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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칼럼] 청교도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가 남긴 신학적 유산(2)

▲ 제임스 인넬 패커. 사진: heartpublications.co.uk 캡처

기독교학술원장이자 샬롬나비 상임대표인 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가 지난 7월에 소천한 금세기 최고 복음주의 신학자이자 ‘현대판 청교도’로 불리는 제임스 패커의 신학과 그의 신학적 유산에 관해 정리한 기고문을 게재합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과정에서 내용을 요약, 중간 제목을 삽입했습니다.<편집자>

IV. 하나님을 아는 인격적 지식 제시: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하고 인도함을 받음

패커의 대표작으로 ‘이 시대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은 “1960년대 격월로 발간되던 「복음주의 잡지」 편집자가 기독교의 기본에 5년 동안 기고한 글들의 모음”이다. 이 저서를 통하여 그는 칼빈처럼 “책 한권의 사람”(homo unius libri)으로 알려졌다. 칼빈의 대표적 저서가 『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1559)라면 패커의 대표적 저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1973)이라고 평가된다.

패커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경이로움을 강조하였다. 그의 신론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패커는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렘 6:16)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했다. 패커는 “옛적 길 곧 선한 길”에 대한 그의 생각을 책을 통해 믿음의 열조들이 간 그 오래된 길을 따르라는 요청이라고 주장했다. 패커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오늘의 교회를 약화시키는 뿌리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 저서로 그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폭발적인 평판에 대해 패커 자신도 깜짝 놀랐다. 이 때문에 패커는 ‘신학’과 ‘영성’을 연관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그러한 일에 자기가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교회를 약화시키는 뿌리

패커는 성경을 아주 중요시하면서 성경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우리 시대의 계시라고 하지 않았다. 성경에 근거해서 그가 이 책의 앞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는 대로,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 삼위일체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려고 애쓴다. 이 일에 과거 신앙의 선배들, 청교도들이 좋은 모범이 됨을 잘 드러내 준다. 과거의 청교도 신앙 선배들처럼 성경에 근거해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면 그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받아 가는 삶을 살며 신자들이 그런 삶을 살도록 이끄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패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즉 ‘Knowing God’과 ‘하나님에 관한 지식’, 즉 ‘Knowing about God’을 성경적으로 명확하게 구별한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단순한 명제적, 정보적 지식으로 머리에만 남는 지식이라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전 인격적으로 아는 관계적·체험적 지식이며 마음을 변화시키는(transformational) 지식이다.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일반적 지식(general knowledge)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인격적 지식(personal knowledge)임을 패커는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점을 밀도있게 논의하였다.

패커는 피력한다: “어떻게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바꿀 수 있는가? 이렇게 하는데 필요한 규칙은 간단하지만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관해 배운 각각의 진리를, 하나님 앞에서 묵상하는 내용으로 바꾸어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찬양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함과 장엄하심,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 하나님의 놀라운 속성들(주권, 전능, 전지, 편재, 영원, 거룩, 의, 진노, 사랑, 은혜, 자비 등등),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권능의 사역들에 대해 바르게 알아야 함을 강조한다.

패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하나님의 다양한 속성들을 논의하면서, 설교자들에게 하나님의 속성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교하도록 강하게 권면하고 있다. 패커는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전도의 책임을 감당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면서 복음전도의 책임을 무시하는 일부 지도자들의 가르침은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오늘날 교회의 약점 중 하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설교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은 너무도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구약 이스라엘의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홈니와 비느하스)은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나고 신앙 가르침을 받고 자랐으나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사무엘은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삼상 2:12). 이들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를 경멸하고 하나님에 드린 제물을 강탈하는 죄를 범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 2:17). 오늘날 신자라고 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신학을 한다고 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설교의 주제를 다시 하나님으로(Back to God!) 재정향해야

예언자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돌아가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힘써 알자고 선포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1절)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2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호 6:1-3). 호세아가 선포한 바 같이 힘써 하나님을 알라고 성심(誠心)과 열성(熱誠)을 다해 선포하는 설교자들을 찾아보기가 너무나 힘든 시대가 되었다.

오늘날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이 패커의 충고를 수용하고, 설교의 주제를 다시 하나님으로(Back to God!) 재정향해야 한다. 설교자들의 설교가 변화될 때 성도들의 신앙의 중심 축도 변화될 것이다. 패커는 오늘날 기독교이후 시대에 미주의 복음주의자들이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하나님의 거룩성, 선하심, 은총과 사랑에 관하여 최고의 학문의 전당인 옥스퍼드에서 체험하고 배웠던 지식을 활용하면서 그가 가진 재능, 지혜 그리고 천부적인 능력으로 말하고 저술 활동하였기 때문에 시대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쳤다.

V. 칭의 교리의 수호

패커의 저서 ‘칭의의 여러 얼굴’( Here We Stand: Justification by Faith Today, Oak Hill College, 1986; 김형원 역, 이레서원, 2016)에서 전통적 칭의론에 대한 영국 성공회 신학자들의 견해를 정리한 책이다. 칭의 교리에 대한 개신교적 입장을 다양한 시각으로 요약한 내용인데 동방정교회나 로마가톨릭의 칭의론도 다뤄 입체적 비교가 가능토록 했다. 책의 원본은 1986년 출간됐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낯설지 않다. 마치 칭의론과 관련된 오늘의 논쟁을 예측이나 한 것처럼 이와 관련된 구절들이 등장한다. 유럽 교회나 영국 성공회 내부에서도 이미 칭의론에 대한 신(新) 해석이 출현했다는 방증이다.

책은 칭의의 기원과 정의, 근거, 성화, 전가, 최후 행위 심판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패커는 “행위에 따른 심판과 구원을 강조한다고 해서 함부로 전통적 구원관을 포기하고 행위구원론을 가르치는 것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며 “동시에 오직 믿음과 은혜의 구원을 설교한다고 해서 이를 값싼 구원론으로 매도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패커는 이 편집서 서문에서 칭의론을 “기독교 교리의 모든 측면을 아우르는 귀하고 생기있는 성경적 교리”라고 본다. “이는 오직 겸손한 사람만이 붙잡을 수 있는 진리”이다. 패커는 칭의론의 특징을 신론적이며, 인간론적이며, 성령론적이며, 교회론적이며, 종말론적이며, 복음적이고, 목회적이고, 예전적이라고 밝혔다.

칭의론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사역을 선포한다는 의미에서 신론적”이다. 칭의론은 인간인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점에서 인간론적”이다. 칭의론은 “성육신과 구속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기독론적”이다. 칭의론은 “예수와 믿음으로 연합하는 일이 성령 사역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성령론적”이다. 칭의론은 “교회의 정의와 건강함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교회론적”이다. 칭의론은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판결을 지금 여기에서 선포한다는 의미에서 종말론적”이다. 칭의론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영혼한 화평으로 초청한다는 의미에서 복음적”이다. 칭의론은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정체성이 성도 간 교제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목회적”이다. 칭의론은 “성례를 해석하고 성례 예식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이라는 의미에서 예전적”이다.

“톰 라이트, 십자가와 대속에 대해서는 취약해”

바울에 관한 새 관점(New Perspective on Paul) 학파에 속한 학자들은 종교개혁 칭의론을 거부하고 수정주의적 주장을 천명하였다. 새 관점 학파의 대표 주자 영국 성공회 신학자 톰 라이트(Thomas Wright)는 “첫 칭의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지만 최후 심판 때의 마지막 칭의는 전 생애를 통해 성령의 인도 아래 얼마나 거룩한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유럽 교회나 영국 성공회 내부에서도 이미 칭의론에 대한 신(新) 해석이 출현했었다는 방증이다.

패커는 이에 대해 엄중한 논평을 제시했다. “톰 라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는 매우 강한 신학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대속에 대해서는 큰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어 “전문적인 수준으로 새로운 관심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현대교회가 이 문제를 완전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다”고 피력했다.

패커는 ‘개신교 신학에서의 칭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끊임없이 이신칭의에 대한 오해가 있고 반대하는 의견이 있으며 형태가 왜곡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자신의 죄인 됨에 대해 무엇인가를 아는 자들에게는 이 교리가 진실로 생명줄이자 송영이며, 찬양의 외침이자 승리의 노래다.” 이런 발언으로 패커는 전통적인 복음주의권이 새 관점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패커는 칭의론과 관련해 “개혁주의 교리의 기초는 타락한 인간의 전적 무능력에 대한 믿음, 그리고 부르심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적인 자비하심이며 이것은 다른 어떤 방식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VI. 개혁적 성공회 신자: 성공회 신자로서 성공회를 보다 성경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

패커는 계속해서 성공회 안에 있으면서 성공회(the Church of England)를 성경적으로 변화시키기 원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는 영국 교회 안에서 영국 교회를 변화시키기 원했던 역사적인 비분리주의 청교도 선조들을 아주 닮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성공회 교회인(Churchman)이었다. 패커는 1926년 7월 22일 글로쳐스터셔(Gloucestershire) 북부에 있는 (우리에게는 차로 유명한) 트위닝(Twyning)에서 보잘 것 없는 영국 하위 중산층 가정(lower-middle-class family)에서 태어났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부친은 큰 서부 철도회사의 서기(a clerk for the Great Western Railway), 어머니는 학교 교사 출신이었다. 교사로서 패커의 자질은 모친으로부터, 꼼꼼히 글쓰고 정리하는 자질은 서기인 부친으로부터 이어받았다 할 수 있다. 장자로 태어난 그는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그의 부모를 따라 14살에 견신례도 받았지만, 이 때도 참된 회개나 구원에 이르는 신앙을 가진 것을 아니었다.

패커는 1944년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해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였고, 후에 신학으로 편입하였다. 대학 진학 후 패커는 재즈 밴드의 클라리넷 연주자와 옥스퍼드 기독학생연합(Oxford Inter-Collegiate Christian Union: OICCU)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패커의 회심은 그가 18세 되던 해인 1944년 옥스포드 대학교의 그리스도의 몸 대학(Corpus Christi College)에 고전(classics) 전공 학생으로 입학했을 때 이루어진다.

옥스포드 시절, 설교자의 간증이 패커의 내면을 강타하며 결신

1944년 가을학기에 개강한지 3주가 지난 10월 22일에 패커는 세인트 알데이트 교회(St. Aldate Church)의 저녁 예배에 참석했다. 나이 많은 목사의 설교가 지루하다고 느꼈지만 그 후반부에 그 설교자 목사가 소년일 때 성경 캠프에서 자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가에 대해 도전 받았다는 신앙 간증이 학생 패커의 내면에 영적 사건을 일으켰다. 패커는 자신을 그 목사와 동일시하면서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드리기로 결단했다. 그리하여 패커는 영국 성공회 안에서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따르는 청교도 신자가 된 것이다.

패커는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고전을 전공하여 1948년 문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런던에 있는 선교사들을 위한 학교인 옥크힐 신학교(Oak Hill Theological College)에서 1948-1949년 교사(instructor, tutor)로서 희랍어와 라틴어를 가르쳤다. 패커는 1949년 영국 성공회 사제를 훈련시키는 기관의 하나인 옥스포드의 위클리프 홈(Wycliffe Hall)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신학 공부를 하고, 1952년에 부제(deacon)가 되고, 1953년에 버밍험 대성당에서 성공회 사제(priest)로 임직한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버밍험의 하본 히스(Harborne Heath)에 있는 센인트 존스 교회에서 부목사직(assistant curate)을 수행하면서, 옥스포드에서 리처드 백스터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D. Phil., 1954). 논문을 썼다. 죠오지 너트올(Geoffrey Fillingham Nuttall, 1911–2007)의 지도로 그가 쓴 논문은 「리처드 백스터 사상에서의 인간의 구속과 회복」이라는 400페이지 넘는 논문이었다.

신학교수로서 패커 생애의 전반부는 영국 브리스톨 그리고 옥스포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55년에 그는 가족과 함께 브리스톨로 가서 1961년까지 틴데일 홀(Tyndale Hall)에서 가르쳤다. 1961년 옥스포드로 돌아와서 1961-1962년 옥스포드 라티머관 도서관의 사서(Librarian of Latimer House in Oxford), 1962년-1969년 존 스토트와 함께 설립한 복음주의 연구센터의 관장(Warden)으로 봉직했다. 1970년 복음주의 계간지의 편집인이 된다.

그 이후 패커는 계속해서 영국 성공회 목사들을 훈련하는 기관에서 가르쳐 왔고, 옥스포드 학부 때부터 가장 가까운 친구인 지질학자 제임스 휴스턴(James Houston)의 초청에 따라 1979년 캐나다 밴쿠버로 갔다. 그곳 리전트 컬리지 신학 교수로 갔을 때도 캐나다 성공회에 속한 밴쿠버에 있는 세인트 존스 성공회(St. John’s Vancouver Anglican Church)에 속해 있었다. 그는 언제나 성공회가 점점 더 성경적인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하였고, 성공회에 속한 복음주의 전통을 대변하는 인물중 한 사람이었다.

모든 면에서 더 성경적 방향으로 성공회를 이끌려고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 직제 측면에서, 상당히 오래된 직제를 유지하고 있어 성도들 중에 선출되어 임직한 장로 제도가 없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여기면서, 목회자와 함께 치리를 감당한 직분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공회는 계속해서 직제에 관해 낡은 관습을 고집하였고, 전반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이고 더 폭넓은 방향으로 나갔다. 결국 패커와 그의 동조자들의 노력은 무색해졌다.

이때 패커는 1966년 10월에 마틴 로이드-존스가 ‘복음주의자들의 전국 회의(the National Assembly of Evangelicals)’에서 영국 모든 복음주의자들이 모여 한 교단을 형성하는 것에 대해 제안했던 바를 다시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그때 로이드-존스는 성공회 같이 교리적으로 혼합된 교회들로부터 나와서 독립적인 복음주의 교회들의 연합체를 형성할 것을 제안했다. 이 회의 의장 역할을 하던 존 스토트는 로이드 존스를 공개적으로 반박하면서 영국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의 심각한 균열이 있게 되었던 일이 있었다. 이때 패커는 20년간 함께 청교도 콘퍼런스를 개최한 로이드 존스와 함께 하지 않고 존 스토트의 입장에 섰다. 그리하여 패커는 동역자이자 선배인 로이드 존스로부터 결별을 하게 됐다. 이는 교회의 연합이 중요하다는 패커의 공교회에 대한 신념에 입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08년 패커가 속해 있는 교회인 캐나다 성공회에서 가장 큰 회중인 세인트 존스 교회(St. John’s Church)가 캐나다 성공회에서 분리해 보다 복음주의적인 아르헨티나 교구와 하나가 되려고 하였다. 이때 패커에게 다음 두 가지 죄목이 뒤집어 씌웠다: ①캐나다 성공회의 교리와 치리를 공적으로 거부한다 ②캐나다 성공회 밖의 다른 종교적 단체와 하나됨을 추구했다. 패커는 영국 성공회가 임직 때에 부여 했던 말씀과 성찬을 섬기는 목사의 권한을 박탈한다(revoked)는 결정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패커는 영국 성공회로부터 공식적으로 거부되었다. 그러자 세인트 존스 교회는 캐나다 성공회 네트워크(the Anglican Network in Canada=ANiC)에 속하게 되고, 이곳은 다시 2009년 북미 성공회(the Anglican Church in North America)에 속하게 됐다. 패커 자신은 영국에 있을 때나 캐나다에서나 계속해서 성공회 안에 있으면서 이를 좀 더 복음주의적 방향으로 변화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성공회 자체가 일종의 분열을 한 셈이 되었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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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 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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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칼럼] 청교도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가 남긴 신학적 유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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