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교회를 알고 싶었다. 복음화율 0.8%, 1억2600만 명의 인구 중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 불과 100만 명 정도 있는 나라. 그 일본에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그리스도인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됐으며, 현재 어떤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특별히 2011년의 동일본 재난 이후, 어느 때보다 가난한 심령의 영혼들이 진리 앞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문의 현장을 확인하고자 했다. 6월 18일부터 28일까지 열흘간, 주님이 인도하시는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본다. <편집자>
일본은 19세기 중반의 메이지 유신 이후 지금까지 1% 안팎의 복음화율을 유지해오고 있다. 태평양 전쟁 이후 폐허더미에서 고난을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났지만, 참된 진리인 복음에는 잘 반응하지 않는 나라.
이는 일본 정탐을 나서기 전, 필자의 일본에 대한 인식이었다.
그러나 열흘간의 짧은 일정. 기독인과 비기독인을 포함 수십명의 일본인을 만난 이후, 필자의 인식에 궤도 수정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일본의 그리스도인들이 서 있는 삶의 기반. 그리고 그들의 헌신. 적어도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만난 일본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진리에 대한 열망과 반응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요시나가(吉中) 전도사. 유년 시절 겸손한 선생님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한 때 방황의 시간을 거치기도 했다. 또 독일로 유학을 떠나 그림을 전공했다. 다시 일본 땅에 돌아온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모든 것이 됐다고 고백한다.
현재는 정신박약 장애인과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또 교회 전도사로 주님의 교회를 섬기지만, 평일에는 많은 일본 사역자가 그렇듯 경제활동으로 택시기사를 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은 동일본 재난 현장인 미나미산리쿠(南三陸)와 게센누마(気仙沼), 이시노마키(石巻)등의 가설주택을 방문한다. 지난 20일 10여명으로 구성된 재난구호현장에 함께 동참하며 식사시간에 잠깐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우리의 섬김을 통해 사람이 회복되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에 우리는 쓰임을 받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요시나가씨는 재난 현장에 올 때마다 자신의 사비를 털어 구입한 구호물품 등을 들고 참여한다. 생우동면, 라면, 장갑, 의류 등을 가는 곳곳에 설치된 가설주택의 집집마다 풍성하게 나눠줬다.
성도들의 모습에 도전받아 예수님 영접
이날 이재민 구호사역에 함께 참여한 겐마(研摩)씨. 그는 불신자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게 됐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까?’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필자에게 그는 “주님은 불신자를 통해서는 역사를 하시는 분”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주는 밥과 과자를 먹으며 사람과 만나는 것이 좋아 교회에 나갔다. 그러나 교회에 나가면서 성도들의 삶이 눈에 들어왔다.
말씀대로 사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아니 그들의 모습이 빛이 나 보였다. ‘그리스도인은 불신자들이 볼 수 있는 성경책’이라는 E. M. 바운즈의 말이 실감났다. 그러다 전도집회 때 예수 믿기로 서원하는 사람은 일어나라고 할 때 별 생각 없이 일어났다가, 그 고백을 주님이 실제가 되게 하셨다.
겐마씨는 미야기(宮城)현에서 사역하는 한국인 선교사를 통해 느헤미야52기도 시간에 초대받아 함께 그들과 기도의 동역자로 교제하고 있다.
차제에 느헤미야52기도에 참여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마음을 나눠달라고 말했다.
“그동안 저는 무엇을 주세요. 해결해주세요. 내가 필요한 무엇을 구하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느헤미야52기도를 통해 기도에 대한 생각과 방법이 바뀌었다.
예수님의 마음을 구하는 것이 기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쓰나미 피해지역을 위해 교회가 구제와 기도를 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재난을 계기로 일본교회가 참으로 많이 바뀌고 달라졌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교회 목회사역에 전임하는 사역자들의 고백을 들어봤다. 올해로 설립 132년째를 맞는 센다이히가시1번지교회(先台東一番丁教会)를 섬기는 호시나 타카시(保科隆) 목사과 호시나 게이코(けい子)사모를 만났다.
교회를 방문한 날은 수요기도모임이 있던 시간. 창세기 47장을 읽고 참석한 20명 남짓한 성도들 전원이 차례대로 기도하고 기도모임을 마쳤다. 이 교회주보에 따르면 6월 16일 출석교인은 어린이 3명을 포함해 80명이다.
대부분 일본 교회의 성도수가 20-30명 선이라는 통계를 고려할 때, 이 교회는 일본에서는 대형교회에 속하는 셈이다.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됐는지 믿음의 출발점에 대해 나눠달라고 요청했다. 게이코 사모의 답을 먼저 들을 수 있었다.
“70년대 일본의 대학가는 학생운동으로 인해 몹시 어수선했다. 당시 가려고 했던 학교는 휴교령으로 인해 입학생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마음이 무척 어렵고 시대상황 만큼 혼란스러웠다.
그러던 중 하숙집 근처에 있는 교회를 찾아가게 됐다. 호시나 목사님도 그런 시대 상황에서 방황을 하다 교회를 찾게 됐다.
당시 그런 좌절감으로 청년들이 교회를 많이 찾았던 시절이었다.”
고난을 겪을 때는 무척 아프다. 그러나 고통 없이는 우리 인생이 주님을 바라볼 수 없다. 그래서 고난이 유익이다. 완전한 절망이 곧 하늘의 은총을 가져오게 됨을 이땅의 성도들의 삶을 통해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불신 가정에서 예수를 믿고 목회자가 된 호시나 목사는 전통적인 일본 가정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덧붙였다.
“일본인들은 예수를 믿으면 가족이나 사회에서 관계의 단절을 감수해야 한다. 가정마다 조상신을 섬기는 제단이 있고, 불교전통이 뿌리 내린 가정에서 그 예식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있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예수를 믿기 시작할 때 가족으로부터내쳐지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에서 불신 가정에서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감싸고 위로하는 일은 목회자들의 중요한 몫이다. 또 교회를 한국처럼 섬기는 성도들도 많지 않다. 현재 교회 청소는 온전히 호시나 목사 부부의 몫으로 남아있다고 한 관계자는 귀띔한다.
예수 영접, 가족관계 단절 감수해야 전통적인 일본 사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가족 안에서도 철저한 고립을 의미한다.
사실 이말이 한국적 정서에서는 그리실감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가족들은 때로 서로 격하게 싸워도, 가족이라는 굴레 속에서 웬만큼 구성원들의 다름을 묵인하며 한 공간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한번 관계가 끊어지면 그 관계 회복은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같은 경향이 서로를 배려하고 인정하는 ‘와’(和)문화의 배경이다.
그래서 많은 일본 그리스도인들이 가족들에게 자신의 신앙생활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온 본지 일본어판 편집위원 이윤경씨는 “처음에 많은 영역에서 일본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 일본인들이 가족이나 사회조직에서 ‘외톨이’로 자신의 마음을 털어 놓지 못하고 아파하는 그들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중동의 무슬림 국가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나라에 따라 조금은 다를 수 있지만, 생명을 걸어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일본 땅에서는 산채로 매장을 당하는 듯한 철저한 고립을 가정에서부터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화적 차이를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일한친선선교협력회장 오야마레이닌(尾山令仁)목사는 말한다. 지난해 말 뉴스레터를 통해 그는 “한국인 선교사가 일본에 와서 일본인교회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귀국한 사례를 많이 봤다.
이는 그만큼 다른 문화권의 전도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일본을 섬기는 한국인 선교사들에 대해 “일본사람을 지도하려하지 말고 섬기는 자세로써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간절한 마음을 표한다.
일본을 섬기려는 태도 필요
복음은 그러나 그 정도의 고난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는다. 복음 자체가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나의 고통을 뛰어넘어 동일한 아픔을 가진 인생을 섬길 수 있도록 하는 은혜의 복음, 그 복음의 능력이 있다.
일본의 최북단 홋카이도(北海道)에서 만난 미우라 타다오(三浦 忠雄)목사는 유년 시절을 부모에게 버림을 받아 고아로 성장했다. 그러나 독실한 기독교인인 양어머니를 만나,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아, 제는 도탄과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섬기고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통해 예수님을 만난 이후 예수님을 모르는 작은 마을에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자하는 소망을 품게 됐다. 신학교 때 인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현재 이곳에서 오래전부터 살던 아이누족이 자신들의 모든 권리가 빼앗긴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그들을 섬기고 있다.”고 말했다. 미우라 목사는 또 “일본이 아이누족을 짓밟은 사실을 반성하고 이들의 권리 회복을 위해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예수님이 나타내신 사랑의 길을 전하는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미우라 목사를 만나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필자의 질의 내용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답변서를 보내왔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구절이 있었다. 그는 아이누족에게 선교할 계획이 없다는 듯한 대목이 들어 있었던 것. 그러나 그와 만남 가운데 그렇게 이야기한 그의 혼네(속마음)을 알게 됐다.
그들에게 선교를 드러 내놓고 다가섰다면, 그들 아이누족에게서 거부 받을 상황이 자명했다. 그는 일본에 언어와 문화를 송두리째 빼앗기며 또 기독교에 마음을 닫게된 홋카이도의 원주민인 그들에게 먼저 그리스도인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누족의 현황은 다음 호에 소개될 예정이다.
일본성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복음
주님은 일본의 여정을 매듭지으며 전혀 예기치 않은 만남을 허락하셨다. 귀국 하루 전인 27일 오후. 센다이의 한 한국 선교사를 통해 함께 일본인 목회자 부부를 소개받았다.
센다이 근교 시요가마(鹽釜)시에 위치한 그리스도 시요가마등불교회의 히라시마 노조미(平島 望) 목사. 3대째 모태신앙으로 자란 그가 대학 시절에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죄 된 속성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닫고 몸부림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다 하나님 말씀 앞에 섰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가 자신을 새롭게 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 이후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됐다.
“지난 15년 동안 이곳에 와서 노방전도를 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동안 깨닫게 된것은 복음 이외에 사람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 지금 일본교회에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 물었다.
“일본인은 모든 영역에 대해 너무 많이 고려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온전히 하나님께 의뢰하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알고 계신다는 의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일본인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인 아버지 슬하에서 18년간 생활해 한국어에 능통한 노리코(範子) 사모도 통역을 하다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일본 교회는 회개해야 한다. 일본이 한국과 한국민족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리코 사모의 아버지는 실제 그같은 생각을 지난 30년 동안 한국 땅에서 순종하며 한국 땅을 섬기고 있다고 했다.
노리코 사모의 아버지 요시다 고조(吉田耕三) 목사(서울일본인교회)는 현재 한국에서 32년째 ‘사죄와 화해’란 부르심으로 한국과 일본 양국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소망하며 그 가교 역할을 하고있다.
미야기·홋카이도=특별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