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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복음의 핵심 요소(3):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전도도 마찬가지다

사진: Unsplash의 Carlos Andres Gomez

태초에 하나님이… (창 1:1)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님 스스로에 대한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하는 부분이다.

이는 하나님의 성격이나 특성에 관한 완벽한 담론이나 하나님의 무한한 속성에 대해 360도로 연구하는 것이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의 전제조건이라는 말이 아니다. 성령님이 조명하시는 마음으로도 하나님의 그 충만함을 헤아릴 수 없는데, 죄로 어두워진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는 걸 얼마나 예측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먼저 이 세상에 전반적으로 지배된 하나님에 대한 거짓된 생각과 우상 숭배적인 생각들을 불식시키지 않고서는 복음을 정확하게 제시할 수 없다. 오늘날 사람들은 분별없이 자신의 감상에 젖은 상태 혹은 영적인 기호대로만 하나님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런 대중적인 운동들은 중력의 법칙을 다시 쓰거나 중력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헛된 수고일 뿐이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며(사 57:15) 변치 않으시며(말 3:6) 우리가 우리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숭배하길 원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에서 하나님 자신을 스스로 진리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시고 정의하신다. 그는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외에 신이 없느니라”(사 45:5)라고 말씀하셨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 하나이신 진리의 하나님이 구별된 세 인격으로 영원히 존재하신다고 계시하고 있다.

삼위일체

삼위일체에 관한 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존 맥아더 목사는 성경 말씀은 이 주제에 대해 명확하고 타협 불가능한 모습을 보인다고 밝혔다.

비록 삼위일체의 충만함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자신 스스로를 성경 말씀에서 어떻게 밝히셨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분명하다. 세 인격으로 영원히 존재하시는 한 하나님이시다.

성경 말씀은 이 세 인격이 함께 하나이시며 오직 하나인 여호와이심을(신 6:4) 명확히 하고 있다. 요한복음 10장 30절과 33절은 성부와 성자가 하나이심을 설명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은 성부와 성령이 하나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로마서 8장 9절은 성부와 성령이 하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요한복음 14장 16, 18, 23절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임을 입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성경은 하나님은 (세 분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시지만 그 한 하나님은 세 인격이심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1]

하나님이 신실하게 선포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삼위일체로 소개되어야 한다. 게다가 삼위일체는 복음 전도 영역에서 아주 크고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왜냐하면 각 세 인격이 죄인 구원에 있어 각기 다른 역할을 하시기 때문이다. 성부는 택하시고 (엡 1:3-6) 성자는 구속하시고(엡 1:7-12) 그리고 성령은 책망하시고(요 16:8) 새롭게 하시고(딛 3:5) 믿는 자들 안에 거하시는 분(엡 1:13-14)이시다.

창조주 그리고 심판자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의 창조주(창 1장)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에 대한 주권을 정당하게 주장하시고(시 50:10-12) 우리와 그의 피조물로부터 예배받으시길 원한다(출 20:2-5; 마 4:10).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반항적으로 창조주 예배를 거부해왔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열린 교제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적개심으로 인해 막혀버렸다(시 5:5). 하나님의 죄인들을 향한 타당한 분노는 현대 감성에는 불쾌한 주제일지 몰라도 우리 세대의 영적인 안주함을 깨우는데 꼭 필요한 진리이다.

하나님의 성격이나 특성이 무궁무진한 주제이긴 하지만 전도자는 죄인들의 가슴에 하나님 지상주의,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대한 것들을 심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도자는 반드시 왜 죄인들이 하나님의 재판장에 있는 그들의 미래의 모습을 생각하며 떨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히 9:27). 존 맥아더 목사는 현 전도의 트렌드가 이와 반대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 애통해하고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시 111:10) 현대 복음 전도의 상당수는 죄인들의 마음에 다른 것들은 다 불러일으키려 하면서도 하나님의 경외하는 것만 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는 문장은 오늘날 많이 쓰이는 전형적인 복음 전도의 도입부이다. 이런 복음 전도는 경외 받으셔야만 하는 하나님의 이미지로부터 많이 떨어져 있다. 이런 생각에 대한 해결책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성경적인 진리이다.[2]

거룩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속성에 관련한 말씀 중 가장 강력한 최상의 속성은 “거룩, 거룩, 거룩”(사 6:3)이라고 말한다. 폴 워셔(Paul Washer)는 하나님의 거룩함은 “많은 속성 중 단지 한 속성일 뿐이 아니라 정의되고 이해되는 다른 모든 속성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라고 지목했다.[3] 우리가 복음 전도적인 측면에서 강조하는 하나님의 거룩함은 사랑, 자비, 은혜와 같은 그의 다른 속성들을 없앤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다른 속성들은 그 심오한 뜻을 하나님의 거룩함이라는 맥락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거룩”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카도쉬(qadosh)인데 이는 하나님의 색다름을 나타낸다. 창조주로서 그는 자기 피조물을 초월하며 그가 만든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구별된다. 크기나 화려함과 상관없이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완벽함에 아주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없다.

이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가 거룩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죄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모든 것에 반대되기 때문이다. 거룩한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의 병렬상태보다 우리의 필요를 입증하는 더 큰 이분법은 없다. 존 맥아더 목사는 이 깊은 격차의 심각한 결과에 대해 언급했다:

하나님은 완전하게 거룩하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은 완벽한 거룩함을 요구한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1:44-45)… 복음조차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요구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는 죄를 싫어하신다.[4]

하나님을 그의 자리에 모시는 것

복음이라는 측면에서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면 우리는 보통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강조한다. 사랑과 자비가 복음을 엮어내는데 아주 필수적인 속성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의 삼위일체 특성과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하심 그리고 그의 거룩함을 등한시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그리하는 것은 인본주의 복음을 선포하는 결과를 주로 가져온다. 인본주의 복음이란 하나님을 그날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등장하는 영웅보다 조금 나은 존재 정도로만 묘사하는 것이다.

진실은 바로 죄인들은 하나님의 십자선(망원경 따위의 초점에 새겨진)이 아닌, 십자선(시선을 모으는 데 유용하다)에 서 있다는 것이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들이 위반해온 것은 하나님의 율법이다.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시다. 왜냐하면 죄인들은 어떤 이로부터 구원받아야 하는데 “그는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는”(출 34:7) 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복음의 중심에 놓을 때 우리는 인간의 죄의 범법행위와 죄책감의 깊이에 관한 명확한 관점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다음 시간에 다룰 부분이다. [복음기도신문]


[1] John MacArthur, The MacArthur New Testament Commentary: 1–3 John (Chicago: Moody Press, 2007) 162.

[2] John MacArthur, The John MacArthur Pastor’s Library: Evangelism (Nashville, TN: Thomas Nelson, 2011) 153–54.

[3] Paul Washer, The Gospel’s Power and Message (Grand Rapids, MI: Reformation Heritage Books, 2012) 86.

[4] Evangelism, 154.

캐머런 뷰텔(Cameron Buettel)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원문: https://www.gty.org/library/blog/B180115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GTK 칼럼] 복음의 핵심 요소들(2): 지나치게 단순화된 복음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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