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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선교열전 (9) – 전라북도편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132주년을 맞고 있다. 구한말부터 본격화된 개신교 선교 역사는 문화, 교육, 의료 분야에서 우리나라 역사와 맥을 같이 하며 한반도의 근대화와 함께 진행됐다. 우리나라 곳곳의 선교역사를 통해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사랑을 되새겨본다. <편집자>
군산 구암교회와 3.1운동
군산 선창가에서 구암으로 이사했던 군산선교부에서는 1902년 전킨 선교사의 사랑채에서 군산 영명학교가 시작됐다. 다시 여학생을 중심으로 멜본딘여학교도 설립됐다. 이 두 학교가 설립되면서 구암교회에 학생들이 몰려들었고 민족교육을 받게 됐다.
이들은 군산지역 3.1운동의 주역이었다. 당시군산 구암동에서 일제시대였던 1919년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나흘 뒤인 3월 5일 한강 이남 최초로 항일독립만세 운동이 시작됐다.
구암교회 장로이자 영명학교 교사였던 박연세가 세브란스의전에서 유학 중이던 영명학교 출신 제자 김병수를 통해 독립선언문을 반입하고 시위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영명학교 기숙사에서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다.
그러나 시위 예정일의 전날인 3월 5일 발각되어 박연세 장로가 연행되자 이 모습을 본 영명학교와 멜본딘여학생들이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시작했다. 구암교회 교인, 궁멀 예수병원 사무원, 군산시민들이 가세해 총 28회의 항일시위를 벌였다. 이로 인해 사망 53명, 실종 72명 등 희생자가 발생했다. 3월 30일에는 1천여 명이 등불을 들고 행진을 하기도 했다. 그 후 박연세 장로는 목사가 되어 목포양동교회에서 시무하다가 신사참배 반대로 투옥되어 대구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익산 최초의 남전교회
1896년 군산에서 장을 보고 오던 송원선과 강문성은 전킨 목사를 만나 전도를 받았다. 그 이후 두 사람은 당시 송지동에 거주하던 문학선의 방 하나를 빌려 송지동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최치국 등 다수의 신자들이 협력하여 교인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후 1901년에는 익산시 오산면의 남전교회가, 1903년에는 봉남면 대송리의 대송교회가 차례로 송지동교회에서 분립해 나갔다. 당회장은 군산 선교부의 전킨 목사와 불(W. F. Bull) 목사가 차례로 맡았다.
남전교회는 1900년 봄에 시작됐다. 원래 남전리 사람들은 군산 구암교회와 김제 송지동교회를 다녔는데, 그 해에 남전리 이윤국의 집에 모이게 되면서 교회가 시작됐다. 당시 이름은 남차문교회였다. 그들은 1901년 초가 5칸의 예배당을 마련하고 이어 남자소학교인 도남학교를 운영하면서 동네 아이들을 가르쳤다. 후에 여자소학교인 미성학교, 남녀소학교를 합병한 신성학교를 설립하여 복음전파와 교육에 힘썼다. 1919년 4월 4일 익산 솜리장터에서 있었던 만세시위를 주도한 이들은 바로 남전교회의 교인들과 도남학교의 학생들이었다.
남전교회 최대진 목사를 비롯 남전교회의 주축들은 며칠 밤을 새워가며 사람들에게 나눠줄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그렸다. 그들은 성도뿐만 아니라 성도가 아닌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흰 옷을 입고 장날인 4일 정오경에 시장에 모이게 했다. 만세대열은 순식간에 1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흰 두루마기를 입은 시위대는 솜리장터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일제헌병대가 시위를 강제 진압하며 문용기, 박영문, 장경춘 등이 현장에서 희생됐다.
서두교회, 황등교회
이밖에도 1898년 정정보라는 전도인이 삼기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면서 출발한 서두교회, 평양에서 기성의원을 운영하던 계원식 장로 병원에서 1922년 출발한 황등교회가 익산지역에 있다. 특히 삼기면의 서두교회는 익산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교회이다.
삼기는 백제 불교 문화권의 영향 아래 있는 지역으로 기독교로 개종이 쉽지 않은 지역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서두교회 교인들은 이리 지방에서 기독교를 중심으로 3.1 운동이 일어날 때 참여하였고, 이러한 일들이 신사참배 반대 저항 운동에까지 이어지게 된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참고문헌: <전라북도 기독교 근대문화유산의 현황과 의미>(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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