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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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사내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이름은 스티브 세인트. 50년 전 아마존 정글 와다니 족에게 복음을 전하려다 순교한 다 섯 선교사 중 한 명의 아들이다. 1995년에는 가족을 데리고 아 마존 정글에 들어가 살고 있는 현장 선교사로 왕성하게 활동하 고 있다. 그의 감동적인 삶과 함께 이 영화는 다시 한 번 큰 주 목을 받았다.   1950년 에콰도르의 아마존 정글지역의 와다니 족에게 선교사 로 헌신한 젊고 유망한 선교사들 다섯 명의 실화를 다룬 이 영 화는 와다니 족의 민카야니, 그에게 죽임을 당한 네이트 세인트, 그리고 그의 아들 스티브 세인트 이 세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와다니 족은 부족 간의 전쟁으로 언제 부족이 없어질지 모를 위기에 처한 잔인한 부족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네이트 세인 트(채드 앨런 扮)는 본부의 명령을 어기고 계속해서 그들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마침내 그들과 접촉한 네이트와 동료 선교사 들은 부족 사람들과 만나게 되지만 그들을 향한 적개심과 의사 소통의 부족으로 인해 5명 모두 그들의 창에 찔려 죽고 만다. 그 때, 죽어가던 네이트 세인트 선교사 입에서 나온 말은 “부아 비 아 우눔부아” 와다니 말로 ‘나는 당신의 친구입니다’였다(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많은 언론의 비난을 받았고 그들의 비난을 뒤 로 한 채 죽은 선교사의 부인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와다니 족에게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살며 못다한 선교활동을 하게 된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스티브는 고모인 레이첼의 죽음으로 다시 와다니 족을 방문하고 거기서 아버지를 죽인 민카야니와 조우한다. 민카야니는 스티브를 자신이 선교사들을 죽인 곳으 로 이끌고 그에게 자신이 그의 아버지를 죽였노라고 고백한다. 스티브는 절규하고 민카야니는 자신을 찌르라고 말한다. 하지 만 스티브는 누구도 아버지의 생명을 빼앗지 않았고 그분이 내 어준 것이라며 민카야니를 용서한다.

지난 호에 소개된 불의 전차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보여 준 영화였다면 창의 끝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보여주는 영화로 볼 수 있다. 영화 제목 ‘창의 끝(End of the spear)’은 추장 민 카야니의 ’창의 끝‘에 아버지 네이트 세인트가 죽임을 당하지만 그의 죽음과 그 아들 스티브 세인트의 용서로 부족의 ’창의 끝 (전쟁의 종결 – 제목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 듯하다)‘을 가 져왔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찔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심 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은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분의 백성들은 하나같이 그분을 닮았는지. 어쩌면 그렇게도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한결 같은지. 한 생명이 죽은 그 자리에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나는 이 원리로 하나님 나라는 한 번도 이 땅에서 사라진 적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이어질 것이 다.

영화 개봉 당시 많은 평론가들은 혹평을 퍼부었다. ‘이 반복적 이고 멍청한 구조를 가진 영화는 아무런 매력도 제공하지 못한 다.’ ‘기분 좋은 인류학적 영화처럼 가장한 기독교내 비밀집단의 헛소리처럼 들린다.’ 영화 자체를 비난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 면 주인공들의 무모한 삶을 비판한 것일 수도 있다. 놀라운 사 실은 이런 비난이 실제 5명의 선교사들이 죽임을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무모한 죽음. 이것이 언론의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들의 죽음이 얼마나 고귀하 며 영광스러운 죽음이었는지 말이다. 5명의 선교사 중 한 명인 짐 엘리엇의 말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는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 영원한 것을 보고 믿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 그리고 감격. 그래서 이 영화는 그 날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힘이 되고 감동이 다.   지금도 열방의 어느 곳에서 영원한 것을 위해 고난 받고 죽어 가는 많은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피를 받으신 주님께서 더 바쁘게 일하고 계신다.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누가 진정 어 리석은 자들이었는지. 누가 진정 바보였는지. 오늘도 예수 그리 스도와 그분을 닮은 ‘천국의 바보’인 그들처럼 나 역시 그런 ‘바 보’가 되길 소망해본다.

박요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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