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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양원, 버려진 한센병 여인에게서 시작된 사랑의 역사

▶ 1926년 여수 애양원에서 한센인들이 물을 긷는 모습

조선선교열전 (17) – 전라남도 편

종교개혁 500주년을 넘긴 2018년,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133주년을 맞았다. 구한말부터 본격화된 개신교 선교 역사는 문화, 교육, 의료 분야에서 우리나라 역사와 맥을 같이 하며 한반도의 근대화와 함께 진행됐다. 우리나라 곳곳의 선교역사를 통해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사랑을 되새겨본다. <편집자>

기독교인이라면 한번쯤 애양원을 찾는다. 이 애양원 설립에 기여한 사람은 포사이드(Forsythe) 선교사이다. 그는 미국 루이빌 의과대학에서 공부하고, 쿠바에서 벌어진 미국과 스페인 전쟁 때 군의관으로 참전했다. 전쟁 속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의 생명을 더 깊게 체휼했다. 그는 1904년 전주예수병원 2대 원장으로 부임해 의료 활동을 하던 중 왕진을 갔다가 괴한으로부터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미국으로 후송 되었다. 상처가 아물자 다시 한국으로 온 그는 광주병원에서 사역하던 윌슨(wilson) 선교사의 급한 전갈을 받는다. 순천지역의 오웬 선교사가 폐렴으로 쓰러진 위급 상황이었다.

버림받은 한센병 여인

포사이드는 말을 타고 광주로 가던 중 나주를 지날 무렵 길가에 쓰러져 있는 한 여인을 발견했다. 한센병 환자였다. 마을에서 버려진 채 오랫동안 떠돌던 여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손가락 발가락은 문드러져 있었다. 가까이 가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포사이드는 그녀를 말에 태워 광주로 향했다. 천형(天刑)이라고 불리우며 사람들에게 천대받던 한센병 환자를 향한 포사이드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었다.

20km 정도를 걸어 광주 선교부에 도착했을 때, 포사이드는 탈진 상태였다. 동료 오웬 선교사는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큰 키에 젊고 건장한 미국인 의사가 최악의 상태인 한센병 여인을 말에 태우고 걸어서 광주에 나타난 사실은 오웬 선교사의 장례식 못지않게 광주 지역에 화제가 되었다.

포사이드와 윌슨 박사는 한센병 여인을 진료소에 입원시켰다. 그러나 환자들의 거센 항의로 여인은 바깥의 벽돌 가마를 임시 거처로 써야 했다. 며칠 전 장례를 치른 남편의 침대를 내어 준 오웬 부인은 당시 상황을 1909년 8월 ‘미셔너리(The Missionary)’지에 실었다.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이 아니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포사이드는 행동에 옮겼습니다. 물론 반대도 심했습니다. 광주로 환자를 데리고 왔을 때 병원으로 바로 들어갈 수가 없어 마당 구석에 있는 가마터로 옮긴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포사이드는 말쑥한 신사복 차림으로 고름투성이 환자의 팔을 잡고 부축했으며, 그 광경에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포사이드는 자신이 아는 한국말을 최대한 동원해 무엇 때문에 그녀를 도와주는지 설명해 주고 그녀의 생각도 이끌어냈습니다.… 벽돌 가마에 모인 사람들은 한센병 여인이 포사이드 의사의 따뜻한 손을 잡고 나오는 것을 보고 ‘마치 주님을 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우리 쪽으로 올 때의 광경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센병 여인은 포사이드가 전하는 복음을 알아들었다. 이따금 한국인 기독교 신자들과 선교사들이 그녀를 방문해 예수님에 대해 말해 주고, 예수님께서 그녀를 위한 처소를 준비하였고, 새로운 몸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여인은 “내 동족들은 여러분처럼 나를 대우해 주지 않았을 것”이라며 감사했다.

애양원에 담긴 그리스도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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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 선교사들 단체사진. 맨 뒷줄 왼쪽이 포사이드(출처: monthly.chosun.com)

광주 선교부는 이 사건으로 인해 한센병으로 버려진 환자들을 위해 모금을 하고, 대여섯 사람을 돌볼 수 있는 방 세 개가 있는 집을 지었다. 윌슨 박사는 에든버러에 있는 극동지역 한센병 협회에서 재정지원을 얻었다. 윌슨이 한센병 환자를 치료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환자들이 광주로 몰려들자 1912년 광주 봉선리에 E자형 병원 건물을 짓고 본격적으로 한센병 환자를 치료했다.

애양원은 이렇게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비유되는 포사이드 박사의 섬김으로 시작되어 초대 원장 윌슨 선교사로 이어졌다. 1928년 이 병원은 환자의 증가와 이로 인한 주민들의 반발로 여수 율촌면 현 애양원(애양병원 역사박물관)으로 이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포사이드, 윌슨 선교사 뿐 아니라 애양원 예배당 담임 목사였던 손양원 목사의 진한 발자취도 남겨져 있다.

애양원은 ‘사랑으로 양을 키우는 동산’이라는 뜻이다. 당시의 한센병 환자들은 사람들이 꺼릴 뿐 아니라, 가족들도 버리고 살아야 할 만큼 천형이었다. 그들은 살아있으나 지워져야 하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한센병 환자들에게는 세상 누구보다 그리스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을지 모른다. 죄인을 위해 생명을 기꺼이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고통 받고 천대 당하는 한센병 환자들을 외면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룬 역사이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참고문헌: <한국선교이야기>(조지 톰슨 브라운 지음, 도서출판 동연, 2010)/ www.agoranews.kr 순천광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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