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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애틀랜타 혐오 살인 사건을 애통해하면서

사진: unsplash

“ 이 끔찍하고 비극적인 사건조차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들어 있다. 하나님이 선하지 않고 통치하지 않는 현실을 생각하거나 믿을 수는 없다. 만일 그렇다면 나는 완전히 절망에 빠질 것이다 ”

나는 오늘 처음으로 애틀랜타 지역의 스파 세 곳에서 죽임을 당한 여덟 명의 이름을 모두 들었다.

다오유 펭, 현정 그랜트, 순자 김, 폴 안드레 미셸, 순 C. 박, 샤오지에 탄, 엘라이나 애슐리 연, 용 A. 유

이 이름들은 익숙한 만큼 또한 멀게 느껴진다. 그래서 슬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들과 더불어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그들의 내력이나 배경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내가 아는 것 하나는 있다. 이 여덟 명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으로 놀랍고도 아름답게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목숨은 이제 무모하고 끔찍한 폭력으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고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내 사랑하는 가족들도 이 사건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어 또한 슬프다. 내가 사는 곳은 그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곳으로부터 수천 마일 떨어져 있고 거기서만 일어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게는 남일 같지 않다. 한국계 미국인인 내 아내는 이 사건으로 사망한 여성들의 나이와 비슷하다. 18세와 20세인 내 딸들은 2020년 3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아시아인에 대한 괴롭힘, 차별, 폭력 등의 인종차별을 당한 3800명에 속할 수도 있었기에 불안과 걱정이 밀려온다. 이 슬픔과 고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섭리

그리스도를 따르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으로서 나는 아내와 두 딸을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이 명단에 있는 여덟 명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내 마음을 다독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너무나도 내 개인의 일처럼 느껴지고 너무 고통스럽다.

성경은 하늘 아버지께서 알고 정하지 않으시면 내 인생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고한 진리를 가르친다. 실제로 하나님은 영원무궁하며 변하지 않는 분이며 지혜와 능력과 거룩함과 정의 그리고 선과 진리이시다(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질문4).

그래서 이 끔찍하고 비극적인 사건조차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들어 있다. 하나님이 선하지 않고 통치하지 않는 현실을 생각하거나 믿을 수는 없다. 만일 그렇다면 나는 완전히 절망에 빠질 것이다.

‘기독교 강요’의 특히 통찰력 있는 한 부분에서 존 칼빈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이해가 평안과 자유를 준다고 말한다. “이전에 그를 압박했던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뿐만 아니라 모든 것으로부터 [중략] 그분의 위안을 말하자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권능으로 모든 것을 유지하시고 권위와 뜻으로 통치하시며 지혜로 다스리시므로 그분이 정하지 않는 한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걸 아는 것이다”(1.17.10).

칼빈은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심지어 어두운 일조차도 하나님의 뜻과 지혜 밖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참새가 날아가고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관심 없이 되어지는 것은 없다(마 10:26-33)는 진리에 복종하면서 위로와 평안을 찾았다.

고통

하지만 칼빈은 또한 죄와 그 결과가 계속 우리 마음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계속해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을 알았다.

성적 중독에 포로가 되어 고군분투하는 개인에 의해 살인이 촉발된 것은 사실일지라도 이러한 변태적 행위가 아시아 여성을 대상으로 하여 특정 장소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살인을 이끈 내적 동기를 완전히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유색인종, 특히 여성을 비인간화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현실과 씨름해야 한다. 그 다음 이 사악한 행위를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서 봐야만 한다. 개별적 사건뿐만 아니라 상황적 맥락 모두를 살펴봐야 한다.

그렇게 보면 내가 느끼는 고통은 피해자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차별과 편견의 고통을 겪은, 다르다는 이유로 비인간화되거나 무시되는 수치를 당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다. 1871년 중국계 미국인이 몰매를 맞은 사건에서부터 시작하여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계 미국인을 강제수용한 사건에 이르기까지 아시아계에 대한 반감의 역사는 현실적으로 존재해 왔다. 내 이야기는 조금 다르지만 나도 비슷한 고통과 수치심을 느꼈다.

더욱이 상관관계가 항상 인과관계와 같지는 않으며, 복음주의 교회에서 자란 범인의 어린 시절과 그의 죄악된 행동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따라서 더 많은 정보가 나오고 해석되기 전에 결론을 내리는 데 주의하고 싶지만, 살인자들이 조지아와 캘리포니아 출신이며 나와 비슷한 교회 출신이라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기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나의 신념은 내가 고통 속에서도 기도하게 만든다. 내 친구 마크 브르홉(Mark Vroegop)이 그의 책 “Weep with Me: How Lament Opens a Door for Racial Reconciliation”에서 가르쳐주듯이, 성경 중 특히 시편에 나오는 슬픔의 언어는 내 영혼의 깊은 신음 소리를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슬픔의 기도는 고통 속에서도 소망을 붙잡을 수 있는 길을 제공한다. “고통의 기도는 신뢰로 이어진다. 눈물, 사랑, 단결은 오해, 불신, 상처를 치유해준다.”

그래서 나는 우는 자들과 함께 계속 울고자 한다(롬 12:15). 이념이 아닌 긍휼로 시작할 것이다. 상처받고 무너진 이들을 계속 예수님 발 앞으로 이끌고, 복음을 통해 치유와 회복으로 이끌고자 한다. 우리가 함께 … 애통해할 수 있을까?

내 주변의 모든 죄와 망가짐으로 인해 나는 복음이 필요하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애통의 기도를 올리면서, 나는 은혜로우신 하나님께 걱정으로 호소할 뿐만 아니라, 온전히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와 수치를 모두 십자가에서 감당하시고 나를 의롭게 하시고 양자 삼기 위해 영광 중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좋은 소식에 나의 마음과 삶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다. 이 순례 여정은 고통으로 표시되지만, 신뢰와 순종으로 그분과 함께 계속 동행하고자 한다.

이제는 어떻게 할까?

이 비극을 내 안에서 처리하고 돌아보면서, 이 세상이 내 집이 아니라는 현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기를 원한다. 종말론적 순례자로서 모든 부족, 언어, 민족, 국가의 형제자매들과 어린 양의 결혼 만찬에서 잔치를 기다리고 있는 천국으로의 어려운 여정을 고대한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는 한 목소리로 새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계 5:9-10).

하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들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싶다. 내 가족 특히 내 딸들이 예수님의 아름다우심을 보고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과 걱정을 쫓아낸다는 것을 알도록 돕고 싶다.

나는 더디 말하고, 빨리 듣고, 더디게 화 내기를 원한다. 특히 인종 차별의 역사와 고통, 그리고 복음이 어떻게 그 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인지 이해하도록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려고 노력할 때 더욱 그러하다. 친절은 회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너무 지나친 자만과 절망이 기도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원한다. 결국,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사랑으로 품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우리가 하나님과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커짐에 따라 우리의 시간과 재능과 보화를 사용하여 가정과 교회, 기관과 지역 사회에서 더 많은 복음의 충실함과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하기를 원한다.

마라나타. 오시옵소서 주 예수님.

 시편에 나오는 슬픔의 언어는 내 영혼의 깊은 신음 소리를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슬픔의 기도는 고통 속에서도 소망을 붙잡을 수 있는 길을 제공한다 ” [복음기도신문]

줄리어스 김 | 미국 TGC의 대표. 뉴라이프장로교회 협동목사.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협약에 따라 본지에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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