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예수를 믿으면서 시작된 고난, 기도의 자리에서 영광을”

주님 오실 길을 기도로 준비하는 전인숙 강도사(양산교회)

눈발이 흩날리던 날, 전인숙 강도사를 만나러 경남 양산으로 향했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자리 잡은 전 강도사의 보금자리 한 가운데에는 세계지도와 기도정보들이 놓인 기도책상이 있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내면서도 기도하는 시간이 모자란다고 고백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조용한 시골집에 오니 왠지 옛날이야기를 들어야할 것 같네요. 강도사님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릴 때 이야기부터 해야겠네요. 저희 아버지가 3대 독자셨는데, 우리 어머니는 딸만 셋을 낳으셨어요. 그 시대에는 아들을 낳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을 하시고 재혼을 하셨어요. 제가 6살 때 새엄마를 맞이하고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엄마한테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생겼어요. 그래서 엄마의 손발이 되어 엄마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했어요. 좋게 말하면 순종인데 맹목적인 삶이었어요. 덕분에 사랑과 인정을 받았어요. 동네 사람들이 인숙이 좀 본받으라고 하는 말이 듣기 좋았고 계속 듣고 싶었어요. 저는 늘 학교가기 전에 밥을 해서 식사를 준비해놓고 학교 갔다 오면 동생들을 돌봤어요.”

– 학교를 다니면서 살림을 하신 거군요. 언제까지 그렇게 하셨어요?

“중학교 때까지요.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지만 학교는 중학교까지만 다녔어요. 공부는 더 하고 싶지만 전처 자식은 공부하는 게 더 허락이 안됐어요. 그래서 목재 공장에 취업했어요. 큰 나무를 어깨에 메고 운반하는 일들이었는데 묵묵히 일하면서 월급을 모두 엄마에게 갖다 드렸어요. 1년 정도 후에 아버지가 주산을 배우게 해주셔서 사무직으로 옮겼는데 거기에서 남편을 만났어요. 그때가 18살이었어요. 결혼이 뭔지, 연애가 뭔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19살에 결혼을 했어요. 결혼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시집살이가 쉽진 않았어요. 시어머니도, 남편도 무서웠고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어요. 남편도 좋은 직장을 다니고 아이들도 낳았지만 마음은 항상 공허하고 허전했어요. 의지할 곳이 아무데도 없었어요.”

마음은 항상 공허하고 허전했어요

– 어릴 때부터 고생이 많으셨네요. 어려움은 어떻게 견디셨어요?

“첫 아이를 낳고 2년 후에 남편 이 직장을 옮기면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얼마 안 있어서 집도 사게 됐어요. 그때 집을 팔던 사람이 우리에게 전도를 하면서 교회에 나가면 집을 좀 싸게 주겠다고 했어요. 그때는 교회 나오라는 말이 싫었어요. 그러다 다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전도를 받았는데, 그때 천국과 지옥 이야기가 믿어지면서 교회에 가고 싶어졌어요. 그런데 친정도, 시댁도 모두 불교에, 제가 종갓집 맏며느리다보니 교회에 나갈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하루는 꿈에 흰 옷을 입은 분이 찾아오셔서 아무 말씀도 없이 남편과 내 손을 잡고, 물고기 모양을 그리더니 사라지셨어요. 이 분이 예수님이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 이런 이야기는 무슬림권에서 많이 듣는 얘긴데요, 계속 말씀해 주세요.

“마침 저를 전도했던 사람이 구역예배를 드리러 간다고 해서 따라갔어요.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찬송가를 부르고 예배를 드리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어요. 내가 왜 우는지도 모르겠는데, 부모가 돌아가신 것처럼 울었어요. 이후 교회에 가야겠다고 결단을 하고 베개 속에 있는 부적을 다 꺼내서 불태웠어요. 순간 두려웠는데, ‘예수님, 나 도와주세요.’ 그러고는 부적을 다 태우고 1985년 1월 7일에 처음으로 교회에 나갔어요.”

– 교회에 처음 가셔서 어떠셨어요?

▲ 전인숙 강도사의 기도책상 앞에 빼곡히 붙여진 기도편지와
말씀들. ⓒ 복음기도신문

“그때는 자리에 앉자마자 눈물이 나서 끝날 때까지 울었어요. 무슨 설교를 들었는지는 기억은 안 나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보호하고 지켜주셨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 다음날부터 새벽기도를 나가기 시작했어요. 교회에 가라는 허락을 받은 게 아니라서 자명종도 없이 1년 동안 새벽기도에 나갔어요. 너무 사모하니까 4시에 눈을 떠 새벽기도 시간도 되기 전에 교회에 갔어요. 남편이 출근하면 아이 3명을 데리고 앉아서 찬양 부르고, 기도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드렸어요.”

처음 간 교회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어요

– 부군 몰래 교회를 다니는 게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남편은 제가 예수를 믿자마자 핍박을 했어요. ‘예수만 포기해라. 자기만 믿고 살아라. 그러면 손에 물 안 묻히게 하고 공주처럼 받들며 살겠다. 교회 가지 마라.’ 그래도 주님이 너무 좋아서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남편에게 때로는 맞기도 하고, 교회도 못 가게 했어요. 그랬는데도 공예배는 한 번도 빠지지 않았어요.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뒷문으로 빠져나와 교회에 갔어요. ‘맞아 죽더라도 가자.’고 생각했어요. 핍박을 많이 받은 날이면 찬양이나 말씀으로 위로해주셔서 그것으로 충분했어요. 주님을 사랑하면 상황과 환경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 많이 힘드셨겠네요.

“성경 10여 권이 찢어지고 불태워지니까 남편을 더 이상 죄짓지 않게 하려고 성경을 항아리 속에 넣고, 신발은 들고 나가서 대문 밖에서 신었어요. 예수님에 관한 책을 집에 하나도 둘 수가 없었어요. 교회 갔다 오면 모두 찢겨 있으니까 치워야 됐죠. 설거지통에 성경을 던져 넣어 버리면 주님께 남편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왜 때리냐고 반문도 못했어요. 남편이 핍박하면 주님이 마음의 음성으로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주님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이사야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셨어요. 그래서 반항하면 안 되는 줄 알고 핍박을 그대로 받았어요.”

– 이런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요?

“예수를 믿은 날부터 고난이 시작됐기 때문에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기도를 안 하면 살 수 없도록 주님이 이끌어주신 것 같아요. 주님을 너무 사모해서 예수 믿고 6개월부터 심방을 따라다니고, 1년 만에 집사 직분을 받고, 모든 영역을 섬겼어요. 사람들이 나에게 하나님이 쓰실 사람 같다고 말하면 싫지 않았지만 엄두를 못 냈어요. 핍박이 심하니까요. 그러다 예수 믿은 지 7년 정도 지났을 때, 신학을 하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처음에는 못 간다고 했어요. 남편 핍박도 심하고, 돈도 없었어요. 그래도 계속 마음을 주셔서 3가지를 기도했어요. ‘학비를 책임져주세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뭐 하나라도 팔리게 해주세요. 남편이 교회 나오게 해주세요.’ 그런데 주님이 다 들어주셨어요.”

신앙생활로 인해 핍박이 극심했지만…

– 놀랍네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신학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책을 감추고 학교에 다녔어요. 그러다 6개월 만에 들켜서 난리가 났어요. 왜 내가 벌어온 돈으로 이런 공부를 하냐면서요. 그런데 결국엔 주님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 학비를 공급해주시고, 장학금도 받게 하시면서 신학을 마치게 하셨어요. 하나님이 우리가 소유하고 있던 작은 것을 팔게 하셔서 남편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게 하셨어요. 놀라운 건 남편이 저를 교회에 차로 데려다 줬다는 거예요. 물론 교회에는 들어오지 않고 차에서 기다렸는데 3년 동안 그렇게 했어요.”

–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네요.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어요. 왜 집사님은 목이 쉬도록 기도를 하면서 축복을 못 받냐. 남편을 왜 구원 못 시키냐. 나한테 잘못된 믿음이라고 했지만, 그 말을 그냥 듣고서 교회 지하실 예배당에서 기도하는데 주님이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네. 믿죠.’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음날 남편이 교회에 나왔어요.”

– 주님이 기도를 모두 응답해주셨네요. 이제 그럼 고난이 끝이 난건가요?

“아니요, 이후로 가정에서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어요. 저의 죄인 됨이 드러나는 시간도 있었고, 남편과 저, 자녀들까지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고 지옥 같은 시간을 살고 있었어요. 교회에 나가면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긴다.’고 말씀하셔도 내가 인생의 실패잔데 뭐가 존귀하냐고, 가당치도 않은 말이라고 하면서 돌아왔어요. 영혼의 목마름이 너무 컸죠. 그럴 때 아들이 복음학교를 다녀오더니 제게도 소개해줬어요. 복음학교에 참석하고 수많은 참가자들이 있었는데, 마치 나 하나만을 위한 복음학교 같았어요. 진리가 내 영혼에 비춰지니까 내가 왜 이런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는지 알겠더군요.”

– 복음학교를 통해서 깨닫게 된 은혜가 궁금하네요.

“그동안 어려운 시간들을 보냈던 것이 모두 어머니와 남편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존재적 죄인인 나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또한 내 영이 사랑에 대해 죽어있었다는 것도 보게 됐어요. 어릴 때부터 인격적 관계를 못 가져봤어요. 아버지는 바라만 보는 존재였고 부녀간 정상적인 대화를 한 적이 없었어요. 모녀관계도 마찬가지였고, 사랑이란 것을 몰랐어요. 결혼을 하고 남편과 자식이 다 있었어도, 노을이 지면 나도 알 수 없는 고독함, 외로움, 슬픔, 고통, 아픔과 쓸쓸함이 엄습할 때 자살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용기가 없어 자살을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복음학교를 하고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이후 이것이 다 없어졌어요.”

– 그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복음을 듣고 깨닫게 하신 건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여 부르셨다는 것이었어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요. 십자가에서 죽으실 만큼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믿어지고, 나를 존귀한 자로 여기신다는 사실이 믿어졌어요.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기 위해 그동안의 과정은 잠깐 허용하신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되니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하기가 싫었어요. 그러나 그 주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셨어요. 남편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주님은 강제적으로 하지 않으셨어요. 남편의 영혼을 향한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움직여질 때까지 기다려 주셨어요. 하나 될 수 없는 우리를 복음의 능력으로 하나 되게 하신 영광을 보게 하셨어요.”

– 복음을 통해 회복이 일어난 거군요. 감사하네요.

“처음 주님을 만날 때 주셨던 말씀이 있었어요. 창세기 12장 1절~3절이에요. ‘너는 복이 될지라,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으리라’ 이 말씀이 수십 년이 지나도 생생했어요. 그때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복음학교에서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을 이루고 싶은 하나님의 뜻을 보게 되면서 나도 아브라함처럼 부르셨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고, 이 일을 위해 저에게 기도를 부탁하셨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열방을 위해 기도하는 24·365기도에 동참하면서 가장 귀한 시간을 드리고 싶어 새벽 3시로 기도시간을 정했어요. 사모하는 마음으로 한 시간 전부터 일어나서 찬양하고 기도를 했어요. 그 시간에 내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순종이라는 마음이 들어서 참 기뻤어요.” [복음기도신문]

<이상 240호에 게재>

▲ 2016 경건의 열망 집회 때 기도하고 있는 전인숙 강도사. ⓒ복음기도신문

– 새벽을 깨우시면서 주님을 대면하고 계시군요. 기도하면서 주신 은혜가 있다면요?

“기도의 능력을 맛본 경험이 있어요. 2008년에 자궁암 말기 선고를 받았어요. 병원에서는 먹고 싶은 것 많이 먹으라고 하면서 집으로 돌려보내더군요. 집으로 돌아왔는데, 할 게 뭐 있겠어요. 계속 해오던 철야기도를 했어요. 3시에 24·365기도를 시작해 새벽기도까지 했어요. 그때 주님이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는 말씀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는 말씀을 주셨어요. 그 말씀을 받으니 ‘죽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이 사라지더군요. 기도하는데 동역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할 마음을 주셔서 아는 선교사님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는데, 자기가 아픈 것처럼 받아서 기도해주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하혈을 하고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어요. 두려움은 없었어요. 지체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났는데, 통증이 사라지고 허리가 펴지더군요. 남편에게 이제 아프지 않다면서 병원에 가보자고 했어요.”

– 병원에서는 뭐라고 했나요?

“의사가 신앙이 있냐고 묻더니 축하한다고, 암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했어요. 주님이 치료해주신 것이죠. 남편은 암 말기라고 들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없어졌다고 하니까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건강검진을 받고 정상이라고 판정이 된 이후에 남편은 주님이 나를 고쳐주셨다면서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어요. 머리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된 지체들이 함께 아파해주고 기뻐해주는 것을 경험하면서 이것이 연합의 비밀이구나 깨닫게 됐어요.”

– 기적이네요. 부군도 예수님을 믿게 되셨고,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는 말씀이 생각나네요. 그 이후엔 어떤 시간을 보내셨어요?

“6년 전에 남편 고향인 양산으로 내려왔어요. 그동안 해왔던 사역이나 신앙 훈련도 자연스럽게 멈춰지면서 이곳에서 홀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말씀을 읽으면서 내가 주님 믿고 간다고는 하지만 얼마나 소망 없는 존재인지, 얼마나 부패한 존재인지 드러내주시고, 그런 저를 구원해주셨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하셨어요.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됨을 고백하고 말씀 앞에서 두려워 떤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요. 나는 아무것도 아닌 자이며 완전히 무능한 자인 것을 인정하게 하시는 은혜의 시간이었어요. 주님은 다른 것들은 차단하시고 하나님과 독대하며 머무는 시간을 통해 말씀과 기도에만 전무하게 하셨어요. 그 시간을 지나면서 제가 말씀과 기도가 전부라고 말했지만, 그게 아니라 뭐라도 계속 해야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얼마나 믿지 않고 제 열심과 최선으로 살았는지 보게 됐죠. 주의 일이란 내가 무엇을 하는 게 아니라 주님을 믿는 것이 주의 일이라는 것이 깨달아졌어요.”

– 어떻게 기도하고 계신지 나눠주세요.

“주님이 예배하는 삶으로 이끌어주시면서 이제는 나의 필요를 구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하셨어요. 열방의 소식들을 많이 들어본 적도 없고 기도하지 않고 외면했던 것들을 참 많이 회개하게 하시고, 히브리서 말씀처럼 갇히고 학대받는 자들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있어요.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가게 하시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어요. 새벽 3시에 24365기도를 시작하며 새벽기도까지 드리고 좀 쉬었다가 9시부터 말씀 묵상하고, 느헤미야기도정보로 기도하고, 말씀도 일고, 기도24365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기도정보를 보고 기도하고 저녁에는 6시에 기도해요. 매일 이렇게 하는데 전혀 지겹지가 않고 하루 24시간이 부족해요. 그래서 다른 일을 하기가 아깝죠.”

– 마지막으로 기도제목 나눠주세요.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 앞에서 두려워 떠는 자로 서서 예수님만 따라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딸 현경이가 아직은 주님을 모르는데 복음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Y.K.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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