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의 구 도심(봄베이)에 있는 빈민 자선 식당은 늘 가난한 사람들로 넘칩니다. 배고픈 이들이 수없이 거리에서 기다리고, 식당 안에는 산더미 같은 빵과 가마솥 몇 개에 해당하는 커리가 준비되어 있지요. 그러나 절대로 음식을 그냥 주지는 않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몇백 원이라도 카운터에 내면, 그 금액만큼만 사람들을 안으로 들여보내 줍니다.
감자 커리 정식은 40루피(약 650원)
생선 커리 정식은 50루피(약 800원)
소고기나 계란 커리 정식은 60루피(약 950원)입니다.
즉, 지나가던 누가 200루피를 주면, 카운터에서 알아서 다섯 명에게 감자 커리 정식을 주거나 네 명에게 생선 커리 정식을 주는 셈이지요. 왜 저 사람은 생선이고 나는 감자냐? 내가 더 오래 기다렸는데 왜 저 사람 먼저 주냐 같은 소리를 하면 몽둥이가 날아오기 쉽습니다. 종일 기다리고도 한 끼도 얻어먹지 못하기도 합니다. 음식이 남는다고 거저 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와서 빈민식사 지정헌금을 집행하면, 원하는 만큼, 원하는 메뉴를 먹고 원하는 만큼 싸 갈 수 있습니다.(그리고 만화 전도책자가 들어간 절제회 전도팩도 주어집니다.) 당연히 평소에 못 먹던 소고기나 계란 커리 정식에 많이들 몰리지요. 무슬림들은 소고기 커리를 먹고, 힌두교도들은 계란 커리를 주로 싸 갑니다.
갓 구운 빵 두 장, 삶은 달걀 커리, 공기밥이 들어가는 정식은 저도 2인분을 먹기 어려울 정도로 풍성합니다. 모처럼 단백질을 섭취하는 시간이지요. 다만, 계란 커리는 삶은 달걀을 만들어서 그것의 껍질을 벗긴 후에 만들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배고픈 사람들이 소고기나 생선 커리 정식을 열심히 먹는 동안, 계란 커리를 10인분, 20인분씩 싸가고 싶어 하는 이들은 한 시간씩 즐겁게 기다리곤 합니다.
그런데 종종 고성이 오가기도 합니다. 어차피 저 한국인이 쏘는 공짜 음식이니까… 라는 생각에, 계란이 30개 갖고 싶다고 계란 커리 30인분을 받아다가 20인분어치 빵, 밥, 커리를 길에 버리는 못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다른 배고픈 사람들이나 식당 스태프들에게 들켜 욕먹고 얻어맞기도 하구요. 한국 후원자들의 헌금을 집행하는 제 입장에서도 분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잠시 형편이 안 좋아져서 이곳에 온 사람들은 잔반도 남기지 않고 고마워하며 먹는데, 더 가난하고 굶주리며 굴다리 밑에 사는 이들이 이런 짓을 더 많이 한다는 것이지요. TV에서는 맨날 “있는 사람이 낭비한다.”는데, 빈민 사역을 11년째 해 오는 제 입장에서는 도리어 “없는 사람이 더 낭비하는” 경우를 훨씬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들의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이해하는 데 참 감정적으로 힘들고 오래 걸렸습니다만..)
이들은 한 주에 계란 하나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컨대, 어쩌다가 감자 커리 정식을 먹는다 해도, ‘삶은 감자(탄수화물)’ + ‘빵 두장(탄수화물)’ + ‘공기밥(탄수화물)’이라는 끔찍한 조합입니다. 생선은 쉰내가 퍽퍽 나고, 양도 적습니다. 소고기는 종교상 먹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결국은 삶은 계란을 가족들에게 가져가고 싶겠지요.
그런데 계란 하나를 더 받으려면 계란이 들어간 커리 봉지에 빵 두 개, 공기밥 하나를 더 받아야 한다니.. 그것도 그것대로 들고 가기도 힘들고 물릴 것입니다. 어차피 가져가서도 계란 파티 하고 다 남길 테니(저장도 안 되는 음식들이라) 먼 길 들고 가지 않고 적당히 받자마자 버리는 길을 택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식사와 별도로, “삶은 달걀”만 별도로 나누어 주기로 했습니다. 저는 하나에 10루피(160원)씩 내기로 했구요. 식당 입장에서는 계란을 사 와서 삶기만 하면 되니 수고도 덜고 이익입니다. 그리고, 빈민들 입장에서도 계란 커리 정식 30인분을 받아서 빵을 20인분 버리느니 다른 커리 정식을 5인분이나 10인분만 받아 가되, 추가로 삶은 달걀 20개를 받아 가면 더 행복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재정이 더 적게 듭니다.
이렇게 해서 오늘은 ‘버려지지 않는 식사’가 736인분 나누어지고, 별도로 삶은 달걀 490개가 나누어졌습니다. 14개월을 꾸준히 방문하다 보니 사람들의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고, 식당의 시스템도 제 사역에 맞춰 바뀌게 된 것입니다.
한 마약중독자의 팔을 보니, 자해 자국이 수십 개더군요. 이런 사람들에게 이성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게 무리입니다. 고맙다고 말해주기를, 받은 음식을 귀히 여겨주기를, 잔반이 남지 않을 만큼만 가져가 주기를 바랄 수는 없지요. 도리어 참아주고, 이해해 주며, 또 때로는 호되게 꾸짖고 가르치기도 하며 천천히 전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첫 삶은 달걀 공급이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기도 부탁드립니다.
[복음기도신문]
원정하 |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목사. 인도 선교사. 블로그 [원정하 목사 이야기]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전하며 열방을 섬기는 다양한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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