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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교회 교육관에서 철야기도를 하셨던 송재임 사모님

사진: Unsplash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잠 13:20)
본지가 [동행] 코너를 통해 믿음의 삶을 소개합니다. 노년의 독자들에게는 추억과 재헌신의 결단을, 다음세대의 독자들은 도전과 권면의 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그가 나를 데리고(33)

“그 교회 사모님이 상당히 사나우시고 까다로우시다는데 왜 가려고 하냐?”

좀처럼 말이 없던 오라버니가 내가 우리 교회에 오려고 준비 중에 있을 때 한 말이었다. 나는 잘 모르는 일이고 기도하고 결정했으니 가겠다고 했다.

막상 와 보니 소문과는 달랐다.

사모님은 범사에 경우가 반듯하시고 사적인 것과 교회 물건 등을 엄격히 구분하셨다. 오래 봉사하신 분들이 교회 물건을 가지고 친한 사람들에게 인심 쓰고 나누어 주는 것 등을 일절 못하게 하셨다. 상당히 명철하시고 확실하셨다. 아마 이런 부분이 오해를 부른 것 같았다.

내게는 오히려 송 사모님이 대하기 제일 편한 분이셨다. 항상 바른 것을 추구하시고 어린 사역자들을 많이 아껴주시고 존경해 주시기까지 했다. 나는 사모님에게서 교인들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알게 모르게 참 많이 배웠다.

사모님은 목사님이 안정된 교직에 계시다가 목회를 하시겠다고 하니 난감하셨단다. 아무리 반대해도 목사님이 꿈쩍도 안 하시고 뜻을 굽히지 않으시니 어깃장 놓느라고 하루 종일 극장에 영화 보러 다니고 해도 소용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셨다. 도대체 은혜받는다는 것이 무엇이기에 남편은 저렇게도 변했을까? “나도 은혜 좀 받아봐야겠다.” 결심하시고 그 당시 유명한 한얼산기도원에 가셨다. 첫날 저녁 집회 때 이천석 목사님이 대뜸 “여기 목사 잡아먹은 사모들 일어나!” 반말로 말씀하시는데도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셨다. 사모님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일어났단다. 그 시간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시작하는데 엄청 회개하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시게 되었다. 그렇게 은혜받으시고 기도원에 다니시면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사랑하게 되셨다. 목회하시는 목사님보다 앞장서서 교인들을 사랑하시고 섬기셨다.

심방 갈 때는 어린애들을 방에 넣어 놓고 밖으로 문을 잠그고 나가셔서 전도하고 성도들을 돌보고 저녁에야 집에 오면 애들은 녹초가 되어있곤 했다. 그래서 기쁨으로 목사님을 도와 교회를 섬기며 교회 부흥을 도우셨다.

우리나라가 빈곤한 때이었기에 어려운 교인들을 도와야 했다. 삼각지에서부터 오갈 데 없는 교인들을 돌보시며 동부이촌동까지 따라온 교인들은 더욱 친붙살이처럼 돌보셨다. 신림동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그 집이 그 집 같은데 용케도 잘 찾아내셨다. 흑석동 산꼭대기에 사시는 분들도 빠짐없이 친근하게 돌보셨다.

그냥 예배드리시는 것 같은데도 예배 후 누가 누가 결석했는지 다 아시고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고 도와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그 명철하심에 감탄할 뿐이었다.

교회 부흥을 위해 사모님은 집에서 편히 주무시는 것을 포기하시고 교회 교육관에서 철야기도를 시작하셨는데 교인들도 기도 제목 없는 가정이 없기에 참 많은 분들이 참여했고 기도 응답 속에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목사님은 새벽예배를 인도하신 후 강단 뒤에서 교인들을 위해 일일이 이름 부르며 몇 시간이고 기도를 다하셔야 일어나셨다.

사모님은 철야기도로 목회를 뒷받침하시고도, 낮에는 목사님과 심방하시며 교인들을 지극정성 보살피셨다.

목사님의 은퇴 시기가 가까워오자 사모님은 참 기도를 많이 하셨다. 전역을 앞둔 군목 목사님을 모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간구하고 계실 때였다.

핸드폰이 없던 때다. 우리 집 교회 사택으로 모르는 분이 본인은 우리 교단 군목이라고 하며 내게 전화해 오셨다. 그분은 초면인데도 두어 시간 넘게 우리 교회에서 모시려고 하는 분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씀을 길게 길게 자상하게 말씀하셨다. 본인 이름도 안 밝히고 끈질기게 말씀을 이었다. 결론은 모든 면이 우리 교회에 적합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왜 나에게 이렇게 하셨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엔 담임 목사님께 직접 전화하셨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나는 그때 주님과 약속한 바가 있었다. 우리 교회에 후임으로 오실 분에 대해서 기도만 할 뿐 관심은 두지 않기로 했었다. 그러니 그 전화 내용을 그대로 목사님과 사모님께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사모님이 말씀하시기를 무슨 오해가 있나 본데 시험이라면 더 잘 넘어가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오해받는 그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셨다. 결국 이분이 후임으로 오시게 되었다. 이렇게 사연을 넘고 넘어오신 목사님은 부임 후 어수선한 우리 교인들을 화합과 화목으로 이끄시는 탁월한 분이셨다.

송 사모님께 배운 심방 시 규칙이 있었다.

반드시 남녀 목회자가 심방 할 시는 세 사람이 한 조를 이룬다. 이를 지키기 어려울 때는 오해받지 않을 지혜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운전 기사님이 계실 때는 문제가 없는데 목사님이 운전하실 때는 난감했다. 그래서 나는 택시로 가고, 목사님은 승용차로 오셔서 집 앞에서 합류하곤 했다.

심방 갈 집이 멀고 처음이면 그 전날 택시로 가면서 약도를 그려 놓고 기사님이나 목사님께 알려 드렸다. 돈도 더 들고 번거롭지만 신속하고 안전하고 모두를 편하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도 늘 신났다. 주님 일은 나를 항상 흥분시켰다.

대심방 때는 약속 시간보다 지체할 때도 가끔 있었다.

그러면 무조건 내가 시간 가늠을 정확하게 못해서 차착이 일어났다고 얼른 내가 잘못해 벌어진 일로 설명했다. 그러면 교인들이 짜증을 내다가도 금방 이해를 해주었다. 이런 일이 사실일 때가 많다. 미리 잘 안배하지 못한 내가 먼저 사과하여 목사님이 편안하게 그 가정에 평안을 빌어 주시기 위해서였다.

나는 목사님께 약속드린 것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하나님 다음으로 목사님을 아버지처럼 모신다는 것을 기도하고 현실적으로 노력했다.

이 약속은 강변교회에 있는 동안 나와 하나님 간의 약조로 이어졌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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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숙 | 강변교회 명예전도사. 서울신학대학교 졸. 강변성결교회 30년 시무전도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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