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겨울, 주님은 나의 마음을 열방으로 이끌고 계셨다. 주님은 끈질기게 기도의 자리에 앉게 하시며 열방의 소식들을 들려주시고, 열방으로 나가고 싶은 사모함을 부어 주시기 시작했다.
요단강 앞에 섰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주님은 나를 요단강 앞에 서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심으로는 결코 건널 수 없었던 요단강. 그와 같이 나의 열정으로는 절대 건널 수 없는 곳이 열방이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가니 물이 말라 버렸다. 마른 땅을 건너게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일하게 여호수아 3장, 4장 말씀으로 주님은 나를 초청하셨다.
4년 전 인도 아웃리치 때 한 선교사님께서 힌두교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강물에 돌을 던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씀하셨다. 처음 돌을 던지면 잔상이 남아 그 돌이 빠진 곳이 보이지만 이내 사라져 돌을 던졌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이후 주님은 갠지스강에서 우리 팀에게 개기일식을 보게 하시면서, 달에 가리어진 해는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인도가 바로 소망의 땅임을 보게 하셨다.
소망의 땅 인도를 보다
주님의 방법은 그렇게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다. 하나님은 요단강을 말리시고 마른 땅같이 되게 하셨다. “돌을 취하라.” 그렇게 주운 열두 개의 돌은 의미 없는 돌이 아니었다. 선교지에서 만난 모든 자들은 의미 없는 자들이 아니었다. 이미 주님께서는 모든 영혼 안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허락해 주셨다. 보이는 것은 요동함이 없을지라도 때가 차면 복음의 표징이 되게 하실 것을 믿게 하셨다.
부르심을 확정받아
주님은 묵상하고 있는 내게 다시 “돌을 취하라!” 말씀하셨다. 열방으로 초청해 주시는 것은 알겠는데 여전히 마음에 확신이 없었다. 이것이 진짜 부르심이 맞나? 나의 열심인가? 하는 마음의 요동이 있었다.
그때 주님은 68호 복음기도신문의 C.T.스터드의 한 글귀를 읽게 하셨다.
“사랑하는 선교사 지망생들이여. ‘어떻게 갈까?’라고 말하지 말고, ‘어떻게 잘 견딜까?’라고 말하세요. ‘나는 정말 부름 받았는가?’라고 묻지 말고, ‘나는 주님의 제자인가?’라고 물으세요. ‘나는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할까?’ 라고 말하지 말고, ‘언제 내가 빨리 갈까?’ 라고 말하세요.”
그리고 주님은 연약한 나의 심령에 부르심을 확증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다. 나는 주님의 제자이고 예수생명이다. 부르심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또한 4년 전의 아웃리치 팀명이 ‘소망의 문’이었는데 다시 문으로 들어오라며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 100:4)”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땅 인도에서 친히 선교하고 계셨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아니 창세 전부터 계획하시며 완전하신 때에 완전하신 방법으로 일하고 계셨다.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셨다. 일하시는 그분을 기쁨으로 찬양하며 예배하는 것이 나를 부르신 주님의 뜻이었다. [GNPNEWS]
최경습 자매
필자는 1년 간 인도 단기선교를 마치고 돌아와 현재 선교단체의 동역자로 섬기며 본격적인 선교훈련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