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자로 루터와 츠빙글리, 칼빈의 역할은 지대하다. 가톨릭 교회 시대부터 내려온 왜곡된 신학을 바로잡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비장하고 철저했다. 그러나 이같은 노력은 가톨릭에서 내려온 전통에 대한 비판과 재해석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루터의 경우, 토지개혁을 요구한 농민들의 집단행동을 처음에는 지지했다. 그러나 이 요구가 폭동으로 발전, 농민들이 교회 재산을 몰수하고 영주와 귀족들을 무참하게 살육하고 화형시켰다.
그러자 루터는 다시 입장을 바꿔, 강도질하는 농민 폭도는 진압돼야 한다는 논지의 글을 발표, 영주들 편에 선다. 이같이 상반된 견해를 제시한 루터에 의해 양측의 살육이 정당화되도록 하는 오점을 남겼다.
‘기독교 강요’란 책자 등으로 오늘날 개혁교회의 신학적 기초를 다진 존 칼빈은 루터에 이어 종교개혁의 중요한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다. 또 세속화되고 문란한 도시였던 제네바시에서 종교개혁을 이끌며 제네바의 노동윤리, 공공교육, 시민경제 개선 등 윤리적 개혁과 삶의 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재세례파 펠릭스 만츠를 강물에 수장해 죽이고,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한 세르베투스를 이단 혐의로 가톨릭에서 사용하던 화형으로 죽이는 등 교리문제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루터는 또 성찬시 신부의 기도로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을 부정하면서도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의 믿음으로 예수님의 몸으로 변한다는 동체설을 주장했다. 이같은 관점을 고수한 루터는 떡과 포도주를 상징적으로 봐야한다는 츠빙글리와 논쟁 끝에 결별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처럼 종교개혁의 빛나는 영광 뒤에 어두운 그림자 또한 드리워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루터에 의해 시작되어 츠빙글리와 칼빈 등에 의해 정립된 종교개혁의 과정들은 중세 암흑을 뚫고 예수 그리스도, 그 복음의 빛이 드러난 역사로 남게 됐다. [GN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