教えて守るようにしよう’というイェス様の地上での命令に従うために、共に集まって共同体で生活しながら、呼ばれる全ての現場で礼拝する宣教団体がある。ユン・ソクジュ宣教師が代表として仕えているウィド・ゴットミニストーリーは、‘音楽的才能ではなくて、十字架の福音が唯一な礼拝の根拠’だと大胆に告白する。 華麗であるが、放蕩だった作曲家の人生と、大型教会での礼拝を担当して経験した絶望を通して、音楽的才能ではなく、ただ福音だけが礼拝の根拠であると気付いたユン・ソクジュ宣教師に会った。

 作曲家として活動しましたか。
‘青少年期にお母さんの病気で辛さを経験しました。家庭状況が大変になり、サッカ選手の夢が挫折して、内的な彷徨を経験しました。その時、音楽に深くおぼれていました。その中20代初半に偶然作曲家の生活が始まって、ひと時うまくいきました。その後、私が企画したアルバムが完全な心配作として判明されて、全ての夢が水の泡のようになくなりました。なおさら周辺の誤解をうけて、再び作曲家としての活動をまったくできなくなりました。それで望んでないが、すべてを下さないといけなかったです。’

 大変な時間を送ったんですね。
‘大変でしたよ。よく分かってなかった神様にも急に恨みました。アルコール中毒が酷くなって、自殺を考えました。そして周辺を整理していましたが、親に対して申し訳ない気持ちになりました。それで’どうせ死ぬんだから、親孝行でもすこしやってから死のう‘という思いで、親の家で住み始めました。そしてお父さんについて行った夕方礼拝の時間に、神様が私に訪れてくださいました。’私があなたを長く待っていて、貴方を愛しているよ‘とはっきり言ってくださいました。とても胸がいっぱいになって泣きくずれました。そのようにして神様が生きていることと、私を愛してくださっていることを悟りました。その時から教会に通いました。実際に’帰って来た放蕩、ユン長老の二男は狂った‘という噂があるほどでした(笑)’

 そのように始まった信仰生活に辛いことはなかったですか。
‘1年はとても幸せでした。しかし2-3年になって分かった絶望的な事実は、私が聖書が望むままには生きていけない事でした。まるで火事になった家で非常口を見つけたが、抜け出せない感じでした。とても辛かったです。その中、ある日、作業室で聞いていた説教を聞いていました。まるでハンマで耳を叩かれたような衝撃的なみ言葉でした。つまり十字架の福音に対しての説教でした。その日作業室で悔い改めて、この十字架にたいしてもっと知りたいと望みました。そして2005年に十字架の福音が私の人生の結論になりました。’

 現実は抜け出せない非常口

 ‘十字架の福音は人生の結論である’という言葉をもっと説明してください。
‘一語で、’私は死んだ‘ということです。十字架でイェス様と共に私が死んで、これからは私の中にイェスさまが生きていて、私の人生をイェス様が計画したままに導いてくださることです。事実以前に罪悪と放蕩でいっぱいだった、’ゴミ‘のような人生を生きていたので、私が罪人であることを認めるのは当り前でした。しかしそんな罪人である私を神様に捧げたいが、答えを知らなくて深い渇きがありました。ついに確実な回答を得ました。’

 その後にはどんな歩みを歩みましたか。
‘私が音楽をしたので、音楽で私の人生をささげようという考えはまったくありませんでした。私はもう死んだので。。しかし賛美の働きを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それも’大型教会‘でです。その時は神様が導いてくださったという信仰で始めました。’

  教会で賛美の働きに仕えていて感じた事がありますか。                                   ‘私は深く絶望しました。実は福音の真理で、私の人生が具体化されて実在になる過程がなく、専任担当者になりました。私ができることではなかったです。青年たちとぶつかりながら、福音のために、神様のために生きていましたが、振り返ってみると隠された罪悪の姿がありました。目に見える罪の実はなかったですが、まだ私の満足と有益を追及する罪に直面するしかなかったです。’

 そんな状況でどんな態度を持ちましたか。
‘私の中に矛盾と葛藤が深くなる2011年の年末に、神様が私の全てを崩してくださって、真理の中で新しくなって、ただ神様一人だけを残してくださるように祈りました。しかし本当にそうなりました。2012年になって、教会内でいろんな事件が起こって、雰囲気が自然と私に賛美を働きを含めたすべてを下さないといけない状況へとおっていました。そのように実際に全てが崩れていて、主の働きに対しての欲張り、未来に対しての恐れ、いろんな不純な考えと動機、こんな私の中にある汚い物が全部現されました。もっと深い絶望を経験しましたが、同時にとてもうれしかったです。’

 完全な絶望の状況で
喜びが訪れてくる

 そんな状況でどうして喜ばれましたか。
‘私に福音が結論だという事実を確認できました。新しい次元の絶望の中で、再び福音の前に立って見ると、’このように希望のない私にも十字架の福音だけで十分である!‘という結論を再び握ることができたんです。’

 教会の働きを辞めた以後の生活をおしえてください。
‘神様が私を再び福音の前に立たせてくださった時、’貴方は本当に私だけで十分なのか?信仰だけで生きていけるのか?‘と聞きました。私は選択の余地がありませんでした。’アーメン‘でした。そうすると神様が、’人を依頼せず、私が導くままに生きろ‘と言ってくださいました。そして全てを整理して、神様の導きだけを求めている中にここへ来るようになりました。現在住んでいるこの家は廃家でした。 しかし修理して掃除ました。その時、娼妓のような私をキリストの新婦として、荒廃の地を水溢れる園のように返ってくださったように、ここで神様の恵みを感謝するようになりました。そして WithGodという宣教団体を始めるようになりました。’

完全に新しい出発でしたね。
‘去年末から神様がゆるしたここで、お祈りと礼拝で時間を過ごしていましたが、まずウィドゴットという名を下さって、宣教団体に対しての考えを持つようになりました。時間が流れて今年1月1日の新年礼拝をささげる中に、マタイの福音書28章19-20節のみ言葉を通して、すべての民族を弟子にして、彼らに福音を教えて、その福音を守って行うまで仕えて、彼らが福音を下さった神様を礼拝するために、条件なしの使える団体として呼んでくださいました。’

‘ウィッドゴット’に対してもっと詳しく紹介してください。
‘私たちは礼拝の協力者を訓練して送る宣教団体です。’貴方たちは言って全世界に神様を礼拝するようにしよう!‘という使命をいただきました。福音を知らなくて、礼拝するのは不可能であるので、まず福音を悟り、訓練をうけて、送られて人生をもって神様を礼拝する宣教師として召されました。’

ウィッドゴットの全担当者たちが共に共同体生活をしているんですか。
私たちの団体の使命である福音を教えて守らせるためには、全生活を共有しないといけないという結論に達しました。言葉で福音は教えられますが、実際に行う部分は生活の領域だからです。言葉と生活が分離する矛盾に陥らないようにするために、共同体で生活することを決めました。事実以前から自ら信仰を守れなくて崩れてしまう自分自身と周辺の聖徒たちを見て、共に住んで信仰としてお互いを支えあう共同体が必要であると思っていました。‘

言葉と生活の一致を望んで
共同体を始める

最近神様が導いてくださった旅程を紹介してください。
‘先月7月にロシアのある自治共和国にいってきました。現場の宣教師たちを通して、’礼拝者学校‘に仕えるよう要請がありました。そこで、‘礼拝の技術’を習いたい現地人らを対象に大部分の時間を使いました。始めは宣教師と現地人ら、みんな不便に思いました。それでも十字架の福音が結論であるので、最後まで福音を伝えました。結局現地のキリストたちの心を開いて、十字架へと導きだす驚きの歴史を目撃する恵みをいただきました。神様がなさいました。‘

最後に祈祷のタイトルがありますか。
‘目に見える成就と成長より、ただ神様のみ心だけが満たされますよう願います。神様のみ心の中ではいくらでも滅びて、崩れられると思います。それで私たちウィッドゴットが神様のみ心だけをなす団体になりますよう、祈ってください。’

[GN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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