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참 순진무구했습니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깊은 상처를 받는 방식에 대해서요. 하지만 제가 제 딸 호프를 낳았을 때 그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호프가 태어났을 때 그녀의 발이 내반족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고 그녀를 출산했을 때 산부인과 의사가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발에 깁스를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날 밤 소아과 의사가 와서 호프에게 정상이 아닌 몇 가지 작은 목록을 작성해주었습니다.
그녀는 머리의 숫구멍이 정말 크고, 턱이 평평하며, 목에는 여분의 피부가 있고, 귀에는 작은 점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매우 무기력했고 잘 움직이지 않았으며 체온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의사의 설명은 이런 작은 문제들이 많은 경우 큰 문제를 야기한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밴더빌트 병원의 유전학자가 와서 그녀를 검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유전학자가 왔습니다. 그날 밤 그가 병실에 와서 우리에게 말하기를 호프에게 희귀한 대사 장애가 의심된다고 했습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젤웨거 증후군”이라는 거였죠.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병명이었습니다. 그 유전학자도 들어보지 못했을 겁니다. 이 말은 호프에게 작은 세포내 효소가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우리 몸의 모든 세포에 페록시좀(과산화소체)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페록시좀은 세포를 청소하는 소체이며 이것은 우리 몸 안에 있는 장쇄지방산을 제거합니다.
그 유전학자가 말하기를 호프의 몸에 페록시좀이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세포를 청소하는 것이 없어서 그녀의 장기 전체에 장쇄지방산이 쌓이고 유해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녀의 모든 주요 장기가 이미 많은 손상을 입었다는 거였습니다. 특히 간과 신장과 뇌가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치료법도 없고 치료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 증후군이 있는 대부분의 어린이는 수명이 6개월 미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의학 교과서에서 복사한 종이 두 장을 우리에게 주며 모든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호프의 몸에서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요소들과 잘못될 모든 것들과 그녀의 죽음을 초래할 모든 것들을 나열해 주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 종이를 5일 동안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그냥 너무 과한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그날, 그날 밤 내 모든 삶이 변했습니다. 그때 깊은 슬픔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삶이 이제 막 시작되는 그 시점에 말입니다. 1주 후에 호프를 집으로 데려오려는데 호프는 보거나 들을 수 없었고 빨거나 삼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동안 병원에 머무르며 그녀에게 튜브로 먹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그녀를 집에 데려왔는데 현실적으로 그녀의 성장을 위해서 집으로 데려온 게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데려온 거였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게 된다는 것을 알지만 이 죽음은 너무나도 금방 오는 거였습니다. 내가 인식하기 시작한 현실은 곧 내가 죽은 호프의 모습을 발견하거나 아니면 그녀가 내 품에 안겨서 죽거나 하는 거였습니다. 그 현실에 겁이 났습니다. 그 당시를 되돌아보면 두려움에 대해 생각하고 실망에 대해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화가 나는지 물었지만 저는 화나지는 않았고 그냥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저는 저와 함께 나이 들어 가고 노년에도 친구가 되어 줄 딸을 매우 고대하고 있었기에 그 꿈을 빨리 버려야 했습니다. 호프는 199일을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 날들은 분명 슬픔의 날들이었지만 그녀의 삶에 아주 많은 기쁨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 귀여운 여동생이 있네. [비디오 속 아빠의 목소리] 우리 삶에 풍요로움이 있었습니다.
삶의 가치가 평가되는 근거는 개인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이나 성취할 수 있는 것이나 삶의 길이나 질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생명은 귀합니다. 그리고 호프의 삶은 가치 있고 의미 있고 풍요로웠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밤이 왔습니다. 우리가 한밤중에 깨어났을 때 그녀가 생을 마감한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계획을 세우고 일을 진행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저는 호프의 생애 6개월 동안 내 슬픔이 다른 사람들만큼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떻게든 애도를 먼저 시작했으니까요. 그녀가 죽을 것이라는 걸 알고 그녀의 생애 동안 그 중 일부를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꼭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어요.
누군가가 죽을 것이라는 것과 실제로 그 사람을 보낸 것은 다릅니다. 적막함과 공허함이 자리를 잡습니다. 이 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남편 데이비드와 제가 둘 다 틀림없이 그 증후군에 대한 열성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걸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호프를 갖게 된 후에는 아이를 더 가질지 말지에 대해 정말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거였죠.
그리고 우리는 임신을 더 하지 않도록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는데 그것이 성공적이지 않았고 호프가 죽은 지 1년 반 정도 후에 저는 임신을 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남편 사무실로 차를 몰고 가서 그의 사무실에 들어갔고 우리는 두 가지 매우 강한 상반된 감정을 가지고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편으로 조심스럽게 기뻐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수술을 분명히 하나님께서 뒤집으셨기 때문에 아마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토록 원했지만 기대하진 않았던 아이를 주시는 거라고요. 하지만 동시에 나는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게 이 일을 다시 하라고 요구하실지도 모른다고요. 그 당시 저는 제 인생에 태양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 것 같았었습니다. 저 혼자 시내로 차를 몰고 갈 때 더 이상 울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날은 저 멀리 회색 구름이 모이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름이 내 쪽으로 향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는 산전 검사를 해보았는데 이번에는 아들을 낳게 된다는 것과 그 아이도 치명적인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두 번째는 첫 번째와 같으면서 좀 달랐습니다. 죽을 아이를 낳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 임신기를 겪는 것은 매우 달랐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어색할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기를 떠나보낸 걸 알고 있는 사람들과 마주치곤 했는데 제가 임신한 걸 알고 매우 기뻐했죠. 저는 거기서 그들에게 이 사실을 말할지 말지를 정해야 했습니다. 종종 저는 이 아이도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아들 게이브는 2001년 7월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너무나 사랑스러웠습니다. 여러 면에서 호프를 임신하고 있던 기간은 정말 좋았습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몰랐고 그녀가 태어나기 전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녀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즉시 우리는 그녀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알아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게이브가 태어났을 때 우리는 곧바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주신 매일매일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183일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게이브와 호프는 내슈빌 외곽의 작은 무덤에 묻혔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몸을 땅에 묻었던 그 이틀을 생각하면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당시의 또 다른 생생한 기억은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찾아보고 만난 것입니다.
장례식에 가야 하나 참석해야 하나 머뭇거려본 적이 있나요? “아 군중이 이렇게 많으니 내가 거기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를 거야”라는 생각 때문에요? 저는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중요합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다른 사람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이제 깨달은 것 같아요. 호프와 게이브의 죽음을 경험하고 나서야 사람들의 사소한 친절이 극심한 슬픔 중에 큰 힘이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메모를 잘 쓸 줄 모르고 써본 적도 없었지만 이젠 예전보다 잘 씁니다. 이 시기에 간단한 메모의 힘을 경험했고 실제로 계속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카드가 완벽한지 문구 모양이 어떤 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건 메모장의 내용이었습니다. 누군가 시간을 내서 내 주소와 우표를 찾아 제게 편지를 써서 그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고 알려 준 게 중요했죠. 그들이 호프와 게이브를 사랑했고 그들이 우리와 함께 슬퍼했다는 그 내용이 중요했습니다.
올해로 호프는 18세가 되었을 겁니다. 올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생각을 하면 숨을 크게 들이쉬게 됩니다. 고맙게도 그들의 생일과 사망일과 그 외에 수많은 날에 짧은 이메일이나 메모를 보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은 어떤 식으로든 제게 알려줍니다. 그들이 말합니다. “기억합니다” 저는 이것이 정말 감사합니다. [복음기도신문]
Nancy Guthrie(낸시 거스리) | 테네시 프랭클린에 있는 그녀의 모교회인 Cornerstone Presbyterian Church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그녀는 미주 전역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여성을 위한 성경 신학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Saints and Scoundrels in the Story of Jesus’와 ‘God Does His Best Work With Empty’가 있다. 그는 현재 TGC의 성경 팟캐스트인 Help Me Teach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남편과 함께 자녀를 사별한 부부를 위한 수련회도 인도하고 있다. 슬픔나눔(GriedShare) 비디오 시리즈도 공동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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