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나는 자격 없는 아빠, 자격 없는 선생이었습니다”

절망 속에서 십자가를 붙잡은 정동진 선교사(헤브론선교대학)

유독 어렵고 힘든 고백이 많았다. 인터뷰는 중간중간 끊어지다 다시 이어졌다. 그러나 마지막은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었다. 지독히도 변하지 않는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마주하며, 옛생명에 대해 완전히 ‘죽은 자’가 되기까지 정동진 선교사의 고백을 들어보았다.

– 주님을 어떻게 만나셨나요?

“아마 놀라실 거예요. 하나님의 강권적인 섭리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데…. 2000년 7월 1일. 고3이던 제 딸이 저한테 혼나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어요. 그때까지 저는 어머니가 절에 빌어서 동자로 들여보내는 태몽을 꾸고 태어났을 정도로 불교로 운명지어졌다고 여기고 살았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조계사 법회에 다니고, 대학에서도 대불련을 할 정도였죠. 그런데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이 어떤 것인지 겪으면서, ‘이런 것을 허용하는 부처라면 거부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인간적으로는 딸이 다니던 동네교회에서 장례를 치러주신 것이 감사하기도 하고, 또 어머니 몰래 혼자 교회에 다니고 있던 아내도 너무나 충격이 커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으로 저도 교회에 나가게 됐죠. 그런데 몇 달 동안 교회 목사님이 저 한 사람을 위해 설교를 하시는 것 같았어요. 절망하고 있으니까 메시지 하나하나가 마음에 닿았던 거죠. 그렇게 주님이 방향을 못 잡고 마음 둘 곳 없었던 우리 부부를 인도해주셨어요.”

– 그 이후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3년 정도 주일예배, 새벽예배, 교회 성경공부반을 하면서 양육을 받았어요. 그리고 2003년 가을. 한 교회 주최로 열리는 신앙훈련에 참여하게 됐어요.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2주차가 되었을 때, 자녀들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는데, 교회건축 현장에서 아들을 잃은 한 목사님이 절절한 사랑으로 죽은 아들에게 쓴 편지를 읽었어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남은 두 딸에게는 썼지만, 이미 죽은 큰딸이 받지 못하는 편지를 나는 쓰지 않았으니까요. ‘이건 뭐지? 나는 딸을 위해 편지 한 장 안 쓰는 얄팍한 놈인데, 저분은 어떻게 죽은 아들을 위해 저런 편지를 쓰나? 나는 대체 어떤 놈인가?’

그때부터 주님이 일하기 시작하셨어요. 그다음 주까지 편지를 쓰지 못하고 있다가 하루는 훈련시간 보다 일찍 가서 한쪽 구석에서 기도하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편지를 쓰고 학교가 시작되는데, 스태프들이 불러주는 찬양이 있었어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 찬양이 주님이 내게 해주시는 말씀으로 들렸어요. 딸을 잃어버린 자격 없는 아빠. 그런 나에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얘기해주시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요. 그렇게 5주 과정이 끝나고 간증자로 섰어요. 사실 준비도 안 돼 있고, 변화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간증자로 나서서 아직 실제 되지 않은 것들을 얘기한 거죠.”

절망의 시간들

– 실제 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하루는 간증을 하고 집에 왔는데 아내가 잔소리를 했어요. 저는 무언가 내 자신이 변한 줄 알았고 은혜가 충만해서 집에 왔는데, 그 잔소리를 듣자 딸에게 냈던 화를 똑같이 내고 발로 아내를 찼어요. 한 시간 전에 하나님을 찬양했는데, 똑같은 입으로 분노하고 아내를 발로 차는 나를 보고 경악했어요. 이건 뭐지? 변하지 않는 나에 대한 절망이 밀려왔어요.

그것만이 아니었어요. 저는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을 만난 후 학교에서 기독교사로 서 있었죠. 클럽활동 담당으로 기독교반을 맡고 학교에서 수요예배를 드렸는데 4명에서 시작한 것이 나중에는 1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어요. 담배를 끊은 값으로 간식을 사서 아이들에게 줄 수 있었고, 그 클럽 활동으로 가을 축제 때 학교 내에서 이미 중단되었던 찬양제를 다시 여는 기회도 주셨어요. 소문을 듣고 주변 교회에서 악기 세트를 가져오고, 수화와 찬양을 가르쳐주시는 분들이 자원해서 오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입시 구조상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위해서 소수만을 붙잡고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절망해보니까 절망하고 낙담해 있는 아이들이 눈에 보였어요. 수업시간에 포기하고 그냥 엎드려있는 아이들 등에 손을 얹고 속으로 기도해줬어요. 축제 때는 제일 말썽꾸러기였던 그 녀석이 도와주더군요. 주님이 하고 계셨죠. 그렇게 예수의 사랑으로 하게 하셨지만, 학교에서도 제 한계가 드러났어요.”

– 어떤 일이 있으셨나요?

“아이들은 때리지 않는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면 쉽게 봐요. 그걸 이용하기도 하죠. 학기 시작하고 6개월 동안 화를 안 내다가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 싶어 주번이었던 두 아이를 혼냈는데, 한 아이의 집에서 아이가 병원에 있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사실 혼을 내려던 녀석은 그동안 말 안 듣고 도망 다니던 녀석이었는데, 다른 녀석이 다친 거예요. 그 전화를 받으면서 깊은 절망에 빠졌어요. 나는 분노로 내 딸을 잃어버린 자격 없는 아빠고, 이 분노로 애매한 착한 녀석 골절하게 한 자격 없는 선생이었어요.

학교 앞 교회에 들어가 엎드려서 주님께 물었어요. 그리고 사표를 내야겠다 생각했죠. 그때 주님이 ‘네가 아이들 앞에서 나를 인정할 수 있겠냐?’하는 마음을 주셨어요. 무슨 말씀인지 알았어요. 수업 전에 아이들 앞에서 기도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죠. 제가 평소에 가장 혐오하던 일이었으니까요. 미션스쿨도 아니고 공립학교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너무 편향적인 것 아니냐고 생각해 왔었는데, 주님은 그렇게 도전하셨어요. 그다음 학기 초에 아이들에게 동의를 구했어요. “나는 너희를 분노로 내지는 정죄하고 혼내면서 교육하길 원치 않는다. 축복하고 싶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 있으면 손 들어라.” 학기 초니까 아무도 손을 안 들었어요. “그럼 내가 기도로 시작할게.”하고, 들어가는 모든 반마다 묻고 수업을 시작했어요. 10년 동안 그렇게 수업하게 하셨어요.”

아이들을 축복하며

– 반발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학부형 전화가 있었죠. 불교 신자라는 분도 항의하시고, 교장실에도 불려가고요. 무리하게 억지로 하면 도리어 예수님께 누가 될 수 있어서 잠시 멈출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학생들이 요청해왔어요. 학생들은 곤고했어요. 사랑하는 말, 축복하는 말을 원했어요. 그래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일하셔도 나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어요. 반에서 패싸움이 일어나고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면서 학부모까지 가세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조금이라도 더 힘 있는 아이가 자기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만들어 갔어요. 대학입시에 치명적이니까요.

그런데 나는 그 아이에게 유리한 그 어떤 것도 해주고 싶지 않았어요. 생활기록부에 단 한 줄도 써주고 싶지 않은 나를 보면서,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자라는 절망에 또 부딪혔어요. 이미 복음 앞에 섰는데, 십자가 통과한 거 맞아? 나 죽은 거 맞아? 겉으로는 복음으로 달려오고 있었지만, 엎어지고 자빠지는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복음을 생명으로 살아낼 수 없었던 그 곤고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어요.”

– 복음 앞에 서신 과정이 궁금한데요.

“십자가의 총체적 복음이 선포되고, 그 앞에 죄 된 나의 존재를 하나하나 비춰보는 신앙훈련과정에 참여했어요. 지금은 선교사가 된 셋째 딸이 저보다 먼저 복음 앞에 서고 제게도 권했어요. 그런데 왠지 겁이 났어요. 거기 가면 정말 죽겠구나 하는 불안함이랄까. 게다가 일주일간의 훈련기간 중 마지막 날이 학교 개학일이었어요. 학생들도 다 오는데 담임이 안 오는 건 있을 수 없죠. 못 가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섬김이로 참여하는 아내와 딸을 차로 훈련장소에 데려다주러 갔는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어요. 저 대열에서 빠지면 마치 구원을 못 받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 자리에서 교장선생님께 전화로 통보하고 5박6일의 훈련에 참여했어요. 돌아와서 시말서 쓰고,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다 공표하고 생활한 거죠.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그때도 십자가의 죽음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했어요.”

– 거듭되는 절망 속에서도 복음의 삶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궁금하네요.

“말씀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봤기 때문이죠. 복음 앞에 선 후 중보기도학교에 다녔는데, 요르단으로 아웃리치를 갔어요. 그때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성취하실 뿐 아니라 그날 주시는 말씀들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생생하게 경험했어요. ‘어? 하나님이 살아계시네?’ 놀라웠어요. 그런데 아웃리치에서 돌아오고 시간이 좀 흐르면 말씀이 안 보이고 다시 곤고해졌어요. 그러면 말씀을 이루셨던 그 하나님이 갈급해져서 또 훈련학교를 찾아갔어요. 그러다 한 집회에서 복음의 사관이 되기 위해 아예 6개월 합숙훈련을 받는 지체들이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됐어요. 군인처럼 눈동자 하나 움직이지 않고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죽어도 저기는 가면 안 되겠다.’ 말했어요.

그런데 주님은 그런 사람을 꼭 보내시더군요(웃음). 2015년 2월, 정년을 4년 앞두고 명예퇴임을 하고 그곳에 갔어요. 가정에서는 둘째 딸과 단절된 상태였어요. 결국 ‘분노하는 나’ 때문에 가게 된 거죠. 그곳에서 복음의 영광을 보고 그리스도만 남는 삶을 얻었다고 결론 냈지만, 수료 후 다음 발걸음이 늦춰지고 믿음의 삶을 살지 못하니 또다시 곤고해졌어요. 장작불 하나 꺼내놓으면 금세 사그라지는 것처럼 복음은 혼자서는 살아지지 않았어요.”

주님이 주인 된 삶으로

– 참으로 긴 절망의 시간이네요.

“네. 다시 선교관학교 훈련생으로 갔어요. 이번에는 ‘내가 동의하지 못하는 게 뭐지? 실제가 안 된 게 뭐지?’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마음 속에서 실제 동의가 일어나게 하셨어요. 그리고 지금 헌신한 헤브론선교대학 공고를 봤을 때, 이 대학의 비전과 가치가 마음에 받아졌어요. 거기에는 빠지지 않고 동참하고 싶었어요. 나를 복음에 드리지 않으면 살아낼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으니까요. 얼마나 완악한 자였는지, 바로바로 순종이 안 되고 내가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재보던 삶은 내가 주인 된 삶이었지요.”

– 대학에서 영어로 섬기시나요?

“아뇨. 제게 허락된 자리는 영어와는 상관없는 자리였어요. 조금 당황했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을 주셨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영어를 부인하고, 운동장이라도 쓸 수 있겠냐는 주님의 말씀에 아멘이었어요. 나는 평생 영어교사만 해서 그 외에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그나마 운전면허증 하나만 있는데 그걸로 섬기게 하세요. 운동장을 쓰는 것이든, 운전 섬김이든 무슨 상관이에요? 미래의 선교사들이 왔다 갔다 하고, 그것으로 주님이 다시 오는 것인데요. 어떤 것이라도 그냥 감사하고 좋아요.”

“하나님의 꿈과 소망을 보는 것이 은혜입니다”

– 지금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시나요?

“아멘이죠. 매일 아침 묵상에서, 말씀기도에서, 삶 속에서 하나님을 봐요. 그리고 지식의 동의를 넘어 ‘이 세대의 세계 복음화’를 소망하게 해주셨어요. 나만 보고 달려오던 내 자아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꿈, 소망을 보게 하시는 것이 얼마나 은혜인지 몰라요. 나를 위한 기도조차 못했고, 백 년도 못 살고 죽어가는 나 같은 자에게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꿈을 알게 하신 것이 너무 감사해요.”

– 분노하는 나에 대해서는 어떤 결론을 주셨나요?

“한 선교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난로가 뜨거운 줄 알면 손을 안 댄다.’ 그 말에 동의가 됐어요. 하지만 저는 잘하다가도 한순간 놓치게 되고, 때때로 넘어져요. 그러나 이제 난로에 손을 대지는 않아요. 분노로 딸을 잃은 것보다 더 큰 대가가 어디 있겠어요. 그리고 그런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셨는데요. 사울이 창을 던질 때 다윗은 그 창을 피하고 다시 수금을 켰어요. 공격하지도 방어하지도 않는 그 다윗이 예수님이었어요.

나는 창이 날아오면 그 창을 바로 던질 뿐 아니라, 내가 갖고 있던 창까지 던지는 자였어요. 그렇지 않으면 시원하지 않았어요. 현실은 똑같죠. 화를 내야 하는 충분한 이유는 항상 있어요. 그러나 그 뜨거운 난로를 다시 또 짚는 일은 할 수 없어요. 이전과 똑같은 상황이 또 오더라도 죽은 자로 있을 거예요. 다윗과 같이 창이 날아오면 피하고,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이 길을 갈 거예요. 내가 더한 자였으니까요.”

– 마지막으로 기도제목을 나눠 주세요.

“예수님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신부로 살고 싶어요. 이 세대에 세계복음화가 이루어졌으면 좋겠고요. 지금도 둘째 딸과 대화가 단절되어 있는데, 관계가 회복되고 같이 말씀기도 하고 예배드렸으면 좋겠어요.”  [GNPNEWS]

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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