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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칼럼] 바가지를 씌운 상인, 구호품을 훔친 교인… 나의 선택은?

사진: Emmanuel-Phaeton on Unsplash

호구처럼 사랑하겠다는 나의 결심이 얼마 가지 않아 벽에 부딪혔다.

나의 결심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아이들이 나의 가방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탕과 빵이 나오는 가방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사탕과 빵을 받고도 다른 것을 달라고 하는 아이들의 당연한 요구가 도가 지나치자 나도 한계에 이르렀다. ‘다른 친구들에게 줘야 하니까 더는 줄 수 없다’라고 하면 어떤 아이는 내가 매고 있는 가방을 낚아채기도 했다. 나는 단호해질 필요를 느꼈다.

어느 날은 나의 가방을 뺏으려는 아이의 손을 잡고 혼을 냈더니 그 아이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팀니어로 험한 말을 하면서, 몸짓으로 욕을 했다. 한국의 감자를 먹이는 욕 같은 시에라리온의 욕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리서 나를 보고 달려와 샤론티차 라며 살갑게 내 품에 안기던 아이였는데……

그제야 호구의 사랑을 감내하겠다는 나의 결심이 오래가지 못하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의 슬픈 예감은 동네 상인들로 인해 현실이 되었다. 그동안 동네 상인들에게서 구매한 카사바, 고구마, 파인애플, 망고 등을 내가 시세보다 3배나 더 비싸게 주고 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가지를 뒤집어쓴 것이다.

시세를 알지 못한 나의 잘못이라고, 그럴 수 있다며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이곳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는 알았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였다. 계속 모른 척 속아줘야 하는지, 아니면 ‘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는 것을 알리고 정당한 거래를 해야 하는지 고민이었다.

결국은 속아주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상인들을 보니 예전처럼 보이지 않았다. 작당해서 나에게 바가지를 씌우겠다는 그들의 표정과 눈빛을 보니 나는 더 이상 속아주기 싫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시세를 알고 온 나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지금까지 잘 사 갔으면서 지금에 와서 왜 딴소리냐? 어제도 이 가격으로 사지 않았느냐?’라며 윽박지르는 그들에게 나는 화가 났다.

결국, 사지 않고 돌아서는 나의 뒤에서 분명 나를 놀리는 게 분명한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정이 뚝 떨어진 나는 내일부터는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에서 장을 보기로 했다.

호구의 사랑 따위는 지나가는 개한테나 줘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 칼을 든 남자가 나를 향해 걸어온다. 순간, 나는 그가 강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이었다. 어제만 해도 내 눈에는 모두 선량한 사람들이었는데, 한순간에 강도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시장에 갈 때마다 폴을 데리고 다녔다. 물건의 시세를 다 알고 있는 현지인 폴이 있으니, 상인들은 더는 나에게 바가지를 씌우지 않았다. 나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아이들은 여전히 나를 보고 달려와 안기고 스윗을 달라고 한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먼저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과 미국에서 흘려들어 온 구호품을 모아놓은 창고가 털렸다. 선교사님의 가방 절도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은 뒤였다. 범인은 교회 리더이자 마을 유지인 아브람의 두 번째 부인의 아들이었다.

생전 교회에 나오지 않던 아이가 언제부턴가 친구들을 데리고 예배에 나오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해서 감사한 마음이었는데 알고 보니 창고의 위치와 상황들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함께 온 친구들은 범행 일당들이었다. 범행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며칠에 걸쳐 창고 창문 쇠창살을 끊어내고, 또 며칠에 걸쳐 구호품인 수건, 그릇, 이불, 옷가지들을 조금씩 조금씩 훔쳐 갔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아이들이 훔친 물건을 장에 파는 것을 교회 성도가 보고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선교사님께 이야기하고 그제야 선교사님은 창고가 털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고 화를 낸 것은 오히려 나였다. 선교사님은 덤덤하셨다.

마치 언제나 늘 그러하셨던 것처럼 도둑맞고, 속고, 그런데도 용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도둑질하고, 속이고 거짓말을 하면 합당한 대가는 치르게 하셨지만, 대가를 치르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다시 돌아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받아주셨다. 그들의 지난 일을 우려먹지 않고 기억하지도 않으신다.

“선교사님은 화가 안 나세요? 믿었던 성도들이잖아요”

나는 그동안 나에게 바가지 씌운 상인들에 대한 서운한 감정들을, 하지만 서운하면 안 될 것 같아 꾹꾹 눌러 담고 관용인 척 위선을 떨고 있었던 나의 민낯을 드러냈다.

“알고 보면 내가 더 죄인이에요. 단지 그들은 들켰고, 나는 들키지 않았다는 것뿐이지. 그래서 나는 무조건 사랑하고 용서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용서가 지금 그들이 경험할 수 있는 예수님의 사랑이니깐요.”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할 말을 잃은 나에게 한 구절의 말씀이 꽂혔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용서한다면, 나도 그 사람을 용서합니다. 내가 용서해야 할 어떤 것이 있다면 내가 기꺼이 용서하는 것은 여러분을 위해 그리스도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10)

결국,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비장한 결단도, 결사의 각오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뿐이었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작지만 피어있는 꽃들>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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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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