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아가라」
프레데릭 에드윈 처치(Frederic Edwin Church)는 1857년 <나이아가라>를 그렸다. 폭포가 장엄하게 보이는 구도를 취하기 위해 그는 캐나다 국경을 넘어야 했다. <나이아가라>는 미국뿐 아니라 영국 미술계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으며, 이 그림의 구도는 나이아가라의 대표적인 모습을 넘어 미국의 상징이 되었다.
풍경화가 처치는 신실한 청교도 신자의 아들이었으며, 스스로도 신앙을 가졌던 인물로 전해진다. 19세기 미국의 청교도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처치의 가정 역시 신앙 때문에 유럽을 떠났다. 당시 청교도들이 바라본 미국의 자연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새로운 땅, 뉴 에덴이나 다름없었다.
메이플라워호가 1620년 신대륙에 처음 도착했을 때만해도, 출몰하는 인디언들과 안전을 보장치 못하는 자연은 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는 깊은 골짜기, 숲 속을 지나 먼 곳으로의 이동이 제한되었다.
하지만, 200여 년이 흐른 뒤 미국의 청교도들은 과거와 다른 모습을 띠었다. 그들은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달았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인도하신 새 땅에서 새로운 시작에 대해 믿음과 감사, 기쁨과 설렘이 가득하였다.
‘택하신 족속’이라는 믿음과 감사는 “In God We Trust(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미국화폐에 사용된 문구에도 나타나 있다. 처치 역시 그러한 신앙을 물려받은 화가였으며,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그림에서 표현하고자 신대륙을 누볐다.
1853년과 1857년에도 그는 작품을 위한 몇 개월 씩 걸리는 위험천만한 여행을 떠났고, 이 작품 <나이아가라> 역시 그 결과물이었다.
분명 지금처럼 편안한 여행길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편치 않은 여행길이어서 그랬을까? 그의 작품에서는 나이아가라의 입이 떡 벌어질 장관뿐 아니라, 그 이면의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사랑까지 느껴진다. 고난과 인내 뒤에 받게 될 영광이 이런 느낌은 아닐까? 처치의 고통을 단번에 씻어주었을 폭포 소리는 꼭 이 길 끝에 받게 될 박수소리처럼 들린다. [GNPNEWS]
이상윤(미술 평론가)
그림설명 Frederic Ediwn Church, Niagara, 1857, oil on canv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