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한 수적 감소가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세기말 이미 영적 쇠퇴의 증거가 주요 교단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수많은 보수 기독교인들은 비록 개신교 전체가 몰락하고 있지만 그중 복음주의 진영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며 승리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들은 죽어가지만 우리는 번성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런 낙관주의는 믿을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난 몇 주 간 나는 크리스천 스미스(Christian Smith)와 마이클 에머슨(Michael Emerson)이 쓴 ‘미국의 복음주의(American Evangelicalism)’를 다시 읽었다. 1998년에 나온 책인 만큼 저자가 사회학적 분석을 위해서 사용한 자료는 유효 기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전투하고 번성하는’ 운동에 대한 묘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한 울림이 있다. 또한 스미스와 에머슨이 실시한 복음주의 교회와 (이미 지난 세기말부터 급격한 감소를 경험하고 있는) 주류 및 자유주의 교파 사이의 대조 분석에서는 여전히 얻을 것이 많다. 당시 그들이 목격한 적지 않은 강점들은 오늘날 통계에서도 여전히 드러나는데, 그것은 특히 독립 교단(non-denominational churches)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근 25년 전에 쓰인 이 책에 실린 주류 개신교 교회 신자들의 말을 정독하면서 내가 놀란 것은 오늘날 전국에 산재한 복음주의 교회 신자들 사이에서 찾을 수 있는, 그들과의 차이점이 아닌 유사점 때문이다.
신앙 전통
이슈가 되는 몇몇 경향을 살펴보기 전에, 종교 기관에게 영적 활력을 주는 요소가 무엇이었는지를 저자들의 시각에서 고려해야 한다. 저자들은 신앙 전통이 가진 강점 여섯 가지를 이렇게 말한다.
1.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신실하게 고수하는 것
2. 삶에서 신앙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3. 종교적 신념에 대해서 큰 자신감과 확신을 갖는 것
4. 다양한 교회 활동과 프로그램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것
5.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정신적, 실질적으로 헌신하는 것
6. 교회의 오랜 전통을 중시하고 새로운 회원들과 그 전통을 중심으로 교제하며 또한 지속적인 전도를 통해 회심자를 만들어내는 등, 등록한 교인들의 지속성을 꾸준히 높게 유지하는 것
설문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에머슨과 스미스가 복음주의자의 강점이라고 발견한 영역들이 주류 및 자유주의 개신교 사이에서 오히려 약점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여기 내가 소개하는 25년 전 주류의 사고방식을 오늘날에는 복음주의 교회를 다니는 신자들에게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이 다가올 미래에 역사적 복음주의 교단이 만날 상당한 수준의 감소를 예고하는 걸까? 아직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과거 주류 개신교의 경향이 오늘날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언제라도 바뀔 수도 있다. 몇 가지 관찰한 사항들을 살펴보자.
1. 기독교 신학과 윤리를 향한 헌신의 부족
당신은 무엇을 믿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교회 또는 교단이 표류하면 이 질문에 대한 응답도 애매해진다. 기독교적 믿음과 실행을 둘러싸고 조금씩 안개가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경우에 따라 기독교의 진리는 단지 다른 많은 종교들 중 하나처럼 주관적 확신으로 그치기도 한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 간의 구별은 간과되거나 아예 무시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교회 출석자들의 내면과 삶에서 다른 사람들과 구분이 가능한 확실한 내용과 헌신을 찾기는 힘들다. 오늘날 전통적이라고 부르는 기독교 믿음과 도덕은 역사적으로 인정받은 과거 기독교 전통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25년 전만 해도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들은 핵심이 되는 기독교 신앙과 관습에 대한 확고한 헌신을 표현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은 그다지 고무적이지 않다. 리고니어(Ligonier)와 라이프웨이리서치(Lifeway Research)가 발표한 보고서, ‘신학 현실(The State of Theology)’에 따르면 오늘날 복음주의자 사이에 교리적 혼란이나 성경 문맹이 만연하다. 기독교 신학과 윤리의 많은 핵심 요소가 수정되거나 또는 아예 무시되는 것은 그래서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2. 신자들 사이에 만연한 행복 추구
복음주의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인이 생각하는 삶의 목적 또는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 불신자인 이웃과 비교할 때 특별히 다른 점이 있을까?
1998년 에머슨과 스미스는 주류 개신교인을, “미국의 문화적 실용주의와 개인이 스스로 정의하는 행복이라는 도덕적 권위가 기독교적 가치를 재정의하고 있다”라고 묘사했다. 이 말은 일상에서 기독교 교리와 윤리적 지향점이 노골적으로 부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삶의 목적과 자유에 관해서만은 보다 더 일반적인 미국적 관점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주류 개신교인에게 신앙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다름 아닌 ‘개인적 만족과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묘사했다고 에머슨과 스미스는 지적했다. 따라서 지금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도덕적 권위는 자신의 삶에 대한 주권적인 하나님의 명령이나 헌신적인 제자로의 부르심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평안과 위로를 주는 것이 된다. 신앙이 중요한 이유는 다른 사람과 잘 지내도록 만들어 주고 또 기분전환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딱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이런 진술은 복음주의 교회에 출석하는 많은 신자들의 사고 방식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바로 이런 이유로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같은 말을 반복했을 뿐 아니라, 굿페이스(Good Faith)가 제공하는 충격적인 통계를 계속해서 인용하면서 노골적인 신앙의 개인화에 대해서 경고했던 것이다. 다양한 통계를 통해서 오늘날 미국에서 교회를 다니는 신자들이 생각하는 삶의 목적이 전반적인 미국인의 사고와 다를 바 하나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대다수가 생각하는 삶의 목적은 내면의 성찰을 통한 은밀한 욕망의 추구다.) 많은 숫자가 부흥을 의미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너무도 많은 교회 신자들이 교회에 가는 이유는 영적 활동이 아메리칸 드림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신론적 도덕 치료로 만들어지는 기독교 그리고 사람으로 넘치는 교회다. 물론 그런 상황도 그리 오래가지 않겠지만 말이다.
3. 삶의 핵심이 아닌 한 부분일 뿐인 신앙
지난 세대에 복음주의자들과 주류 개신교인들 사이의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신자의 삶에서 차지하는 믿음의 중심성 여부였다. 복음주의자들은 믿음을 언급할 때 자신의 삶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고백했지만, 주류 개신교인은 ‘신앙은 단순히 삶의 여러 중요한 측면 중 하나에 불과해서 마치 삶의 한 구석에 있는 가구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신앙은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질서와 의미를 제공하는, 강렬한 개인적 헌신이 필요한 무엇이 아니라, 단지 일반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하는 당연한 삶의 한 측면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주류 기독교인과 자유주의자들은 교회 참여를 그들의 삶에서 바뀔 수 없는 근본이 아니라 다른 우선순위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많은 주류 및 자유주의 개신교인들은 교회 출석을 사회 생활의 중심이나 영적 생활의 핵심이 아니라 일주일을 살면서 거치는 일상 중 하나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복음주의자들은 20여 년 전 에머슨과 스미스의 설문 조사에 응답한 사람들보다도 적은 빈도로 교회에 참석한다.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를 삶의 가장자리로 밀어버리는 이런 상황과 관련해 몇 년째 경고를 하고 있는데, 교회보다 다른 사회 활동(운동 경기 참여, 가족 여행 등등)을 우선시하는 가족이 어떻게 해야 율법주의에 빠져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적극적인 교회 참여와 관련해서 적절하게 도전받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왔다. 오늘날 많은 복음주의자들에게도 한 세대 전 주류 개신교가 그랬던 것처럼 교회와 개인의 신앙이 삶의 가장자리로 밀리고 있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4. 식어버린 전도 열정
복음의 내용을 모를뿐더러 복음의 진리가 주는 확신도 없는 사람이 열심히 복음을 전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기독교가 객관적인 진리가 아니라 개인적 취향을 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굳이 왜 전도하려고 땀을 흘릴까?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영원이 존재하지 않고, 유일하신 구세주를 믿는 신앙이 아니라 성실함으로 받는 게 구원이라면, 굳이 왜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전도해야 할까?
스미스와 에머슨은 1990년대 후반, 자녀들 전도조차 우선순위로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식어버린 주류 기독교인의 전도 열정을 지적했었다. 오늘날 이런 측면에서, 복음주의자들에 대해 그들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진다. 우리는 지금 한 세대 전 선배들이 걸어갔던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론
급속한 수적 감소가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세기말 이미 영적 쇠퇴의 증거가 주요 교단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복음주의자들이 다가올 세대에도 여전한 영적 활력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과거의 성공이나 현재 경험하는 성장 또는 건강한 징후들 때문에 빠지는 안일한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 영적 경계심을 잃지 않을 때, 어쩌면 우리를 미래의 붕괴로 이끌지도 모를, 우리의 선배가 겪었던 동일한 문제에 빠지는 희생양이 되지 않을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트레빈 왁스(Trevin Wax) | LifeWay Christian Resources의 신학과 커뮤니케이션학과의 부학장. The Gospel Project의 편집자. ‘디스 이즈 아워 타임’, ‘일그러진 복음’, ‘우리시대의 6가지 우상’, ‘Gospel Centered Teaching’ 등 저술.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를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