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만나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어느 곳이든 순종하겠노라며 주님의 부르심을 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열매 없는 죽은 나무 같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같았다. 이런 내게 요한계시록 22장 말씀을 주시며 만국을 치료하는 생명나무가 되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응답하신 곳이 한 기독교 대안학교의 교육선교사였다. 그곳에서 일하는 자가 아니라 그저 생명으로 사는 자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부르심을 받고 이곳에 온지 1년이 지났다. 내게 맡겨진 것은 미술과목과 미디어 영역. 하지만 나에겐 이것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나의 최종학력은 고졸이다. 디자인 작업에 필수로 사용되는 포토샵 프로그램은 독학으로 배웠다. 그것도 온통 영어로 된 프로그램 용어들을 이미지로 인식하여 외워서 사용한 정도였다.
또한 내 미술 실력은 아이들 수준이다. 그마저도 그림그리기를 싫어하고 어려워했다. 이런 내가 선교사를 양성하는 학교에 교육선교사라니. 생각해보면 아직도 이해가 잘 되지 않고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확실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생명으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내가 이곳에 있을만한 자격을 찾는 치열한 싸움이 계속 되었다. 어느덧 마음 한구석에 자기연민과 비교의식, 지독한 자기사랑이 자리 잡으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발목을 붙잡았다. 그때마다 붙드는 것이 있다. 주님이 나를 생명나무로 부르셨다는 약속이었다.
그리고 이내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오지? 그것은 천지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부터다. 시편 121편의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께로 달려가면 전능자의 그늘이 나를 덮어 십자가로 승리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다.
미술시간에 주님과 함께 집을 만들며
올해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미술시간에 ‘주님과 함께하는 집’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설계를 하고 조감도를 그리고 모형을 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내 마음과 같이 잘 따라 오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마음을 같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미술을 통해 나와 마음을 같이하듯 주님과 교제하는 자리로 나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주님은 아이들과의 짧은 대화 속에서 해답을 주신다. 주님은 화려하고 거대한 집을 원하지 않으셨다. 우리의 마음 안에 주님이 거할 성소가 세워지기 원하셨다. 주님이 참 주인이 되시는 집, 그것이다.
아이들이 설계한 조감도를 가져왔다. 저마다 크고 넓고 멋진 집을 그렸다. 개중에는 자신의 독립된 공간을 그린 아이도 있었다. 그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의 합당하지 않은 것들을 제하실 주님이 기대되었다. 우리가 주인이 된 집이 아니라 주님이 주인이 되시는 집으로 회복하실 것과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집으로 회복될 것을 기대하게 됐다.
이 학교는 복음의 내용에 맞춰 모든 교과목 수업이 진행된다. 지금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에 관한 진리를 배우고 있다. 복음 앞에서는 우리의 아이들이 매우 치열하다. 우리의 부패하고 썩은 마음을 직면하는 중이다. 아무리 겉을 화려하게 꾸며도 우리의 존재가 회칠한 무덤과 같다는 것을 아이들이 인정하는 뼈아픈 시간을 거쳐 가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바라보고 있는 것이 있다. 부패한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리시고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성전을 회복시키실 부흥이 보인다. 주님과 함께 거하는 집이 완성되어갈 쯤 아이들을 예수 그리스도만 남게 된 주님의 성소로 회복시키실 것에 대한 꿈이 있다.
지금 아이들과 모든 교사들이 이런 부흥을 소망하며 기도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과 열방 가운데 그리스도가 진정한 왕이시요, 주인이신 주님의 성전을 세워주시기를 소망한다. 선교완성, 우리 세대에 그날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마라나타! [GNPNEWS]
권숙진 교육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