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쿄우 요루고항와 토우모로코시 고항 도우?’ 오늘 저녁은 옥수수밥 어때?
마트 입구에 들어서니 초록 초록 옷을 입고 수염을 단 옥수수들이 많이도 있다. 일본 옥수수는 한국 찰옥수수와는 다르다. 삶지 않고 먹어도 될 만큼 부드럽고 달다. 과일 같다. 남편은 옥수수를 보더니 강원도 찰옥수수가 먹고 싶다고 한다.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어느 일본인 부부의 대화가 들린다. 제법 날이 더워졌네 하며, 옥수수가 맛있는 계절이네 하며, 저녁으로 옥수수밥이 어떨까 하며 옥수수를 고르고 있었다. 남편과 나도 그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맛있게 보이는 옥수수 하나를 넣었다. 그리고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그날 우리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날 ‘날도 쌀쌀한데 저녁에 돼지고기 사다가 김치찌개 어떨까?’ 물론 한국어였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삶이 물들고 있었다.
하나님의 일은 소나기가 퍼붓듯, 빛이 짠하고 비추듯 ‘이거야’ 하며 시작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렇다. 지나치기가 마냥 쉽다. 마냥 지나칠 일을 기억하게 되는 것, 소중히 하게 되는 것은 주님의 성실한 은혜이다.
은혜를 입은 삶은 잘 포기하지 않는다. 답답하여도, 밀려오는 혼란으로 뒤얽혀도, 이것이 옳은가 의심이 들어도. 노아처럼 말이다. 노아는 긴 삶의 여정에 어리석으리만큼 믿음의 선한 싸움을 감당했다. 노아의 방주는 그 증거다. 하나님과 마음을 합한 자, 하나님의 계획과 비전을 온전히 소유한 자의 진한 삶을 감히 갖고 싶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처럼 잉태될 것을 미리 예고 받고, 뱃속에서부터 은혜를 입은 자이다. 배 속에 있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엄마 뱃속에서부터 기뻐했다.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한 자,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그 들메끈을 풀기도 감당 못 할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자이다. 그의 삶 전부를 예수님을 기뻐하며 기다린 삶이었거늘 감옥에 갇힌 언젠가, 오실 그분이 당신이 맞느냐고 아니면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냐고 묻는다. 예수님은 그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나타내어 보이신다. 그렇게 복음 앞에 다시 세우셨다.
그리고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누가복음 7장 23절) 하셨다.
나는 어떤가. 삶의 틈에서 믿음 없음을 짜증으로 고백하지는 않는가. 주님이 하시는 것 맞느냐고.
아침 일찍 주인의 눈에 띄어 포도원 밭으로 들여보내진 일군은 실은 좋았지 않은가. 무척 기쁘지 않은가. 은혜를 종일 누렸음에도 걸려 넘어지게 된다.
일찍 들어왔으니까. 일을 많이 했으니까. 기도를 많이 했으니까.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주인은 아직도 일꾼을 찾아 들여보낸다. 주인의 목적은 일이 아니기에 그렇다.
포도원을 뛰어다니며 검게 물들여진 삶이 그저 아름답다 하시거늘.
우리는 포도원에 비치는 뜨거운 햇볕에 감사하자.
이제 포도원 문 닫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시간도 남은 자를 찾으시는 주인의 열심을 위해 기도하자.
작은 시골 마트에서 만난 조선 할머니는 주님의 열심이었다. 그리고 내게 소중히 하게 하셨다. 검게 물드는 삶이 그 증거라. 주님의 포도원에서 검으나 아름다움이여.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하였도다(디모데전서 6장 12절).
몸도 목숨도 다 된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의 삶을 진하게 물들였던 그 은혜 앞에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세례요한을 담아두는 밤이다.
[복음기도신문]
고정희 선교사 | 2011년 4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족이 일본으로 떠나 2014년 일본 속에 있는 재일 조선인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우리학교 아이들을 처음 만나, 이들을 섬기고 있다. 저서로 재일 조선인 선교 간증인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었다'(도서출판 나침반, 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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