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김봄 칼럼]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사랑하는 방법밖에 없다

사진: Sophie-Dale on Unsplash

누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뭐야?’라고 물어보면, 난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새’라고 대답한다. 나는 세상에서 새가 가장 무섭고 싫다. 그래서 치킨도 먹지 않는다.

8살 때 아무도 없는 집에서 늦은 밤 히치콕의 영화 ‘새’를 보고 난 뒤에 생긴 트라우마였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기에 8살 어린 아이가 늦은 밤 혼자서 히치콕의 영화를 봤는지,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지만, 그날 이후, 걷다가 새를 만나면 얼음이 되었고, 새가 앞에 있으면 가던 길을 돌아서 갈 정도로 내 인생 공포의 대상은 새가 되었다. 날개 달린 것들은 병아리조차도 무서웠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어렸을 때는 새가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집에서 키우지 않는 이상 새를 볼 기회가 자주 없었으며,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거리의 비둘기도 없었다.

시에라리온행을 결정하고 현지 선교사님께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이 ‘그곳에는 비둘기가 있나요?’ 였다.

“우리 동네는 비둘기 없습니다.”라는 선교사님의 대답이 예수님 재림하셨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기뻤다.

​그런데 까마귀가 있었다. 닭들이 있었다.

집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닭들과 병아리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바퀴벌레 크기밖에 되지 않은 병아리들이 ‘밟을 테면 밟아봐!’라는 배짱으로 여기저기 위풍당당하게 활보(?)하고 다녔다.

더 기가 막힌 건, 숙소 마당을 자유롭게 거닐고 있는 독수리만 한 까마귀들과 마당의 나무들 가지마다 앉아 있는 수백 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 이름 모를 새들이었다.

수백 마리가 넘는 참새 같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아침저녁으로 듣다 보니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마치 책상을 손톱으로 긁어대는 소리와 같았다.

그것들은 틈만 나면 내 방 창틀에 앉아 창문을 쪼아댔고, 까마귀는 아침저녁을 내 방문 앞에 앉아 마치 나의 안부를 묻듯 깍 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가?

나의 두려움에 선교사님은 “새들이 오면 언제든 불러요. 내가 와서 쫓아줄 테니까”라며 나의 두려움과 공포에 전적으로 공감해주고 위로해주었다. 선교사님 덕에 마음이 놓이기는 했지만, 개와 고양이의 문제도 만만치 않았다.

숙소와 조금 떨어져 있는 선교사님 사택에서는 열 마리가 넘는 고양이가, 숙소 마당에는 세 마리의 생기발랄한 시에라리온 시고르자브종(잡종)들이, 뒷마당 개집에는 물리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불독이 있었다. 물론 닭들도 있었다.

숨 막히는 알레르기의 이유가 되는 고양이와 나만 보면 달려와서 안기고 환장하는 개들 때문에 나는 매일같이 알레르기약을 먹어야 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과연 이 두려움과 알레르기와 비호감들을 극복하고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나는 결단해야 했다.

‘이곳에서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이때까지 나는 그것들을 피하면 되었다. 살아가는 데 불편했지만, 생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은 두려움이었다. 순간만 피하면 되었으니까.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 두려움과 비호감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악착같이 기도하면 해결될 줄 알았다. 내가 원했던 기도의 응답은 이랬다.

새들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아니면 개체 수라도 좀 줄어들기를. 무엇보다 그것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담대한 마음이 생기기를. 아침저녁으로 지져대는 그것들의 소리에 둔감해지고, 여느 사람들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기를.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사랑할 수 있기를. 그 두려운 것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하지만, 기도는 응답받지 못했다.

새들의 개체 수는 오히려 늘었고, 여전히 미친 듯이 짖어댔고, 나는 여전히 목이 터지라 선교사님을 불러야 했고, 닭들을 보고 먼 길을 돌아갈 때도 있었고, 자양강장제를 먹듯 알레르기약을 먹어댔다.

매일 매일 기도하고, 두려움을 맡기고, 결단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순간.

내 곁에서 종종거려 다니는 닭들을 보고도 무심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까마귀와 새를 내쫓기 위해 도구를 만들었고, 개들이 나를 반기지 않으면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땅속에 심어진 씨앗이 자신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듯,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는 하루하루 훈련을 통해서 개미 눈물만큼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기적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능력의 힘으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새가 무섭고, 두렵고, 싫다.

하지만, 이제는 직면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닭과 새와 동물들을 너무 좋아하는 시에라리온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그들과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새’라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함께 살아야 하는 시에라리온 사람들을 더 사랑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알게 하셨다.

그것이 두려움을 없이 해달라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두려움보다 사랑에 더 큰 자리를 내어주면 된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 4:18)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작지만 피어있는 꽃들>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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