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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콩깻묵과 비름나무 먹으며 각오했다

▲ 1952년 한국 어린이들. 사진: 유튜브 채널 밝은지식 TV 캡처

[정전협정 70주년 특별기획]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4)

혼란한 해방 정국

처가의 가력을 보자. 장인어른의 본관은 ‘홍주 이’씨며 성함은 이광원, 장모님은 박만원이다. 장인어른은 전쟁 중이던 1952년 7월 10일 환란 중에 작고하셨다. 당시 61세이셨다. 전쟁 중이라 처삼촌 소유의 과수원에 임시 매장했다. 장모님은 83세로 작고하여 강원도 양양군 서면 문중 산에 있는 장인어른의 묘에 합장하였다. 장모님은 장인어른보다 22년을 더 사시다가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에서 별세하셨다.

슬하에는 딸 3명, 아들 5명 모두 8남매가 있었는데 딸 2명은 6.25전쟁 전에 별세하였다. 집사람에게 오빠 두 분이 계셨는데 큰 오빠는 6.25 당시 원산에서 공무원이었고 작은 오빠는 평양에서 음악학교 재학 중이었으나 두 분 모두 월남하지 못했다. 집사람 아래 두 남동생도 6.25사변 직전 병사했다. 유일하게 집사람만 생존해 전쟁 이후 외동 아닌 외동딸로 살아왔다.

해방이 되자 정부수립 때까지 미군정의 통치가 시작됐다. 민심의 혼란은 극에 달했다. 그런 와중에 일본인들은 본국으로 도망하기에 바빴고 발빠른 사람들은 친일파의 부정 축재물을 약탈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시 군정 하에 양곡배급이란 명분으로 지급된 콩깻묵은 이른바 ‘대두박’이다. 군용으로 콩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인데 죽지 못해 먹어야 했다. 대두박은 패망한 일본인도 먹지 않으며 가축용으로 사용하던 것을 우리 가족은 먹어야 했다. 대두박을 받아오면 몇 시간씩 물에 담가 뒀다. 그래야 비로소 죽을 쑬 수 있을 정도로 잘게 부서졌다.

또 다른 먹을거리는 대로변에서 자라나는 ‘비름나물’을 뜯어다 삶아 먹는 거였다. 그 맛이 고약해 어떤 때는 구역질도 나고 먹고 나면 설사를 하기도 했다.

결혼 후 집사람에게 고생담으로 이야기하니 자기들도 죽지 못해 살아야 했단다. 가난해도 좋다. 속아야 한다면 그렇게도 살아보자.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럭저럭 부딪치며 살아보자고 각오했다. 내가 감당해야할 숙명이라면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소년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지다

해방 이후, 나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어항을 3개 정도 구입했다. 그리고 남한강 지류인 ‘단양천’에서 고기를 팔아 가족들의 생계를 조금이나마 해결하고자 했다. 하루 종일 잡으면 저녁까지 보통 4사발, 적어도 3사발은 됐다. 잡은 물고기는 ‘김삼만’ 사장이 운영하는 단양에서 제일 큰 ‘명월관’과 중국요리 집에 납품했다. 물고기 값은 현금 대신 보리쌀로 받았다. 때론 밀가루를 받아오기도 했다.

물고기의 미끼는 어머님이 된장과 들깻묵을 섞어 만들어 주셨다. 고기를 잡는 방법은 간단했다. 미끼를 어항 안쪽에 붙이고 여울물을 약간 파서 그 속에 어항을 고정시킨다. 그 다음 멀리서 물을 뿌려 고기를 유인하면 끝이다. 잡히는 고기는 주로 피라미 종류였다. 크기는 작았지만 일단 어항에 들어간 그곳에서 제 힘으로는 빠져나갈 수가 없다.

봄 여름이 지나고 늦가을이 시작되면 1년 선배였던 권현필과 20리나 떨어진 양곡리로 가서 판매용 장작과 참갈비(소나무낙엽)를 채취했다. 그리고 지게로 나뭇짐을 지고 단양 나무 시장에 내다 파는데 현필 군은 항상 내게 나무를 먼저 팔도록 배려해주곤 했다. 고마운 선배였다. 당일 그 나무를 다 못 팔면 부잣집을 찾아다니며 마저 팔았다. 시장 가격보다 싼 값으로 팔아 보리쌀을 받아오곤 했다.

장작용 나무는 나 혼자 지게에 싣고 갈 수 있었지만 갈비짐(낙엽)은 늘 현필선배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했다. 저녁 노을, 영하 16도가 오르내리는 모진 강바람을 마주하고 걷노라면 콧물이 쩍쩍 얼어붙는다. 무거운 나무를 지고 집으로 오다가 강바람에 날려 쓰러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나를 기다리는 부모형제 때문에 오뚜기처럼 일어나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다. 강이라도 건너야만 했고 산이라도 넘어야하는 절박한 시련을 언제까지 당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각오를 다지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토록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선배 권현필은 6.25 이후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떠났다. 그는 서울에서 막역한 친구를 찾아 성수동에서 연탄배달을 하며 살다가 1960년 대홍수로 집이 무너지면서 압사당해 죽었다. 너무나 애석한 일이다.

현필 선배야말로 암울한 내 소년시절 내가 의지할 유일한 동반자였다. 나는 노래를 잘 부르고 좋아했지만 현필 선배는 노래 솜씨는 별로 없었다. 그는 내가 부르는 유행가를 구성지다며 무척 듣기 좋아했다. 한번은 그런 일도 기억난다. 어느 겨울날 아침, 일찍 나무를 하러 가는 길에 현필 선배가 나를 보고 유행가 한마디 하라고 졸랐다. 즐겨 부르던 노래를 거침없이 불렀다.

“꽃다발을 걸어주던 달빛 푸른 파지장
떠나가는 가슴에 희망초 핀다
고동은 울어도 나는야 웃는다
떠나가는 가슴에 희망초 핀다.”

흥에 겨워 막대기로 지게목발을 두드리며 신나게 장단을 맞추며 걷던 선배와의 추억이 새롭다.

나는 국민학교 6학년 때까지 교과목 중 작문을 무척 좋아했다. 그도 작문을 곧잘 했다. 그의 작문실력은 꽤 수준급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선배에게 시(詩) 한수를 읊어 보라고 주문했다.

“해와 고몬노 와주비도시데 신세이 나루 옹가루 나리” 이는 일본말이다. 그렇게 말한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번역하면 ‘방귀는 항문의 하품으로 신선한 음악을 만든다’라는 뜻으로 이해 했다. 곧바로 내가 받아친다.

“간지쓰야 니노지 니노지노 개다노아도” 번역하면 ‘설날이다. 두 이자 두 이자의 개다(일본식 슬리퍼) 발자국, 하얀 눈 위에 일본개다의 선명한 자욱’이란 뜻이다. 그는 계속 읊조린다.
“고이나끼 진세이와 하나끼하루노 고도시” 연인이 없는 인생은 꽃 없는 봄과 같다는 뜻이다.

시 한자락 읊어가며 고단한 삶을 이겨내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어느덧 산기슭에 도착하면 부지런히 나무를 해 지게에 싣고 강바람을 마주하며 반겨줄 사람 없는 집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문다.

“살자니 고생이요 죽자니 청춘이다.”
그 시대 청춘들의 푸념이다.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굳세게 살아가자’ 새기고 새기며 한 시대를 살아냈다.

나는 짚신을 신고 나무를 하러 다녔다. 어린 나이에 스스로 짚신을 삼는 기술이 없어 늘 아버님이 삼아 주셨다. 가끔 아버님께서 짚신을 너무 빨리 삼아 달라 한다며 짜증을 내실 때면 야속한 생각이 들었지만 일언반구도 못하고 혼자 속앓이를 하곤 했다.

요즘 같으면 “15살배기가 가장 노릇하느라 매일 깊은 산에 가서 나무를 해 그걸 팔아 가족들이 연명하는데 어찌 그런 무심한 말씀을 하십니까?”하며 반발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불평 한 번 못했다. 짚신 밑창에 ‘딱’을 섞어 삼으면 보통 짚신보다 세배 이상 오래간다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하루는 밤중에 선배와 공모해 상방리에 있는 한지공장 앞 물탱크에 저장해 둔 ‘딱’을 훔쳐 짚신 삼는데 써먹기도 했다.

‘딱’은 한지를 만드는 원료인데 그걸 섞으면 짚신이 제법 단단하고 오래갔다. 어느 해 가을, 나무를 하러 20리길을 걸어갔다. 갈 때는 짚신을 벗어 맨발로 가고 짐을 지고 올 때만 짚신을 신기로 했다. 선배가 내 어머님께 그 얘기를 하는 바람에 아버님과 어머님이 말다툼 하시는 걸 들었다. 민망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이듬해 봄부터는 앞개울의 고기잡이조차 어렵게 됐다. 어획량이 반으로 줄어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동네 어떤 아저씨는 날 더러 “‘봉가’가 너무 고기를 잡아 씨가 마른다.”고 웃으며 농담을 했다. 수소문 끝에 30리 북쪽에 있는 ‘도담삼봉’ 하류에서 질 좋은 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사실을 알고 곧장 실행에 들어갔다. 어장을 바꾼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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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학 | 1934~2013. 충남 단양 생(生). 학도병으로 6.25전쟁 참전. 삼미그룹 총무과장 정년퇴직. 서울 노원구 국가유공자수훈회 사무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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