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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자유를 찾아 걸어서 17시간 산을 오르고 철조망을 넘었어요”

▶ 쇼클 자매의 딸이 숲과 태양을 그린 그림

터키에서 만난 그리스도인(3)

아프간에서 이란을 거쳐 터키에 이른 난민 가족들

터키 여정의 마지막 행선지인 흑해 인근의 J시에는 밤 늦은 시각에 도착했다. 지인과 함께 난민이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갔다. 도로변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의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유년시절 70년대 한국 골목길을 보는 듯한 낯익은 풍경이다. 계단을 올라 코너를 돌아서 석탄 포대가 몇 개 쌓인 집 문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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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전통 음식 고르메 싸브지

현관문을 열자 나타난 1미터 남짓한 너비의 복도에 붙어 있는 각각 서너 평 정도의 방 2칸이 생활공간의 전부였다. 친자매인 쇼클(가명)과 메르(가명)가 딸들과 함께 우리 일행과 식사를 하기 위해 그때까지 기다렸다고 했다. 밥에 얹어 먹을 수 있는 스튜 같은 이란 전통 음식 고르메 싸브지로 늦은 저녁 식사를 맛있게 했다.

한 사람씩 5명의 간단한 자기 소개를 들었다. 그리고 지인은 배낭을 풀었다. 성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어서 그들에게 줄 선물이 있다고 했다. 라면과 초코파이, 그리고 휴대전화 공 기계 2개. 휴대전화기는 지인이 갖고 있던 것보다 최신기종이었다. 물건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한 자매가 라면 봉지를 뜯었다. 냄새를 맡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섬기는 이의 기쁨을 알 것만 같았다.

–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됐나?

1박 2일 동안 짬만 나면 이들이 살아온 지난날의 이야기를 물었다. 나중에는 유엔난민사무소에서 하던 인터뷰보다 길다고 웃으며 말했다.

“3년 전 이란에서 차를 타고 국경으로 가, 산을 넘어 17시간을 걸어서 터키에 도착했다. 배낭 하나 둘러메고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이곳에 왔다”

대화 도중 ‘인주리 운주리’라는 이란어 단어가 자주 들렸다. 우리말로 ‘이렇게 저렇게’라는 뜻이라고 한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방법을 거쳐 왔다는 것이다. 이 단어는 음식을 만들 때, 이곳에서 정착하는 과정을 설명할 때 계속 사용됐다.

– 어떻게 이란을 떠날 결심을 했나?

“결혼 생활이 쉽지 않았다. 재봉일과 파출부 같은 일로 가정을 꾸리며, 일하지 않는 남편의 가정폭력을 견디기가 너무 어려웠다” 두 자매의 공통된 삶의 여정이었다. 13살에 결혼한 페레는 자녀 셋을 낳았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됐다. 더 어려운 것은 도박에 빠진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이었다. 감옥에 사는 것 같았다. 위성TV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아버지의 전도로 신앙생활을 하게 된 딸들은 이 질곡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무려 8년간 돈을 모았다. 국경을 넘는데 브로커에 지급해야 할 금액은 1인당 8000텔레(약 160만 원) 정도. 두 자매는 마침내 디데이를 정했다.

– 어떻게 국경을 넘었나?

“먼저 딸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사내아이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국경을 넘었다. 철조망을 간신히 빠져나와 터키 땅을 밟았다. 그러다 경찰이 비추는 서치라이트에 적발됐다. 다시 되돌아가라고 할까봐 두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국경 인근 마을에 도착했다. 공원 벤치가 있는 곳에서 종이를 깔고 얇은 담요를 덥고 노숙하며 난민 생활이 시작됐다”

그 이후, 유엔난민기구를 통해 난민 신분을 확인받고 이곳까지 와서 숙소를 얻는 과정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모두 여자들로 구성된 이 가족을 보고 집주인들이 임대를 외면했다. 임대료를 받지 못할까봐 꺼려하는 눈치였다. 몇 달 만에 간신히 집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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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클과 메르 자매(왼쪽 사진)와 리에 자매

– 그런 과정을 어떻게 이겨냈나?

“기도했다. ‘하나님, 저희를 지켜주세요. 더는 갈 데가 없어요’ 그런데 고비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에 이르렀다”

–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됐나?

“아버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다. 전쟁 통에 이란으로 탈출했다. 아빠가 어느 날 위성TV에 나온 한 기독교인 간증을 듣고 도전을 받았다. 그리고 예수를 믿게 됐다. 아빠가 참 어려움이 많은 분이었는데 예수를 믿고 난 이후, 정말 많이 달라졌다. 그러다 딸인 우리에게도 복음을 전하셨다” 아프간 출신인 그들은 이란에서도 난민으로 살았다. 이란에서도 난민. 지금도 난민. 나그네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나?

“현지인에 비해 난민들이 받을 수 있는 급여는 참 적다. 하루 일당이 50텔레(약 1만 원) 정도다. 처음에는 돈이 없어서 땔감을 구하지 못해, 추운 겨울을 보내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못할 때 정말 안타까웠고, 기적적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함께 탈출했던 막내아들은 이들을 찾아온 남편이 데리고 떠났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좋아하는 딸들이 학교에 다니며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한편의 대하드라마나 다를 바 없었다.

-기도제목을 이야기해 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셔서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주님이 허락하신다면 캐나다 같은 나라로 가기를 소망하고 있다”

하룻밤을 보내며 고단한 나그네의 삶을 가감 없이 들었다. 이들이 우리가 돌아갈 본향인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이 땅에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기를 축복하고 헤어졌다.

난민 전도자를 통해 예수님 영접한 난민가족

우리 일행은 마지막 일정으로 현지 난민들을 섬기는 교회, 한 곳을 찾았다. 몇 년 전 아프간을 탈출, 이란을 거쳐 이곳 J지역으로 오게 됐다는 흐람(가명) 형제. 그는 한때 마약에 중독돼 삶을 탕진하다 이란에서 기적적으로 하나님을 만났다. 그 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곳으로 오게 됐다는 그는 2년째 이곳과 다른 지역 두어 곳에 교회를 개척했다. 어떻게 복음을 전하며 예배를 드리는지 물었다.

“터키에 온 이후 아프간이나 이란 사람들을 보게 되면 어떤 삶을 사는지 짐작이 되니까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얼굴을 보면 어느 정도 분별이 된다. 그러면 인사를 한다”

그의 삶도 놀라운 간증이 많다. 그러나 여기서는 흐람 형제가 전도한 한 가정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신 이야기에 주목하기로 한다. 흐람 형제는 우리 일행을 교회 근처에 사는 리에(가명) 자매 가정으로 인도했다. 주님은 먼저 이들과 예배를 드리도록 했다. 함께 기도하고 찬양했다. 이들은 눈을 지그시 감고 현지어로 찬양을 불렀다.

“마음에 평안함을 주시는 분 / 바다를 창조하신 분 / 태양 빛을 밝히신 분 / 꿈을 아름답게 하시는 분 …(중략)… 나는 구원의 축복을 당신을 통해 알아갈 것입니다” 이런 의미의 찬양곡이라고 지인이 말해줬다.

–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나? 리에 자매에게 물었다.

“1년 6개월 전 아이들과 길을 가다가 흐람 형제를 만났다. 우리 가족을 식사 자리에 초대하고 방문해서 영화도 보여주고 자신의 삶을 나눠줬다. 조심스러워 몇 차례 거부하기도 했다가 생일에 초대를 받고 만나게 됐다. 그리고 몇 달 동안 예배에 참석해 말씀을 듣던 중 성경 말씀이 귀에 들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20대 초반인 그녀의 딸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던 어느 날 성경을 주목하게 됐다. 빨리 성경을 보라는 마음이 일어났다. 성경을 읽는데 처음 느끼는 평안함과 기쁨이 있었다. 그리고 찬양하는 가운데 기도했다. 무릎을 꿇고 주님이 필요하다고 고백했다. 놀랍게도 그녀의 삶이 달라졌다. 이제는 모녀가 함께 주님의 은혜를 누리며 흐람 형제가 섬기는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 어떻게 이란에서 나올 생각을 했나?

그녀의 길고 긴 사연이 시작됐다. 질문은 짧았지만, 답은 길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살던 아버지와 함께 내전을 피해 이란으로 탈출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삶은 듣는 이의 눈시울을 붉히게 하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살 때, 마당에 폭탄이 떨어졌다. 그 사건으로 오빠는 죽고, 나는 파편이 몸 여기저기에 박혔다. 지금도 파편들을 다 제거하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혈관 바로 옆에 파편이 있는데 제거수술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제거수술을 포기했다. 그런 때문인지 지금도 날이 궂으면 온몸이 아프다. 그때는 약을 먹고 버틴다”

아프간을 떠난 리에 자매 가족은 이란에서도 난민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다 15살에 결혼했다. 아직 세상을 잘 알지 못할 나이에 결혼한 그녀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아프간 내전을 피해 이란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후, 결혼하고 보니 남편의 3번째 아내였다. 참 고단한 삶이었다. 남편의 첫째 부인이 낳은 아들에게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다 5년 전 남편이 죽고 나서 더 이상 그 집에서 살기가 어려워서 탈출했다” 지금도 간혹 그들이 찾아와 힘들게 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는 그녀의 삶은 이제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

처음에는 신세를 한탄하고 주변에 아는 지인 하나 없어 눈만 뜨면 우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나 리에 자매는 주님을 알고 난 이후 감사한 삶을 누리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이 부족하고 궁핍하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과 동행하고 있기에 행복하다.

한 가정을 주님 품으로 이끈 흐람 형제는 흐뭇한 표정으로 리에 자매 가족을 바라본다. 자신도 여전히 난민으로 힘겹지만, 주님이 함께 하실 것이란 믿음과 소망으로 이 땅에 복음의 씨를 뿌리고 있다. 그는 여기저기 세워진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차를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끝> [복음기도신문]

앙카라(터키)=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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