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80세 한센인… “맘 편히 하늘나라 갈 수 있는 길 열어달라”
전국 최대 정착촌 익산 한센인들, 국립 요양병원 설립 요구
편집자 주 = 평생을 '문둥이'로 천시받으며 사회와 격리된 채 '없는 사람처럼' 숨어서 살아온 나환자(한센인)들이 늙고 병들어 죽어가지만, 그들을 반기는 곳은 없다. 이들을 받아주는 의료기관과 요양시설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조직이 괴사해 손가락이나 코가 뭉툭하고 눈동자가 빨개지는 나병을 '하늘이 내린 형벌(천형·天刑)'로 받아들이며 온갖 냉대와 차별, 사회적 낙인을 견디며 살아온 한센인들의 삶은 고통 그 자체이다. 완치됐음에도 '병이 옮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 탓에 그들은 세상과 격리된 채 정착촌에서 제대로 치료도, 요양도 받지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는 이들의 치료받을 권리와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위해 전국 최대 규모의 한센인 정착촌인 전북 익산시 왕궁지역의 의료 실상과 대안 등을 3편으로 나눠 송고한다.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면 접수창구 옆에 있는 다른 환자들이 갑자기 수런거리며 이내 자리를 뜹니다.”
전국 최대 규모의 한센인 정착촌인 전북 익산시 왕궁면의 경로당 앞은 휘휘했다.
그곳에서 만난 한센인 김우영(85·가명)씨는 최근 병원에 갔다가 또 한 번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병원 접수창구에서 ‘익산시 왕궁면 000’이라는 주소를 알게 된 다른 환자들이 슬그머니 도망치듯 사라지는 것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다반사이고 또 이를 이해 못 하는 바도 아니어서 심드렁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들어 헛헛해진다.
언뜻 보면 한센인의 외모는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어 알아채기 쉽지 않지만 ‘정착촌의 주소’는 그들의 신분을 명확하게 세상에 드러낸다.
이곳 한센인들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소록도에 강제로 이주당했다가 왕궁면에 요양소인 소생원이 설립(1948년)된 이후 1970년대를 전후해 본격적으로 옮겨와 축산업을 하며 생계를 꾸려왔다.
전국 한센인구(8천100여명)의 10%가량이 전북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20여명(등록 관리자)이 이곳에 집단 거주하고 있다.
정착촌 마을회장 박문수(73·가명)씨는 병원 중환자실에 있던 중 영문도 모른 채 한밤에 쫓겨난 한센인 얘기를 들려줬다.
박회장은 “노인성 질환으로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중환자실에 있던 아흔 살의 이씨가 야밤에 병원 구급차에 실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으로 돌아왔다. 동네 사람들이 며칠 동안 이씨를 돌봤으나 일주일도 안 돼 사망했다”고 전했다.
그는 “사람을 살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병원이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대책 없이 쫓아내면 어떡하란 말이냐. 개·돼지도 이렇게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분개했다.
병원 측은 ‘한센인을 내보내지 않으면 우리 모두 퇴원하겠다’는 입원 환자들의 항의를 이유로 이씨를 강제로 귀가시켰다고 한다.
자식도 없는 이씨의 장례는 십시일반 손을 보탠 이웃들의 몫이었다.
보다 못한 마을 사람들이 장례를 마친 뒤 그 병원을 ‘살인 방조죄’로 고발하려 했으나 “이미 죽은 한 사람 때문에 (병원 관계자) 여러 사람이 다칠 수 있고, 사회적으로 시끄럽게 되면 좋을 게 뭐가 있느냐”는 일부의 주장에 결국 고소를 접었다고 한다.
정상문(79) 역시 요양병원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를 돌보던 요양보호사는 물론 방을 같이 쓰는 다른 환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낼 자신이 없어서다.
정씨가 다른 노인들과 6인 병실에서 오손도손 지냈던 시간은 짧았다.
어느 날 우연히 한센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모든 게 정반대로 변했다고 회고했다.
다정했던 환자들은 (정씨와) 말도 섞지 않았으며 밥을 먹을 때는 식판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우르르 병실을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정씨는 “요양보호사들도 마치 코로나19 감염자 대하듯 멀찌감치 떨어져서 말하고, 침구류를 갈아주지 않았으며, 간호사가 제때 드레싱(상처 치료)을 해주지 않아 다친 무릎이 곪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되는 눈칫밥에 스트레스를 받아 1인 병실로 옮기려 했으나 부담스러운 비용 때문에 더는 못 버티고 퇴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숨을 내뱉었다.
“그 아픔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며 삶의 각다분함을 털어놨다.
이어 “2급 감염병인 한센병은 세대 간 수직 감염이 안 되고 유전도 안 되는 질병인데도 사는 내내 괴물 취급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씨는 “한센인은 치료도, 요양도, 죽음도 아무것도 맘대로 할 수 없는 존재”라면서 “일반인들처럼 치료와 요양도 받으면서 편한 마음으로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호소했다.
마을회장 박씨는 “한센인은 아직도 여전한 차별과 편견 탓에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면서 “평균 연령이 80세인 한센인 대부분이 장애인인 만큼 전문적 치료 및 재활, 요양 등의 의료서비스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위 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