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선교사의 삶! 열방을 누비는 선교사를 꿈꾸던 나의 기대와 달리 첫 아이를 낳고 육아와 공동체를 섬기는 자리에 있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주님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되게 하셨다. 우여곡절의 삶 가운데서 부딪히며 이 복음이 어떠한 복음인지 날마다 배워나갔다.
보기에는 여느 아줌마와 다르지 않게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자리에 있지만 정말 어느 자리에서든지 복음이 영화롭게 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셋째 아이를 출산한 후의 일이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받게 된 아이의 이름은 노아! 갓난 노아를 돌보며 공동체 안에서 주어진 일들을 감당했다. 그런데 어느 새 감사가 사라지고 짜증과 원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는 훈련원에서 사역하고 있었다. 그래서 훈련에 방해 되지 않도록 늘 아이들을 조심시켜야 했다. 장난꾸러기 7살 남자아이와 오빠를 따라 말썽부리는 4살 여자아이, 그리고 늘 엄마만 찾는 젖먹이 아이, 모두에게 내가 필요했다. 둘만 키울 때는 알 수 없었던 많은 것들, 하루 종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또 공동체를 돌아보며 나는 점점 지쳐갔다.
노아의 이름과 같은 안식을 누리지도 못한 채 은혜의 하나님은 온데간데 없었다.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한 건지, 하루에도 몇 번씩 뒷목을 잡을 일들이 생겼다.
하루는 나를 지켜보던 남편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충격을 받았다. “당신! 화병 나 죽던지 십자가에서 죽던지 결론이 나야겠어.”
화병인가 십자가인가
그런데 그 말이 비수가 되어 나의 심령에 파고들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속앓이를 하던 나는 정말 화병으로 죽기 직전이었다. 막막했다. 어둠의 긴 터널과 같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러나 절망의 순간, 주님은 그때부터 내 안에 일하기 시작하셨다.
왜 이렇게 여유가 없는지, 왜 상황에 부대껴 아이들을 다그치고 소리 지르고 있는지, 나의 존재를 보게 하셨다. 아이 셋을 키우는 것이 힘에 부쳐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리 아이들이 유별나서도 환경이나 상황이 어려워서도 아니었다. 바로 내 안에는 나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나였다. 아이들을 믿음으로 잘 키우고 싶은 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은 나, 선교사로 잘해야 하는 나, 살림을 맡은 선교사로 공동체를 잘 돌아봐야 하는 내가 문제였다. 주님은 자아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내 주셨다.
내가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추악하지만 나무 위에 달린 놋뱀이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은 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고, 주님은 다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셨다.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언제나 잠자리에 들기 전이면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 사랑해요.’ 머리 위로 그리는 하트도 빼놓지 않는다. 피식 웃음이 나지만 그 말이면 충분하다. 무언가 잘못해서 이제부터는 ‘안 그럴께요’,‘잘 할께요’라는 말보다 ‘사랑해요’가 내 안에 기쁨이 된다.
매일 사고치고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는 아이들과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열심과 최선으로 해보려는 헛된 시도 가운데서 정말 자격 없는 것 같아 울상 짓고 있는 나에게 주님이 물어 보신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하나님 아빠! 사랑해요.’ 하나님의 아들을 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아버지의 사랑, 이 복음이면 충분해요.
오늘도 나는 사랑하는 아이들과 행복한 행진을 한다. [GNPNEWS]
이지향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