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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碧眼)의 호남 7인 선교사, 전주를 선교기지로 세우다

▶ 1892년 한국에 도착한 7인의 남장로교 소속 선교사들과 그들의 통역을 맡았던 장인택 조사의 모습. 맨 윗줄 첫 번째부터 메리 레이언, 리니 데이비스, 두번째 줄 왼쪽부터 장인택, 테이트, 전킨, 레이놀즈 부인, 레이놀즈, 메티 테이트(출처: 도서 한국선교이야기 표지)
조선선교열전 (4) – 전라북도 편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132주년을 맞고 있다. 구한말부터 본격화된 개신교 선교 역사는 문화, 교육, 의료 분야에서 우리나라 역사와 맥을 같이 하며 한반도의 근대화와 함께 진행됐다. 우리나라 곳곳의 선교역사를 통해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사랑을 되새겨본다. <편집자>

호남 7인의 선발대

1891년 9월 안식년을 맞은 언더우드 선교사는 미국 각지를 돌며 한국 선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테네시 주 내슈빌에서 열린 미국신학교해외선교연합회 집회에서 그의 강연을 들은 테이트(Lewis Boyd Tate), 레이놀즈(William Davis Reynolds), 전킨(William McCleary Junkin) 등이 한국 선교를 결심했다. 이들은 미국 남장로교 해외선교부에 한국선교사로 파송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당시 남장로교는 한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여기에 재정적인 문제로 이들의 청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좌절하지 않고 매일 만나 기도로 선교를 준비했다.

그리고 1892년 ‘더 미셔너리’라는 선교잡지에 ‘왜 우리는 한국에 가기를 원하는가?’라는 글을 실어 한국 선교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북장로교 선교위원이자 언더우드 선교사의 형 존 언더우드가 2천 달러의 선교기금을 남장로교에 기부하고, 언더우드 선교사도 500달러의 헌금을 기부함으로써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미국 남장로교는 테이트, 레이놀즈, 전킨 등 3명의 남자 선교사와 메티(Mattie S. Tate, 테이트의 누이동생), 팻시 볼링(Patsy B. Reynolds, 레이놀즈의 아내), 메리 레이번(Mary L. Junkin, 전킨의 아내), 리니 데이비스(Linnie F. Davis) 등 4명의 여자 선교사를 첫 한국 선교사로 파송했다. 이중 데이비스 선교사는 1892년 10월 17일에, 나머지 6명은 11월 3일에 제물포를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이들 7명의 선교사는 남장로교 한국 선교의 문을 연 ‘7인의 선발대’로 불리게 되었다.

호남 7인의 선발대가 도착할 당시 조선에는 25~30명의 선교사가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미국 북장로회, 감리교 등 파송 교단에 따라 서로 충돌과 경쟁을 피해 선교구역을 나누었다. 서울, 부산, 원산 등에 선교기지가 있었지만 기독교는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었고 직접적인 선교활동은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7인의 선교사들이 사역하기로 한 전라도 지역은 기독교와 전혀 접촉이 없었다. 전라도는 1860년대 로마 가톨릭 수난이 있기 전까지는 가톨릭이 번성하던 곳이었지만, 수난 후 가톨릭의 흔적도 희미해졌다.

그들은 우선 서울에 자리 잡고 있던 북장로교 선교사들과 함께 서대문에서 생활하면서 공식적인 선교 조직을 시작하고 조선말을 배웠다. 일 년쯤 뒤에는 짧은 설교를 할 수 있을 만큼 조선말을 익혔다. 얼마 후 그들은 공주와 전주 등 전라도 순회를 시작했다. 그리고 1893년 초, 레이놀즈 선교사의 조선말 선생이자 조사(助事)인 정해원을 전주로 보내 탐방하고, 전주 성문 밖 은송리(현재 완산동 백운정 자리) 초가집을 미화 26달러에 매입해 선교기지를 마련했다.

전주는 유교의 뿌리가 깊은 곳이었기에 사람들은 기독교가 들어오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다. 더욱이 전주성 안은 신분이 높은 양반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이 들어온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배타심이 있었다. 그러나 은송리는 성 안 사람들이 업신여기는 소외계층들이 모여 사는 보잘 것 없는 마을이었다. 정해원은 감격해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전도를 했다고 한다.

전주에 선교기지 마련

1894년 2월, 선교회 연례회는 테이트 목사와 여동생 메티 테이트를 먼저 전주에 보내고, 일이 잘되면 가을에 상설 선교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조선인들은 돌을 던지기도 했지만, 푸른 눈의 이들을 보기 위해 몰려들기도 했다. 이미 서울 저잣거리를 오가며 조선인과 친숙하게 접촉했던 이 선교사들은 서툰 한국말로 자연스럽게 전주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서양 선교사들이 조선말을 하는 것을 보려고 자주 놀러왔다. 메티 선교사가 기거하던 방에 있던 다섯 개의 창호지 문은 밤이고 낮이고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수없이 구멍이 뚫렸다. 그녀는 광장 거리에 나가지 않고도, 찾아온 여자들에게 유인물을 전해줄 수 있었다.

그 결과 이 초가집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후에 서문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처음부터 5~8명이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이들 중 6명이 성경 말씀의 진리를 믿었다. 그들은 세례를 받기 원했지만, 테이트 목사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해 돌아오는 여행에서 성례전을 베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지역에서 일어난 동학농민운동 때문에 그들은 6주 만에 전주를 떠나야 했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참고문헌: <전북선교 120주년과 예수병원설립 115주년 기념 포럼>(2013) <한국선교이야기, 조지 톰슨 브라운 지음, 도서출판 동연>(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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