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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사도요한(3): 겸손했던 사랑의 사도

▲ 드라마 'chosen'의 사도 요한. watch.thechosen.tv 캡처

우리는 모두 욕망과 의욕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타락한 육체의 욕심으로 인한 욕망과,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그분의 영광을 바라는 욕망의 차이를 잘 구분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은 삶에서 우리의 욕망이 그리스도의 계획에 따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것은 사도 요한이 주님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사사 받으면서 배웠던 것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의 요한은 자신을 위한 야심 찬 계획들을 가지고 있었다. 영향력을 가지기를 열망하거나 성공을 바라는 것 자체가 그릇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특히 겸손하지 않으면서 의욕만 넘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제대로 맞추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균형’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덕목은 악행으로 바뀌어 버린다. 겸손이 없는 야망은 이기주의이며, 심지어 과대망상증이기도 하다.

요한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역하고 있던 한 사람을 질책한 사건이 기록된 말씀의 다음 장인 마가복음 10장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접근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는 청을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예수님은 겸손의 중요성을 다시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10장 31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겸손에 대해 그들에게 거듭 가르치시면서 똑같은 교훈을 주신 것이다(막 9:35참조).

주님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마가는 야고보와 요한이 주요 직책을 가진 보좌를 달라는 악명 높은 청을 가지고 예수님께 찾아왔다고 기록한다(막 10:35-37). 이 사건에 대한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사실은 그들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중재를 부탁하였다(마 20:20-21). 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이러한 특혜를 매우 은밀하게 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도들은 이후에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막 10:41).

예수님이 겸손에 대해 그토록 많은 훈계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러한 청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그 형제들은 대단히 뻔뻔스러운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요청은 그들이 얼마나 참된 겸손이 없는 사람들이었는가를 드러낸다.

다시 말하지만, 야망을 가지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이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 다음에 앉겠다는 욕구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누가 그런 자리를 욕심내지 않겠는가? 다른 제자들도 그 자리를 분명히 바라고 있었으며, 바로 그런 까닭에 그들이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 욕심 자체 때문에 그들을 책망하셨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잘못은 그런 자리에 앉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보다는 그 자리 자체를 손에 넣겠다고 바랐던 데 있다. 그들의 마음에는 야심을 조절할 겸손이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나라에서의 최고 지위는 이 땅에서 가장 겸손한 성도들에게 예약되어 있음을 거듭해서 밝히셨다. 그의 말씀을 보라.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할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못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2-45)

크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겸손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 자신이 참된 겸손의 완전한 표본이셨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나라는 정치나 지위, 권력이나 지배에 의해서가 아니라 겸손한 섬김에 의해서 전진해 나갔다. 이것이 제자들 가운데 어린아이들을 세우시고 참된 신자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 전체의 요점이었다(막 10:13-16). 또 다른 곳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8:14; 눅 14:8-11).

그리스도는 거듭해서 이 진리를 강조하셨다. 만약 여러분이 이 나라에서 큰 자가 되려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과 삼 년 동안이나 지낸 후에도 이 진리가 제자들의 의식을 꿰뚫지 못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안타까운 일이다. 예수님의 지상 공생애 사역의 마지막 밤에도 그들 중에는 누구도 수건과 대야를 집어들고서 겸손히 종의 일을 감당하는 이가 없었다(요 13:1-7).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그 일을 하신 것이다.

요한은 마침내 야망과 겸손 사이의 균형을 배웠다. 실제로 겸손은 그의 글에서 전반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커다란 덕목들 가운데 하나이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내내 그는 자신의 이름을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요한 복음에서 언급된 “요한”이라는 이름은 침례 요한이다). 사도 요한은 자신과 관련해서 언급하기를 거부했고, 대신에 그는 예수님과 연관하여 자신에 대해 말했다. 그는 결코 자신을 영웅으로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자신에게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모든 경우에 자신의 이름을 쓰는 대신에 “예수님이 사랑했던 제자”(요 13:20; 20:2; 21:7, 20)라고 부르며 예수님께 영광을 돌렸다. 실제로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에 경이로움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요한복음 13장 1-2절의 기록과 같이 예수님은 모든 제자들을 끝가지 완벽하게 사랑하셨다. 그러나 요한은 이 사실을 아주 특별하게 느끼고 있었고, 그는 이러한 사랑으로 인해 겸손하게 되었다.

실제로 요한의 복음서만이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일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배신당하시던 그날 밤에 보여주신 예수님의 겸손은 요한에게 지속적인 감동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또한 요한의 겸손은 그의 모든 편지에서 독자들에 대한 부드러운 호소 가운데 스며 나온다. 그는 독자들을 “자녀들”,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며, 자신을 한 사람의 형제이자 같은 하나님의 자녀에 포함시키고 있다(요일 3:2 참조). 그의 겸손을 보여주는 표현에는 부드러움과 동정심이 자리잡고 있다. 신약성경에 대한 요한의 마지막 기여는 요한계시록이다. 그 책에서 자신을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묘사한다(계 1:9). 비록 그가 교회에 마지막으로 남은 사도이자 어른이었지만, 우리는 그가 결코 어느 누구 위에도 군림하는 것을 볼 수 없다.

이와 같이 요한의 야망은 겸손 가운데서 조화를 이루었다. 요한은 비록 여전히 용기 있고 자신감이 넘치며 담대하고 열정적이지만, 동시에 부드럽고 원숙하다. [복음기도신문]

원문: http://www.gty.org/blog/B150701/john-the-apostle-of-godly-humility

존 맥아더(John MacArthur)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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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GTK 칼럼] 사도 요한(2) : 타협하지 않는 사랑의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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