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의 잘못으로 덮어씌우는 ‘왓어바웃이즘(그쪽이야말로)주의’가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문제에 대해 지적한 스티브욘트(Steve Yount)의 데니스포럼의 기고문을 번역, 소개한다.<편집자>
왓어바웃이즘(Whataboutism)란 무엇인가?
왓어바웃이즘(Whataboutism, 그쪽이야말로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더라도 당신은 이미 이러한 표현을 생활 속에서 여러 번 들어보았을 것이다. 텔레비전 속의 정치인, 페이스북에 있는 친구, 심지어 집에 있는 아이들도 이 표현을 사용했을 수 있다.
비판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자신만큼 나쁘거나 자신보다 더 나쁜 일을 했다고 주장하며 ‘너야말로!’라고 받아친다.
이를 “그쪽이야말로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용어가 너무 널리 퍼져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2021년 이 용어를 사전에 등재하고, 이를 “다른 사람이 저지른 범죄가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더 나쁘다고 주장함으로써 잘못에 대한 비난에 대응하는 행위 또는 관행”으로 정의했다.
왓어바웃이즘의 문제점
정치인들은 비판을 회피하기 위해 그쪽이야말로주의를 자주 사용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밀문서를 잘못 취급한 혐의로 연방 검찰에 형사 기소를 당하자 많은 공화당원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어땠냐?”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힐러리 클린턴은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민감한 정부 서신을 처리하기 위해 개인 이메일 서버를 사용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는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내 전임자들도 나와 비슷했다”라고 말한 것이다.
디스패치의 조나 골드버그는 “그쪽이야말로주의의 문제 중 하나는 실제로 아무것도 반박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하며 “주의를 기울이면 그들이 실제로 그 주장을 인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나 한다’라는 말은 ‘나는 하지 않았다’라는 말과 전혀 동의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철학자 메롤드 웨스트팔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똑같이 나쁘거나 더 나쁘다는 것을 발견하는 데서 위안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쪽이야말로주의가 위선을 폭로하고 자기 성찰을 촉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기독교인들은 이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봐야 한다.
브렛 맥크래켄은 복음연합에 기고한 글에서 “궁극적으로 그쪽이야말로주의는 기독교 신앙을 편협한 당파적 목적으로 축소하는 편협하고 안일하며 파괴적인 수사학적 전술”이라고 말했다.
왓어바웃이즘의 기원
소셜 미디어와 극단적인 당파성 때문에 오늘날 왓어바웃이즘이 더 널리 퍼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러한 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그쪽이야말로라는 말로 대응하는 수법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며 “수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표현을 라틴어로 ‘당신도’라는 뜻의 투 쿼크(tu quoque)의 한 형태라고 간주한다. 자신에 대한 비난의 진실을 반박하기보다는 방금 고발당한 혐의를 고발자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을 의미한다. 투 쿼크는 논리적 오류로 간주하는데, 원래 고발한 사람도 같은 범죄를 저질렀는지 여부는 고발의 진실 가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현대 용어의 기원은 북아일랜드 분쟁(아일랜드 공화국이 영국 연합왕국에서 독립할 당시 얼스터의 일부 지방은 영국에 남음으로써 비롯된 일련의 민족주의 분쟁)에서 찾을 수 있다. 1974년 한 역사 교사가 아일랜드 타임즈 (The Irish Times)에 임시 아일랜드 공화국군에 대한 비판을 회피하고 상대방의 결점을 지적하는 ‘그쪽이야말로’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불평하는 편지를 썼다. 그로 인해 왓어바우터리(whataboutery) 또는 왓어바웃이즘(whataboutism)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그쪽이야말로주의, “러시아의 전략적 수사법 (또는 신성한 전술)”
이 수사적 기법에 이름을 붙인 것은 아일랜드인이지만, 이 기법을 완성한 것은 소련과 러시아였다. 러시아 태생의 저널리스트 줄리아 이오페는 그쪽이야말로주의를 “러시아의 전략적 신성한 전술”이라고 불렀다.
냉전 기간 소련은 인권 침해에 대한 미국의 비판에 미국 남부의 흑인노예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역사상 최악의 사고로 알려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소련은 처음에는 이를 은폐하려다가 이것이 드러나자 미국에서 훨씬 덜 심각한 사고였던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와 비교했다.
불과 몇 달 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부 장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질문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국가에 대한 미국의 군사 개입을 언급하는 방식으로 답했다. 인도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그가 서방의 군사개입에 이중 잣대가 있다고 말할 때는 청중은 박수를 보냈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의 피해국이라고 말할 때 모두 그를 비웃었다.
왓어바웃이즘과 할머니 밀치기
미국인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점검하고 우리의 행동이 이상에 미치지 못할 때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쪽이야말로주의는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고인이 된 보수주의의 아이콘 윌리엄 버클리는 텔레비전 토론에서 상대방이 미국의 그레나다(카리브해 작은 섬나라) 침공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비교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우리와 소련을 비교하는 것은 할머니를 버스가 오는 길로 밀치는 사람과 할머니를 버스가 오는 길로 가지 못하도록 밀치는 사람 모두를 할머니를 밀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쪽이야말로주의의 대가이다. 2017년 잘 알려진 한 인터뷰에서 그는 러시아의 미국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해 “세계 지도 어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라도 미국 관리들이 선거 내부 과정에 간섭하고 있다는 불만을 어디서나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순환을 가져오는 예수님의 왓어바웃이즘
부당한 비판을 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왜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라고 비난했을 때 예수님은 ‘그런데 왜 너희는 전통을 위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느냐?’ (또는 개역개정 4판 그대로 하면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고 대답하셨다(마태복음 15:2-3).
진짜 문제는 손 씻기나 청결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우선시하지 않았다는 데 초점을 맞추셨다.
다니엘 오트너는 퍼블릭 스퀘어 매거진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왓어바웃이즘’이라는 악순환에 대항하는 선순환을 제시한다.”며 “우리 자신의 결점과 불완전함에 집중하면 다른 사람의 결점에 대해 덜 신경 쓰게 된다.”고 썼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형제의 눈 속에서 티끌을 빼기 전에 내 눈에서 들보를 빼야 한다(마태복음 7:5).
하지만 많은 사람은 철없는 아이들처럼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복음기도신문]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제보 및 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