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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복음의 권능으로 믿는 자들이 날마다 더하다

▶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지에 있는 오웬 선교사(한국 이름 오기원)의 묘(출처: 한국관광공사)
조선선교열전 (13) – 전라남도편

2018년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133주년을 맞았다. 구한말부터 본격화된 개신교 선교 역사는 문화, 교육, 의료 분야에서 우리나라 역사와 맥을 같이 하며 한반도의 근대화와 함께 진행됐다. 우리나라 곳곳의 선교역사를 통해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사랑을 되새겨본다. <편집자>

광주 선교부의 설립

1904년까지 목포 선교부는 전남 내륙지방까지 여러 개의 예배장소를 열고 순회했다. 그러나 복음의 처소들이 빠르게 열렸을 뿐 아니라, 항구에 있는 목포 선교부가 전남의 내륙 지방에 있는 교회들까지 순회하는 여정이 멀고 험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904년 봄, 선교부는 연례회의에서 새로운 도청 소재지인 광주에 선교부를 열기로 결정했다. 광주 선교부의 개척과 책임자로는 목포에 있는 벨과 오웬 선교사 두 가정이 가게 되었다. 그해 12월, 그들은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어 작은 배로 이삿짐을 싣고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노 젓는 작은 배로 하구에서 강을 따라 올라갔던 일을 오웬 부인은 이렇게 적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갈 때 경치가 장엄했다. 날씨도 화창해서 새 집으로 가는 길을 모두 감사했다. 후에 바람과 파도가 좋지 않아 몇 사람은 배멀미를 했다. 수백 년 전에 뉴잉글랜드의 해변에 상륙한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느낌이었다.”

광주에는 믿는 교인 한 가정이 있었다. 목포에서 이미 세례를 받고 먼저 광주로 이사 온 김윤수 가정이었다. 벨과 오웬은 도성 남쪽에서 걸어서 몇 분 안 되는 유난히 아름다운 언덕을 골라 구입할 기회를 얻고, 선교부로 쓸 두 채의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첫 예배는 1904년, 눈 오는 성탄절에 벨 선교사의 임시 거처에서 올려졌다. 광주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연일 찾아와서 구경하고 말씀도 들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여자들과 남자들이 다른 방에 앉고 벨 목사가 그 사이에 서서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했다.

이렇게 벨 선교사 주택의 사랑에서 집회를 시작한 지 몇 주일이 못 되어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했다. 벨과 오웬은 북문 안에 기지를 마련하고 예배당을 세웠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이 집도 비좁아 예배당을 배로 늘리고, 후에 다시 늘려 짧은 5~6년 동안 교인 수는 500명에 이르게 되었다.

1910년까지 대부분 한국 교인들의 헌금으로 건축된 예배당은 이렇게 세 번이나 확장되었다.

날마다 믿는 자들이 더하고

전남지역의 사역은 매년 빠르게 성장했다. 벨과 오웬은 25개 구역의 거대한 지역을 담당했다. 이 5년 동안 예배처는 4개에서 77개로 늘었고, 세례교인은 72명에서 1500명으로 늘어났다. 그를 통해 광주 송정리교회(1901), 해남 선두교회(1902), 광주 양림교회(1904) 등 많은 교회가 설립되었다.

이 밖에 전남 각 지역을 순회하며 프레스톤(J.F. Preston), 맥컬리(H.D. McCallie), 코잇(R.T. Coit) 선교사 등과 함께 여러 교회를 순회하며 설교했다.

1909년 이른 봄, 오웬 선교사는 광주에서 79마일 남쪽을 순회했다. 광주를 출발하여 열흘 후에는 화순, 남평을 지나 장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심한 오한과 고열에 시달리며 주일을 맞았다.

월요일 아침에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자 신실한 지체들의 도움을 받아 가마를 타고 산길을 지나 시골 면 소재지로 운송되었다. 그곳 여인숙에서 또 하루를 앓던 그는 다음날 30마일을 더 운반되어 밤길을 지나 새벽 2시 광주에 도착했다. 프레스톤 선교사는 1909년에 쓴 ‘코리아(Korea)’라는 글에 이렇게 적고 있다.

“약도 없고, 적절한 영양 공급도 없이 가마에 쭈그려 앉아 매서운 북풍을 맞으며 참을 수 없는 통증을 견뎌야 하는 이 극심한 여행은 그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토요일, 그를 돌보던 의사 윌슨 선교사는 위급함을 알고 목포의 포사이드 의사를 불러 상의했다. 그날 밤에 갑자기 끝이 왔다. 그의 마지막 말 중 하나는 ‘아, 그들이 나에게 조금만 안식을 주었더라면….’하는 것이었다. 지친 병사에게 지금 안식이, 다른 세상에서의 감미로운 안식이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참고문헌: <한국선교이야기>(조지 톰슨 브라운 지음, 도서출판 동연,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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