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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성실했던 청년, 오지에서 영혼을 섬기는 선교사 되다

ⓒ 복음기도신문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잠 13:20)
본지가 [동행] 코너를 통해 믿음의 삶을 소개합니다. 노년의 독자들에게는 추억과 재헌신의 결단을, 다음세대의 독자들은 도전과 권면의 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그가 나를 데리고(43)

청년들은 행정 담당 임원회, 영성 조별 리더로 구분하여 청년회를 이끌었다. 리더들은 아침 큐티 자료를 만들 정도로 성장해 갔다. 청년들이 점점 나의 일을 덜어 갔다. 수련회와 모임을 앞두고 금식기도하는 일도 자원해서 가져가고 담당자를 구성하여 영성훈련을 더해 갔다.

이 중에 선교사 지원자가 처음으로 나왔다. 이 청년은 중학교 2학년 때 미션스쿨인 학교에서 나눠준 ‘기드온 협회’에서 나온 성경을 읽다가 거듭나는 경험을 하며, 집 가까운 교회에 출석하라는 권면을 받고 우리 교회에 등록을 했다.

내가 부임한 이후, 대학부와 주일학교 교사 명단을 받았다. 그런데 명단에 있는 사람 중 보이지 않는 이도 있었다. 청년들에게 그중 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고 내가 전화를 걸어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전도사님, 걔네 집에 전화하시면 큰일나요. 어머니가 40년 불교 신도라서 아들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아주 반대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전화했더니 흔쾌히 교회에 나오겠다고 했다.

이 학생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며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알아가며 임원을 거치고 리더 훈련을 받으며 착실하게 성장했다. 부요한 가정이었으나, 하루아침에 부모님 사업이 무너지자 그녀는 집안 경제를 책임지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온 집안이 다 구원받고 교회에 일꾼으로 성장하는 은혜가 가정에 임했다. 불교신자였던 어머니는 거듭나셔서 권사님이 되셨다. 권사님은 단벌 숙녀인 나를 위해 부흥회 때 집에 못가고 교회서 지내며 땀에 쩐 내 옷을 밤에 세탁해 말려다 주시고, 아침도 만들어서 날라 주셨다. 딸 선교를 위해 기도하며 어린이 전도를 힘쓰셔서 나이 많으심에도 어린이 교회학교 부장도 맡으시며 주님을 섬기셨다. 아버지는 부인 권사님이 새벽기도 오신 중에, 혼자 집에서 기도하시다가 방언을 받으시고 뜨거워서 붕붕 뜨시며 회개 기도를 하시고 충실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

바로 그런 가정에서 자란 이미화란 청년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대학부 임원 시절에 김성준 선교사님을 강사로 모셨을 때 오가는 일을 섬기면서, 또한 주님의 전도자가 되는 일의 귀중성을 강조하는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많은 도전을 받은 것 같다. 드디어 직장에서도 삶이 안정되고 인정받고 승승장구할 때 주님께 헌신하여 ‘전문인 선교사’로 갈 결정을 하였다. 직장에서는 못내 아쉬워하고 간곡히 붙들었으나, 오히려 선교 후원자들이 되어 축복하고 사랑을 주었다. 선교단체 지엠피(GMP)에서 훈련을 마치고 이름도 못 들어 본 빈곤의 나라 ‘알바니아’로 가기로 결정했다.

교회에서는 재정 부담을 주저하던 차에 사업하시는 장로님 한 분이 전적으로 재정지원을 약속하셨다. 교회 창립 이래 최초로 단독으로 선교사 파송을 하게 된 것이었다.

우리 교회에서 몸도 지정의도 자라고 인격도 함양하고 신앙 양육도 받아 뿌리가 깊고 견고할 뿐 아니라 지도자로 우뚝 세워져서 세계선교로 나가게 되었으니, 영광스러웠으나 나는 참으로 얼떨떨했다. 그 고생을 자원해 준 자매로 인해 주님 앞에 감격할 뿐이었다. 청년들의 뜨거운 사랑과 저력 있는 성도들의 기도와 사랑이 열매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 수많은 세월 동안 교회가 주님의 전도기관으로 세워졌으나 세계선교를 향한 우리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는 이 이미화 선교사가 최초였다.

이 선교사는 알지도 못하는 기후와 무슬림 국가에 가서 문화 적응과 여러 가지 고생을 뼈저리게 하면서도, 그 나라 수도에서 벗어나 오지로 들어가 전도하고 리더를 만들고 교회를 세워서 깊은 산지까지 개척을 했다. 우리 청년들은 계속 힘껏 후원했다. 물품으로, 진한 기도와 사랑으로 지원은 계속되었다. 그곳 선교사들 간에 “소포의 여왕”이라고 소문날 정도로 교인들과 청년들이 모든 물품들로도 섬겼다. 많은 소포 물품들이 탈취 당하는 때인데 우리가 보낸 은혜 보따리는 딱 하나만 잃어버리고 모두 그곳에 도착하여 소중한 복음 도구로 사용되었다.

오지에 있는 중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섬기며, 학교에서 나오는 모든 월급은 퇴락한 학교 보수로 쓰도록 돌려 드려서 학교 교장선생님과 동리 학부형들이 감동을 받았다. 유리창이 깨어진 채 공부하던 학생들이 안전한 교실에서 공부했다. 학생들은 영어과목 성적이 향상되면서 다른 공부도 함께 성장했다. 그들은 후일 우리나라 서울대학교에 해당하는 티라나 대학교에 상당수 입학하여 알바니아의 지도자급의 위치로 취업하며 뻗어나갔다. 그곳 여름성경학교에는 어린이들로 차고 넘쳤다. 선교사로 오신 각국 선교사들과 협력하며 그 인근의 어린이들은 거의 다 이 어린이 교회를 출석하며 복음과 문화를 접하게 되었다. 건너 산지의 청년들은 산 넘고 물 건너 영어를 배우러 오니 주님을 자연히 영접하여 청년 지도자들로 성장해 갔다.

개척된 교회에 지도자로 세워진 전도사 가정이 그 마을의 첫 믿음 가정이었다. 모진 무슬림들의 나라에서 전도하고 또 전도하며 그 마을에는 예수님을 전하는 견고한 진지가 만들어졌다. 여성 혼자 몸으로 얼마나 긴장하고 지냈던가 지금도 가끔 자다가 꿈에 소리를 지르곤 한다. 안식년에 한국에 오면 옷은 그곳에 다 나누어주고 집시 시장에서 몇 푼 주고 사 입은 옷은 도저히 우리 교회 공예배 자리에 참석하기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선교지 사람들 밑바닥에서 그들을 섬기는 모습은 참 귀했다.

지금도 그때 너무도 고생을 많이 하여 몸은 비록 종합병원이 되었어도 영혼들을 귀히 여기고,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영혼들을 섬김은 성령의 역사하심 그 자체이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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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숙 | 강변교회 명예전도사. 서울신학대학교 졸. 강변성결교회 30년 시무전도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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