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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농촌으로, 상류 카스트에서 불가촉천민에게로

▶ 비가 내린 후 도로의 물을 제거하는 불가촉천민계급의 청소부들 모습(출처: 월드와치모니터).
파키스탄 선교 역사 (3)

무슬림이 95% 이상을 차지하는 파키스탄에서 기독교 역사는 그리 폭넓게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파키스탄의 기독교 인구는 3% 수준. 그것도 19세기 후반 불가촉천민 계급인 ‘추흐라’를 통해 집단개종운동이 시작되면서 이 정도에 이르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와 그 이후의 상황을 파키스탄에서 30년간 사역한 영국의 프리다 캐리 선교사(Church Mission Society 소속)가 정리한 자료를 번역, 소개한다. <편집자>

불가촉천민 디트를 통해 시알코트와 그 근방에 있는 대부분의 추흐라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한 1915년 즈음, 구지란왈라와 구르다스푸르 인근 시골 마을에 있는 또 다른 추흐라들 안에도 회심이 일어났다. 시알코트, 구지란왈라, 구르다스푸르 세 곳을 중심으로 추흐라 계급의 복음운동이 가속화되면서 수천 개의 교회들이 이 운동에 동참했다. 선교사들이 이미 회심한 기독교인들을 훈련하고 교육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는 동안 파키스탄의 첫 번째이자 엄청난 복음주의 운동은 이렇게 추흐라 내부에서 일어난 것이다.

1877년 미국합동장로교회(American United Presbyterian, 이하 UP)선교회는 그동안 그들이 집중해 오던 도시 중심의 선교 전략에서 벗어나 시골 지역을 대상으로 사역하기로 결심하고 선교회의 관심을 추흐라 복음 전파에 쏟았다. 이 괄목할만한 성장이 있던 기간 동안, 1881년에서 1891년 사이 UP선교회에 보고된 세례 교인의 숫자는 660명에서 1만165명으로 늘었다.

추흐라에 대한 경계와 반발

반면 다른 선교회는 이 추흐라 복음운동에 참여하는 것에 주저했다. 개종자들이 종교 협회를 통해 직업이나 토지와 같은 물질적인 이익을 찾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경계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주 사역 대상으로 삼았던 높은 카스트들이 복음에 반응하려 할 때 불가촉천민 추흐라 사람들과 교제하고 세례까지 주는 선교사들의 행동이 방해요소가 될까 봐 꺼려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추흐라 계층의 개종이 다른 힌두나 무슬림 카스트의 개종 비율에 특별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1880년대 프레데릭 스톡과 마가렛 스톡은 추흐라들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제안했는데, 이는 결국 같은 지역의 불가촉천민이었던 메그 사이에서 일어났던 작은 복음 운동이 조기에 끝나게 된 원인이 되었다. 메그 사람들은 베를 짜는 불가촉천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로 청소부나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연명하던 추흐라보다 자신들이 낫다고 여겼다. 스톡은 이렇게 썼다.

“많은 추흐라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온다는 소식은 여전히 회심 단계에서 머뭇거리고 있던 메그 사람들에게 엄청난 반발을 가져왔다.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더 낮은 계급의 사람들과 반드시 가까이 어울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것은 복음의 확산에 크나큰 걸림돌이 되었다.”

▶ 시편을 펀자브어로 의역한 Imam-ud-Din Shabaz의 모습
▶ 시편을 펀자브어로 의역한 Imam-ud-Din Shabaz의 모습

선교회의 방향을 바꾼 복음운동

그러나 1880년대 중반, 추흐라 복음운동은 엄청난 수의 회심자로 인해 같은 지역에 있던 선교회에 큰 도전을 주었다. 선교단체들은 문맹인 회심자들을 제자화하기 위한 인력과 전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UP선교회는 디트와 같은 추흐라 계급의 농촌 복음전도자들에게 기본적인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도록 위탁했다. 대부분의 복음 전도자들은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회심자들에게 교리 문답서, 주기도문, 십계명, 그리고 다른 여러 성경 구절 등을 가르칠 수 있었다.

이 복음 운동은 UP선교회의 교육 사업 정책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기존의 선교회 교육은 힌두와 무슬림 카스트 계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일부 기독교 교리와 함께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도시학교 위주의 교육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복음 전도를 목적으로 미래의 기독교 리더를 개발하고 훈련하기 위한 학교를 열고 농촌 지역 추흐라 회심자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기독교 교리와 일반 교육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대다수가 문맹인 추흐라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는 우르드어나 교육받은 도시 사람들이 쓰는 권위 있는 언어보다 펀자브어를 사용하는 것이 믿음을 갖게 하기에 더욱 효과적이었다. 이맘 유딘 샤바즈(Imam-ud-Din Shabaz, 1845~1921)는 시편을 펀자브어로 의역해 펀자브 지방에서 불리던 토착 음악에 맞추어 부르게 했다. 그의 펀자브어 시편집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파키스탄 기독교 찬양의 중심에 있다. <계속> [GN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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